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음을 비우면 행복하고 평화롭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2. 2. 16:07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2월 2일)

어제는 점심 식사 후에 딸과 함께 떠나는 가을에 인사를 하려고 동네 수목원 산책을 하였다. 가을 나무들을 보며 배웠다. 일생 동안 나는 어떻게 물들어가야 하는 가? 떠날 때 보면 된다. 그리고 가을 나무들이 부럽다. 왜? 가을 나무의 잎들은 자신이 떨어져야 할 때,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때가 될 때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다. 떠나야 할 때 자연스레 떠나는 낙엽이 부럽다. 가야 할 때가 언제 인지 몰라 허둥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민망스러운가! 자연은 침묵으로 말한다. 나도 한 해를 마감하면서, '빈 마음(虛心, 허심)'을 준비하고 싶다.

마음을 비우면 행복하고 평화롭다.

우리가 사는 삶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정치행위이다.
말 한마디도 모두 정치행위이다.
상황을 자신의 의지대로 끌고 가려는 욕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한,
이 정치행위를 벗어날 수 없다.
강약, 크기 차이만 있을 뿐,
자신만의 신념이나 판단을 기준으로
각자 '정해진 마음(成心)'*을 가지고 산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진 마음'을 스승처럼 모시고 산다. 현자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똑같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정해진 마음을 기준으로 해서 시비판단을 한다. 그래서 정해진 마음 없이 시비판단을 한다는 말은 오늘 월나라로 떠났는데 도착은 어제 했다는 말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다."

'성심', 아니 분별심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비를 따지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정해진 마음-정치행위-삶'이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삶의 형태에선 어떤 합의도 도출되지 못한다.
각자의 기준은 각자에게 진리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마음'에 갇혀 사는 것이 세상 속 인간이다.
그리고 이 '정해진 마음'을 강화하고 장식하는 데에 거의 대부분을 쓰는 존재가 인간이다.
문제는 그런 인간은 한 곳에 뿌리를 내린 결박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 인간이 하는 일은 대부분 과거를 지키는 일이다.
결박을 풀어야 한다.
새로운 영토로 자신의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려면 자신의 정해진 마음에서 이탈하여 탈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린
어떤 모임에서 늘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꺼려한다.
정치와 종교는 기본적으로 신념의 활동이고,
정치와 종교의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합의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념을 선으로 확신하고 들이밀면서도,
전인격적으로서의 자신은 뒤로 숨긴다.
신념은 각자에게는 진리이다.
'자기 진리'를 양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모두 순교자가 나온다.

무서운 것은 신념이 맹목적인 방향으로 '자가 발전'할 때이다.
그 '자가 발전'에서 타협이 원천 봉쇄되면 근본주의로 빠지기 때문이다.
이 타협 없는 근본주의는 어떠한 합의도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근본주의자들은 비웃음거리가 된다.

두 개의 고사성어를 소개한다.
하나는 '수주대토(守株待兔)' 이다.
중국 송(宋)나라의 한 농부는 토끼가 나무그루에 부딪쳐 죽은 것을 잡은 후, 농사는 팽개치고 나무그루만 지키고 토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한 가지 일에만 얽매여 발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주수(株守)'라고도 한다. 변통할 줄 모르고 어리석게 지키기만 하는 사람이다.

또 하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배에서 칼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뱃전에 빠뜨린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가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으려 했다는 고사(故事)에서, 미련하고 융통성이 없음의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이 두 고사의 주인공은 비웃음의 대상이다.
어리석은 상황에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알아채지 못한 채 어떤 고정된 행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비웃음을 사는 것이다.
달라진 상황에 다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계속 같은 반응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른 시대에 다른 비전을 생산하지 못하고,
고정되고 철 지난 틀로 새 시대를 맞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처럼 '정해진 마음'은 한 번 토끼를 얻은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박혀서 계속 토끼만 기다리게 된다.
토끼를 기다리는 동안 이 농부는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못한다.
막연한 심리적 기대가 객관적 사실로 착각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토끼를 주워서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확신이 너무 커서 지금의 배고픔을 불평할 틈도 없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고 있다 가는 굶어 죽을 수 있다고 해도 그런 말이 귀에 들오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사악한 부류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마음'의 상태가 되면, 그 사람의 온 마음과 행동이 이 '정해진 마음'의 변주에 불과해진다.
한 사람이 하는 모든 심리적 활동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는 '심리적 기대'와 '심리적 확신'인데, 그것을 '객관적 사실'로 믿는다.

여기서 근본주의자들이 나온다.
근본주의자들의 '정해진 마음'은 한 사람을 과거에 묶어두고,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있는 길을 가는 것과 없는 길을 열면서 가는 길은 차원이 다르다.
뱃전에 긁어 놓은 표식만을 마음속에 담고 있다 가는 자신이 배를 타고 얼마나 흘러왔는지를 망각한다.
이 망각은 사람을 맹목적인 상황에서 헤매게 만든다.

또 '정해진 마음'에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해진 마음'이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는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정해진 마음'이 주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해진 마음'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 진실, 아니 '자기 진리'를 지키는 일로 바뀐다.

둘째는 아무리 크고 중요한 일이라도 그것이 정해진 마음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면 바로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럴 때, 사용하는 비굴한 논리들은 모든 상황을 상대적인 묘사 속으로 끌고 간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덜하다"고 하거나 "나만 그런 것이냐"고 하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 한다.

셋째는 남보다 더 낫기만 하면 된다는 종속적 사고에 빠지게 된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남보다 더 나은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것이 있어야만 만족할 것이다. 종속적인 사람은 남보다 더 낫기만 하면 될 뿐이다.

넷째는 '정해진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염치가 없어진다. 자신이 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말한 원칙을 스스로 깨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소위 '정치'를 버리고 '정치 공학'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정해진 마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객관적 비판 능력보다는 감정적 동질감에만 의존하면서, 갑자기 호위무사로 등장한다. 자존감이나 품격이나 진실성은 사라진다. 오직 '정해진 마음'들의 연대만 남는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고정된 틀에 갇혀 염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정해진 마음을 극복하려면, 철저한 인문정신이 요구된다.
정해진 마음에 좌우되는 감정을 극복하고,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일이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기운(氣運)으로 들어라."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아라(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그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道)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 하는 것이 곧 심재니라.

이어서 심재를 실천하여 생기는 결과에 대해 말한다. 심재를 하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귀로 듣는 일, 마음으로 듣는 일 등에는 아직 제한적인 자기 관점이 강하게 적용되는 단계이다. 기의 단계는 아직 이념이나 가치가 개입되기 이전으로서 세계의 원초적 상태이다. 어떤 가치나 관념이 자리 잡기 이전 혹은 자기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은 단계이다.

그리고 "정해진 마음에 갇힌 자를 장례 지내라."
"오상아(吾喪我)".
장자의 '자기 살해'는 기존의 가치관에 결탁되어 있는 나를 죽임으로써,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충만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虛心허심(빈 마음)'의 상태를 갖는 것이다.

*정해진 마음을 굳어진 마음, 시비를 따지는 마음, 편견, 선입견 등 '꼴'을 이룬 마음으로 오강남은 해석한다.
*오강남 번역은 이렇다. "우리에게 생긴 굳은 마음(성심)을 떠나 그것을 스승으로 떠 받들면, 스승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렇게 되면 어찌 변화의 이치를 아는 현명한 사람들이겠느냐, 우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아직 이런 굳은 마음이 없는 데도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것은 마치 오늘 월나라를 향해 떠나 어제 그곳에 도착했다는 것과 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을 있을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토끼를 기다리는 이 농부의 이야기는 <한비자>의 "오두(五蠹)" 편에 나온다. 오두는 나라를 망가뜨리는 다섯 종류의 좀 벌레를 말한다. 즉 나라를 망하게 하는 다섯 가지 요인이라는 뜻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빈_마음 #허심 #성심 #심재 #오상아 #수주대토 #각주구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