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5일)
하늘에 가까운 완전한 사람(自然의 道를 체득한 사람) 이야기를 하려한다. 세상 밖에서 노니는 세 벗이 나온다.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사귀면서 말했다. “누가 사귐이 없는 데서 사귈 수 있고, 서로에게 하지 않는 데서 함을 실행할 수 있겠는가? 누가 하늘에 올라 안개 속을 노닐고, 무극(무극)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삶을 잊어버리고 끝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세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빙그레 웃으면서, 각자의 마음에 거스르는 바가 없게 되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아무 일 없이 얼마 지난 뒤 자상호(子桑戶)가 죽어서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공자(孔子)가 그 소식을 듣고, 자공(子貢)으로 하여금 가서 장사(葬事)를 도와주게 하였다. [자공이 가 보니] 한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거문고를 타면서 서로 화답하면서 노래했다. “아! 상호(桑戶)여! 아! 상호(桑戶)여! 그대는 이미 참된 세계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구나. 아!” 자공이 종종걸음으로 그들 앞에 나아가 말했다. “감히 묻겠습니다. 시신(屍身)을 앞에 놓고 노래하는 것이 예(禮)입니까?”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어찌 예(禮)의 본 뜻을 알겠는가?”
자공(子貢)이 돌아와 이 이야기를 공자(孔子)에게 아뢰면서 말했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법에 맞는 행동은 전혀 없고, 생사를 도외시(度外視)하여 시신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없으니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공자(孔子)가 말했다. “저들은 예법의 테두리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이고 나는 예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테두리 밖과 안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데 내가 너로 하여금 가서 조문(弔問)하게 하였으니, 나야말로 생각이 얕았다. 저들은 바야흐로 조물자와 벗이 되어 천지 사이에서 노닐고, 저들은 生을 쓸데없이 붙어 있는 사마귀 정도로 생각하고, 죽음을 종기가 터지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그 같은 사람들이 또 어찌 사생(死生)과 선후(先後)의 소재(所在)를 알려고 하겠는가! 다른 사물을 빌려 한 몸에 의탁하여 간과 담을 잊어버리며, 귀와 눈의 감각을 없애서 생(生)과 사(死)를 되풀이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다. 무심히 티끌과 때에 오염된 세속 밖에서 이리저리 노닐며 무위(無爲)의 세계에 소요한다. 저들이 또 어찌 번거롭게 세속의 예를 갖추어 세상 사람들의 귀와 눈에 보이게 하겠는가!”
나도 구차스럽게 세속의 예 따위를 따라가면서 뭇사람의 눈에 띄려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도 세 벗은 의기투합(意氣投合) 정도가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혹은 이른바 영(靈)으로 통하는 단짝들이다. 나도 이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귐을 초월하여 사귀는' 친구들, 사회적 통념이나 일반적 가치관, 윤리관에서 풀렸을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제약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세상 밖에서 노니는 사람들이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쳐다보고 웃으면서'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되었다.
이 세 벗 중에 한 명이 죽었다. 공자가 제자 자공을 보내 조문하게 하였다. 자공이 가서 보니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주검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자공은 당장 달려가 도대체 예(禮)도 모르나며 따진다. 두 벗은 자공을 보지도 않고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그러고는 한 마디 하는데, "이 이가 어찌 예의 뜻을 안다는 말인 가"였다. 자기들의 예는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받드는 예를 넘어서는 '예 아닌 예' 그러기에 진정한 예라는 뜻이다.
자공이 공자에 보고했다. 공자는 조문이란 이 세상 안의 일이므로 세상 밖에 노니는 사람들을 조문하는 것이 처음부터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을 모르고 조문을 보낸 것이 자기의 불찰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서 자공에 그렇게 생사에 구애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구차스럽게 세속의 예에 매어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가 내 마음에 든다. 자공이 다시 선생님 공자에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떤 세상에 의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하늘의 벌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너와 함께 세속에 머물 것이다." 자공이 물었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가 대답했다. "물고기는 물에 살고, 사람은 도(道)에서 살지. 물에서 사는 것은 연못을 파 주면 거기서 영양을 받아 살아갈 수 있고, 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을 저지르지 않고 가만 두면 삶이 안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르기를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고, 사람은 도에 서로 잊는다' 했다.
"그 이상스런 사람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스런 사람'이란 보통 사람과 비교해서 이상할 뿐, 하늘과는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소인이 사람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가 하늘에는 소인이라' 한 것이다."
공자는 예에 묶여 사는 상태를 하늘의 형벌로 인식하고,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이 참으로 군자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상은 유가(儒家) 사상을 초극 하려는 도가(道家) 사상으로, 이런 반유가적 사상을 공자 자신이 친히 말하도록 하는 형식을 취한 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앚지 말아야 할 것은 윤리적인 것으로도 안 되지만, 비윤리적인 것으로는 더욱 안 된다는 점이다. 윤리적 가치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지, 윤리적 가치가 완전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윤리적 가치를 완성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넘으라는 뜻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반 유가적 가치가 아니라, 초 유가적 가치를 강조한 셈이다.
법정 스님이 쓴, <사람이 하늘처럼>이라는 시이다. 나는 다음의 시에 나오는 친구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공유한다. 하늘 냄새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 그런 사람은 무시하고,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들과 살 생각이다.
사람이 하늘처럼/법정 스님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 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먼저 따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먼저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메아리가 오고 가는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벗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장점을 세워주고 쓴 소리로
나를 키워 주는 친구는
큰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친구가 가장 큰 보배이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튼다.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은 그런 친구를
만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고 차동엽 신부님은 이 구절이 "팔 복"의 절정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시며, "여기서 핵심은 순교가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의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행복의 역설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셨다. "박해 받음의 상징은 십자가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면서 유대인들은 '돌팔이 메시아'라고 했고, 그리스 인들은 '어리석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들은 십자가에서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봤다. 죽음이 아니라 부활을 봤다." 그리고 이 강함은 "몰아(沒我)적인 사랑에서 뿜어져 나온, 죽음도 이기는 힘이다. 결국 시련과 고통, 박해를 이기는 건 사랑의 힘"이라고 덧붙이셨다.
부활을 장자가 말한 "오상아(吾喪我)"로 풀이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유기체의 감각에 매몰되어 만들어진 편협한 ‘나’를 죽이고, 항상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여 기억하고 느끼며 세상과 하나되는 ‘나’를 살려내는 것이다. 1년에 한 번이, 한달에 1번으로, 한달에 한번이 매일 1번으로, 매일 한번이 시시각각으로 편협한 ‘나’를 죽이고 세상과 하나인 ‘나’를 살려낼 수 있을 때, 물질을 지배하며, 자연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깨달으며 진정한 부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마음(心)을 빼내면(咸), 타자를 인식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마음인 감성(感性)이 생겨, 자존심(心)으로 똘똘 뭉친 아(我)가 죽고 자존감(感)이 충만한 오(吾)로 부활한다 싶다." (이순석)
왜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나? 차신부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믿음과 소망, 사랑이 있다. 그 중에 왜 사랑이 제일인가. 믿음과 소망은 완성된 후에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은 다르다. 완성된 후에도 지속된다. 영원히 지속된다. 결국 셋 중 사랑만 남는다. 사랑은 하늘 나라의 것이다." 랍비 힐렐의 가르침은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이다. 이를 황금률이라 한다. 예수의 황금률은 더 적극적이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면서 예수는 '하늘 나라'는 내가 있는 이 시간과 이 장소에서 황금률을 실천할 때 그 곳이고, 거기서 사랑을 받는 상대방이 바로 신이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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