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당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2. 3. 14:28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2월 1일)

세월이 너무 빠르다. 벌써 12월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장자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했다. 그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12월만 되면, 내가 늘 소환하는 시를 우선 공유한다. "12월의 독백"이다.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으로 혼자 읽는다.

12월의 독백/오광수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지금은 유튜브가 대세이다. 그러니까 문자보다 영상이 대세이고, 이미지와 보기 그리고 듣기가 함께 이루어진다. 그래 보고 들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며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바로 다 잊어 먹는다. 그게 문제이다. 머리에 기억은 안 되고, 이미지로 느낌만 남는다. 원래 우리의 뇌는 기억과 기억의 관계만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 다시 들은 내용을 이야기를 하려면, 잘 못한다. 그래 나는 침대에서 그런 좋은 글을 만나면, 나의 하루의 수련 도장 <OneNote> 앱에 기록해 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번째 것은 주철환 PD의 책 <<오블라디 오블라다>>에서 본 내용이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당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화학의 원소주기율 표에서 염소 Cl가 나트륨 Na를 만나면, 소금 NaCl이 되지만, 수소 H를 만나면 염산 HCl이 된다. 염소Cl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얼굴에 뿌려져 절망을 낳는 염산이 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도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나 한 번 옷깃을 스치거나 만난 인연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 그것이 그저 스쳐가는 정도의 짧은 인연이라도, 그들은 최소한 1천 겁 이상을 뛰어 넘은 인연으로 만난 귀한 존재라고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한 지인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본 내용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이라는 시간은 선녀가 비단옷을 입고 사방 3자(尺)의 바위 위에서 춤을 추어 닮아 없어지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이 길고 긴 시간을 말한다는 거다. 힌두교에서는 42억 2천만이 한 겁이라 한다고 했다. 이 시간을 이미지로 말하면, '지붕의 낙수물이 집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 '잠자리가 날갯짓으로 바윗돌을 닳아 없어지게 하는 시간'이 된다.

시간 이야기가 나왔으니, 눈 깜작할 사이를 우리는 '순간(瞬間)'이라 한다. 그걸 불교 용어로는 '찰나(刹那)'라 한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은 '탄지(彈指)라 한다. 그리고 숨 한 번 쉬는 시간은 '순식간(瞬息間)'이라 한다. 순 우리말로는 아주 짧은 시간을 '어느새'라고 한다. 농담으로 새 중에 가장 빠른 새가 '어느새'이다. 불교에서 시간의 최소단위를 나타내는 찰나는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의 음역이다. 1찰나는 약 0,013초로 75분의 1초를 말한다.

나는 맨발 걷기를 하며, 꼭 한 번씩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의 원곡은 "This is the moment"이다. 난 'the moment"란 단어를 좋아한다. 한국 말로는 '때' 또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은 시간에 따라 붙는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낱줄'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키기 위해서는 둘의 공통분모인 사이, 즉 간(間)을 우리는 잘 포착해야 한다. 이것을 '순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그 '순간'을 잘 포착해 가며, '순간'을 사는 것이다. 그 순간을 우리는 '찰나'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식물들은 순간순간 자신의 색깔과 자기 몸의 구조를 다채롭게 변화시킨다. 가을 끝자락에서 식물들은 말 없이 우리들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500겁의 인연이 있어야 옷깃을 스칠 수 있고, 2000겁의 세월이 지나면, 사람과 사람이 하루동안 동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5000겁의 인연이 되어야 이웃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하고, 6000겁이 넘는 인연이 되어야 하룻밤을 같이 잘 수 있게 되고,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야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내 주변애서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인연인 것이다. 그러니 오늘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날 모든 이들에게 많이 사랑할 일이다. 그리고 특히 가족들이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은 내가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더욱 사랑할 일이다.

나는 '만남은 인연이고, 관계는 노력이다"는 말을 안다.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 인연을 소중하게 만들어 가는 관계 또한 아주 중요하다. 인연은 '인因'이라는 원인과 조건이라는 '연緣'들이 조화롭게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사는 '인보다 연으로 완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인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은 간접적인 조건이다. 그러니까 원인도 중요하지만, 그 '인'을 좋은 조건의  '연'으로 만들어가는 매일매일 노력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인생은 작은 오해와 인연을 맺거나 풀어가는 일이라는 말도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강은 단번에 건너뛸 수 없다. 사귐도 그렇다. 크고 작은 돌을 내려놓고 그것을 하나씩 밟아 가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차근차근 건너 가야 한다. 삶과 사람 앞에서 디딜 곳이 없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인생과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가 백영옥의 글을 다 모아둔다. 그 중의 하나를 오늘 공유한다. 여름에서 가을, 겨울로 넘어갈 무렵 영화 <다가오는 것들>을 본다. 나로선 겨우 핀 꽃이 이내 지거나, 풍성한 나무들이 순식간에 빈곤해지는 걸 보며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자를 사랑하게 됐다는 남편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내 예상을 깨고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건 이별 후 새 자아를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등의 스토리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철학 교사인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되 뇌인다. "20년 동안 남편과 나는 브람스랑 슈만만 들었어. 지긋지긋해. 이런 생각을 해. 애들은 떠나고, 남편은 가고, 엄마는 죽고, 나는 이제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완벽한 자유."

다시 영화를 봤다. 주인공 나탈리에게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역설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안전하지만 자유로운 직장이 없는 것처럼 자유와 안전은 양립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탈리는 불안함 때문에 섣불리 연민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 가꾼 별장 정원에서 새로 사귀었다는 여자가 꽃을 좋아하길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 손사래 치는 남편에게 말한다. “안 그러면 정원이 아깝잖아...당신은 바뀐 게 없는 것처럼 말하네. 정신 차려!” 나는 감히 이것이 어른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나탈리 손에 스마트폰처럼 늘 지니고 있는 것이 책이다. 자신을 바꾸지 않고 보존하는 것으로 생의 위기를 묵묵히 견디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이었다.  상실을 ‘잃는 것’이 아닌 ‘얻는 것’, 즉 자유로 연결하는 힘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dots’(점을 연결하라!)는 실용서의 단골 인용 문구지만, 나탈리에게 이 말은 책 속에 존재하는 스승들의 가르침이었다. 스피노자, 루소,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이때 삶의 가장 위대한 실용이 된다. 나에게는 매일 쓰는 <인문 일지>이다. 내일은 정말 '일기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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