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이끌지도 못하면서 떠나지도 않는다(Lead or Leave).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2. 3. 14:17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3일)

가급적 정치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는데, 인문운동가로서 오늘은 참을 수가 없다. 다음과 같은 이유만은 아니다.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다. 권력의 창출만이 전부가 아니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는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에서 부의 배분이란 정치가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하고 싶은 것은 다음 두 가지 문제이다. (1) 검찰 개혁 (2) 언론 개혁. 정치인 추미애의 주장이다. "검찰 개혁을 안 하니 정치 검찰이 21세기에 왕을 꿈꾸게" 되었다는 거다. 우리는 검찰의 독립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힘 있는 자가 자신의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고도 돈과 조직 또는 정치의 보호막 뒤에서 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특히 인권 침해를 책임져야 하는 검찰이 오히려 인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다. 몇몇 검찰이 하는 수사들을 보면, 수사가 진실과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짜맞추기를 해서 법정에서 뒤집힐 염려가 없는 스토리가 진실인양 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혹한 수사를 한다. 그것도 모자라 미리 수사의 방향과 표적을 정해 놓고, 수사 과정을 언론에 흘려 수사 분위기를 유리하게 조성하고 어느 누구도 수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이미 혐의자는 법정에 서기도 전에 유죄가 예단 되어 만신창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 뿐이 아니다. 그런 가혹한 표적 수사를 하고도 부패척결, 거악 척결의 상징으로 떠올라 검찰 조직내에서는 승진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검찰 조직 밖으로 나가서도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을 하는 특혜를 누려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등 전관과 현직이 서로 챙기며 선배와 후배가 서로 봐주는 특수한 카르텔을 형성하여 스스로 거대한 '그들 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이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서운 집단이 되었다.

우리는 잘 안다. 그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검찰은 측근을 감싸기 위해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고, 막강한 경제 권력과 언론 권력들 앞에서는 한없이 관용을 베풀었다. 게다가 '검찰당'이라 불릴 만큼 이미 정치 세력화된 검찰은 민주적 통제마저 무력화시켰다. 제 식구나 감싸고, 이익을 함께하는 제 편에게는 유리하게 편파적으로 자행해 온 검찰권 행사를 차별없이 공정한 법치를 행하는 검찰 개혁 없이는 우리 사회는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래 오늘 아침 <인문 일기>에서 나는 이 문제를 고발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잘 모르는 조동연이라는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이렇게 발가벗겨질 각오를 하지 않고는 정치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치는 비정하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다. 나는 그가 쓴 페이스 북의 글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본인에게도 말못할 이유가 있었고,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걸 교정하며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건 사생활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 "나만 쓰레기인가"하며 뻔뻔함을 즐기는 가학적 인간들 앞에서 또 한 번 치가 떨린다. 또 그런 자들 앞에서 관음증을 즐기는 사람들, 그걸 퍼 나르는 언론들이 싫다. 인재 영입이란 명목 아래 아무나 막 데려 다가 쓰는 정치권의 고질적 관행이 비 비극을 만들고 있는 거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이 전에 전혀 없는 어떤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정치 포퓰리즘이다. 대니얼 부어스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이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핵심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모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뻔뻔하게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이끌지도 못하면서 떠나지도 않는다(Lead or Leave). 사자 한 마리가 이끄는 양 떼가 양 한 마리가 이끄는 사자 떼를 이긴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현실은 양 한 마리가 양 떼를 이끄는 꼴이다.

"리더가 옳고 그름에 대해 '예', '아니오'를 분명하게 가르마 타지 않고,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고 애매하게 흐리면 국민이 희망을 갖지 못한다." 추미애 전 장관의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악을 구분하고, 악을 다스릴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갖지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삶을 지키기 위함이다"라 덧붙였다. 나도 공감한다. "난 조국을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최성수 국장의 말이다. 나도 믿는다. "그의 선한 얼굴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선거승리를 위해 그랬음을 이해하지만, 다음부터는 누가 묻거든 노 코멘트하는 게 좋겠다. 조금씩 나도 찜찜하다.

끝으로,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는 '조국 문제'를 이야기 하고 싶다. 조국 문제는 개인의 비극 이상이다. 언론 개혁과 연관되기도 하다. 언론 개혁을 안 하니 언론은 조국을 불공정의 대명사로 프레임을 씌우고, 세세한 정보가 부족한 대중들을 그렇게 믿도록 조장했다. 조국을 입에 올리는 부류는 개혁을 거부하는 반개혁 세력이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조국 사태'는,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검찰의 난'이었다. 왜냐하면 언론과 야당이 '조국 사태(불공정이라는 공공의 적으로 간주한 사건)'라 부풀리고 과장했지만, 주요 혐의인 사모펀드 의혹은 대법원 무죄 선고로 오히려 기소권 남용인 것이다. 이 사건은 조국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개혁이 기득권 유지와 확장에 걸림돌이라고 여기는 세력들이 조국을 통해 겁을 주는 것이다. 누구든 함부로 개혁을 하고자 하면 조국처럼 만신창이로 만들겠다고 본보기 삼은 것이다."(추미애)

반개혁 세력들은 검찰, 언론, 일부 정치 세력, 재벌, 법조 등의 기득권 카르텔이다.  여기서 검찰이 특히 기득권 카르텔을 지켜주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면 민주주의 껍데기만 남는다. 인 인간에 대해 함부로 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할 수 없다. 한 인간에 대해 함부로 하는 것을 방치하면서 국민을 지키겠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사람에 대한 인권은 만인에 대한 인권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약간 흥분해서 추미애 전 장관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한다. 조국과 조동연이 겹쳐져서 길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박선화 교수의 담벼락을 읽고 울컥해서 오늘 <인문 일기>는 시대 정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인문학을 단순한 문화활동의 영역으로만 이해할 때, 그 인문학은 탈 정치화되고 탈 역사화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문학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사회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게 하고, 구체적인 변화가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실천적 삶에 무관심하게 된다. 인문학을 탈 정치화하면 인문학이 지닌 중요한 비판적 성찰과 세계에 대한 개입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 나는 인문학보다 인문운동가가 되기를 택한 이유이다.

끝으로 박선화 교수의 글을 인용한다. 나도 제대로 나이를 먹고 싶기 때문이다. "나이가 제대로 드는 사람이면 난무하는 선정적인 언어들 사이에 보이는 것이 있다. '몹시 어려웠던 성장기와 처음부터 기울어진 결혼생활'. 그 짧은 단어에 무수한 사연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상처가 오갔고, 누가 더 고통을 받았을지 남들이 알 수도 엇다. 불행해도 함께 살았어야 된다는 건가. 자식을 지웠어야 한다는 건가. 어디서부터 비틀렸을지 모를 인생을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온 게 보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남편 역시 힘들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 파헤치기로 자라는 자녀들까지 고통을 주는 건지 잔혹성에 치가 떨린다."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 2022년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두고 잘 해야 한다.

마음 추스리고, 목필균 시인의 <12월의 기도>를 다시 읽는다.

12월의 기도/목필균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 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 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 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 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쫓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 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 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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