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욱 농밀해 진다.
4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19일)
오늘은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이 '관광 두레'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타게 되어, 서울 용산에 있는 드래곤시티 호텔에 간다. 이번 주에는 기차여행을 두 번이나 한다. 다음 성경의 구절처럼, 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그랬더니 문이 열렸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으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마태복음 7:7-8)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약 성경>>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이 구절은 하느님에게 은혜를 간구하는 마법의 기도문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느님은 소망을 그냥 쉽게 들어주는 신이 아니다. 그리스도도 사막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을 떼도 아버지 하느님에게 섣불리 은총을 구하지 않았다. 사실 하느님에게 물리적 법칙을 깨뜨리고 우리를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말 앞에 수레를 매달 수 없듯이, 문제를 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제를 해결할 강한 의지와 올바른 성품, 지치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편이 낫다. 아니면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하는 게 더 낫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말다툼할 때는 누구나 자신이 맞고 상대방이 틀렸기를 원한다. 희생하고 변해야 할 사람은 상대방이지 내가 아니다. 만약 내가 틀렸고 내가 변해야 할 사람이라면 과거에 대한 기억,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 미래에 대한 계획 등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아지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해야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이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려면 반복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은 옳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평화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계속 주장할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협상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기도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때 수치스럽고 섬뜩한 진실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자신 스스로 결함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하고 결함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온갖 새로운 생각과 만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은 자신의 양심과 나누는 대화이고, 어떤 점에서는 하느님과 의논하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기도를 드리면서 말이다.
지금 나는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을 다 읽고, 그의 '에필로그'를 보는 중이다. 피터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하느님의 나라(천국)을 목표로 삼고,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고 나서 오늘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핵심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6. 25-34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하느님의 나라에 있는 선함과 아름다움, 진실에 시선을 고정하고, 매 순간 문제에 집중하라는 거다. 땅 위에서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목표는 끊임없이 하늘에 두고,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는 거다. 내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마치 마지막 날처럼 최선을 다하여 주어진 책임을 감당해 가는 것이다.
윤소남 박사의 조문을 가지 못했다. 한 주간 살인적인 일정으로 몸이 따라주지 안 했다. 그래 오늘 시는 김소월의 <초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그 어느 상실감보다 크고 깊다. 같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애타게 불러 본다. 초혼의 사전적 의미는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일이다. 우리가 사극에서 보면 망자의 체취가 스며든 옷가지를 들고 기와지붕에 올라가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제발 돌아와 주기를 갈망한다. 정말 내가 그를 좋아했는데…...
초혼 /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 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 이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힘들게 투병 중이신 이어령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적어 둔 것들을 친구 윤박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 아침 공유한다.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여럿이다.
(1)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욱 농밀해 진다. 우리는 태중에서는 엄마와 한 몸으로 존재한다. 탯줄을 끊으면서 우리는 엄마와 이별한다. 그러니까 만남이 먼저인가? 이별이 먼저인가? 이별이 먼저이다. 그러니 삶의 시작은 헤어짐에서 비롯된다. 삶은 끝없는 헤어짐의 연속이다.
(2)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빛이 없다면 어둠도 없다. 죽음의 바탕이 있기에 생을 그릴 수가 있다.
(3) 투병이라는 말보다 친병이 좋다. 동양은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본다. 상호성이 있다는 거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싶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 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거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 "내일이 없어, 오늘이 전부야"라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농밀한 순간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것인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암이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4) 이어령 교수님의 삶을 그리는 바탕은 인법지(人法地)라 했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산다. 그 다음은 천법도(天法道)이다. 하늘은 도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5)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ego eimi)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하면, '아이 엠(I am)이다. 프랑스어는 '즈 수이(Je suis)'이다.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그걸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격신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 존재이다. 너도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다 신이다.
(6) 시점을 바꿔보면 대상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돼지가 뚱뚱해 보이는 것은 다리가 짧기 때문이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이는 거다. 우리가 바라 보는 세상을 관점을 바꾸면 다 다르게 보인다.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문명은 고속도로처럼 일직선으로 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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