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려면 '바다'와 같아야 한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2월 1일)
오늘 아침은 12월이 시작되는 날이고, 아침마다 만나는 <대덕몽>에서 '우리를 설레게 할 가슴 벅찬 그 무엇'을 정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사유(思惟)를 해야 한다. 여기서 '사유'는 머리에 드는 생각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하면 늘 '설렘'이 있다. 반면 그릇된 강한 신념을 가진 존재는 폭력일 때가 있다. 폭력은 싫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기획하는 일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오늘도 꿈을 같이 꿔 본다. 그 꿈은 자신으로부터 낯설어지는 것이다. 오늘도 나를 낯설게 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예약된 대로 아침 모임 후에는 병원에 갔다. 그러나 슬프거나 두렵지 않다. 다 겪어야 할 우리들의 변화이다. 인간은 변화를 감지하고 유도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세월이 인간의 몸을 젊음에서 늙음으로, 자연스럽게 변화시킨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이 우연이라면, 세상을 마감하는 일은 필연이다. 인간은 이 필연을 숭고하게 만들기 위해, 정신과 영혼만은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만들려고 한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면서 과거의 경험으로 부터 배워 지혜롭게 되고, 과거의 경험을 초월하여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영적인 인간으로 승화한다. 배철현 교수의 <묵상>에 읽은 것이다. 병원 가는 길에 큰 위안이 되는 문장들이었다.
승화(昇華)의 시작은 '설렘'에서 시작된다. 승화는 과거의 나가 아닌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시간이다. 승화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천지 개벽하는 장소인 고치 안에서 일어나는 변신이다. 고치 밖에서 볼 때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상상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인 변화가 생긴다. 승화는 고유한 생각과 말이 깊은 성찰로부터 나오는 삶의 방식이다. 승화는 자신의 간절함이 원하는 바를 거침 없이, 자유롭게 행할 때 자신의 삶에 슬며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가치나 의미들은 인식이나 감각이 종합적으로 모이면서 일정 정도로 승화의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들이다. 새로운 길에 대한 상상이나 모험이 일어나는 단계는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매우 승화된 지경이다.
사는 일은 평탄하지 않다. 늘 문제들이 주변에 깔려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거다. 인간은, 이런 수련을 통해, 육체는 소멸해가지만, 정신과 영혼만은 새롭게 단련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있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깨달음을 통해, '그것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과거의 잔재인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진 자신을 이 순간에 실천하는 존재이다. 그런 차원에서 12월 1일이고, 아침의 화두가 '설렘'이었던 것이다.
인간(人間)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 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한다.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하기도 한다. 자연은 '봄' 다음 바로 '겨울'을 맞게 하지 않았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게 하였기에, 오늘 땅 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했고, 가을엔 어김없이 열매를 거두게 했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진다.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게 없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없고,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누릴 수도 없다. 자연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 이었다고." 그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그 그리움이 설렘이 된다. 그리움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긁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이 현실이 될 때가 '설렘'이 된다. 설렘이 많아야 그만큼 더 행복하다.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순간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다. 나는 매일 그걸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래 오늘 아침에 다시 다짐한다. 잘 살려면 '바다'와 같아야 한다. 바다는 스스로를 낮췄기 때문에 계곡의 물이 흘러 든다. 우리도 자신을 비워서 빈계곡처럼 만들면 물이 쏠려온다. 그릇은 비어 있을 때 쓸모가 있게 되는 이치와 같다. 먼저 주고 비우면서, 내 길을 간다. 덜 가지고 더 많이 존재하고 싶다. 저 바다가 노는 것처럼. 좀 일이 정리되면 올해 안에 다시 제주도에서 좀 쉴 생각이다.그 전에 12월은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 같았으면 한다.
12월/임영조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저녁 먹고 오늘 <인문 일기>를 다시 쓴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노년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다짐하며, 그의 충고를 다시 한 번 적어 가며 마음을 추스른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윤정구 교수가 자신의 담벼락에 잘 정리한 것으로 저장해 두었다.
(1)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는다.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몸이 늙어도 마음은 청춘일 수 있지만, 마음이 늙으면 몸은 반드시 늙는다. 단순하게 아파서 청춘이라기 보다는 아픔을 통해서 배우니까 청춘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인문 일기>를 쓰면서, 많이 읽고, 많이 배운다.
(2) 과거를 자랑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자랑은 흘러간 옛 노래만을 반복하고 사는 성장을 멈춘 사람들이 쓰는 신세 타령이다. 옛날 이야기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실제로 자신은 처량한 구세대가 된 것이다. 처량함을 광고하지 말아야 한다.
(3)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긴다. 삶의 지혜를 나눠주고 대신 기술적 진보를 배운다. 또한 적절한 시점에 젊은 이들에게 자신의 의자를 물려주는 지혜를 배운다.
(4) 부탁 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잔소리가 늘었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이 멈춰 자신의 허물보다 남들의 허물이 커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지금도 성장해 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탓하거나 아들을 간섭하지 않는다.
(5) 젊은이들을 개인적 철학으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특수한 경험치에 갇힌 세상과 소통이 안 되는 개인 철학을 조심하여야 한다. 또한 자신의 나이가 자신이 주장하는 철학이 맞다는 것을 다 보증해준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철학도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 수 없다면 다 자신에게 감옥이다. 먼저 이 감옥 속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6)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긴다.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세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최대한 화음을 맞추는 삶을 디자인한다. 인간의 병은 세상과 자연과의 화음이 끊어지는 곳에서 생긴다. 화음은 또다른 울림을 만들어 인생을 장대한 한 편의 교향곡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7) 늙어 가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8) 젊은 사람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않는다. 특히 물질을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거리가 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을 남겨 주기 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성장의 터전으로 삼을 수 있는 삶의 유산을 남겨주도록 한다.
(9)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빨리 죽어야 되는데"를 노래가사처럼 애창하지 않는다. 확실히 오는 죽음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죽음 앞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는 그냥 삶을 즐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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