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노자 <<도덕경>에서 얻은 50가지 삶의 지혜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5. 18:20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1월 5일)

오늘은 <인문 일지>를 대구 복지관에서 어른들과 하는 인문학 강의 원고로 공유한다. 제목은 '노자 <<도덕경>에서 얻은 50가지 삶의 지혜'이다. 노자 <<도덕경>> 중심 테마를  '반(反), 무위(無爲), 성인(聖人), 도(道) 그리고 덕(德)'으로 나누어, 내게 인상적이었던 50개의 단어를 발췌하여 함께 생각을 해 보는 거다. 오늘부터 조금씩 나누어 공유할 생각이다. 오늘은 노자가 말한 5개의 말을 공유한다. 삶이 흔들릴 때 기억해 두면 좋은 문장들이다.

제1주제: 반(反)
▪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 제40장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아시아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이를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제40장)이라 한다. 나는 오늘 아침도 '되 돌아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너무 그리워하지 말자. 때는 기다리면 온다.

▪ 약자, 도지용(弱者, 道之用)-제40장
유약해지는 것은 삶으로 가는 것이고, 굳세고 강해지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 우리의 몸도 유연해야 건강하고 부상의 염려가 적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늘 스트레칭과 운동을 통해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음이나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마음도 비워 유연하게 하는 것이 몸을 유연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음에 굳은 신념이나 집착이 있으면 유연한 몸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의 병의 대부분은 마음에서 나옴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에서 생각을 비우지 못하면, 항상 다투느라 괴롭다. 돈, 명예와 권력등을 다투어 적을 만들게 되고, 얻어도 행복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생각을 비워야 그것들을 얻기 쉽고, 얻어도 집착하지 않으니 위태롭지 않게 된다. 유약함이 굳세고 뻣뻣한 것을 이긴다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과 같은 이치이다.

▪ 유무상생(有無相生)-제2장
자연은 양면성이 있다. 오르막 내리막 모두 같은 길이다. 자연은 대립면의 꼬임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역』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대립, 노자가 말하는 무와 유의 대립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자는 이것을 "유무상생'이라고 한다. 전관(全觀)적인 시선을 갖는 거다. 노자 철학에 따라, 무심하게 순환하는 역사(시간=도)의 장 위에서 오늘 나의 삶을 위하여 무언 가를 창조하는 한 걸음을 내 딛는 거다. 역사 그 자체에 의미부여를 하는 어리석은 짓을 때려 치고, 역사의 계기 계기에 아름다운 무위(無爲)의 실천,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이 하나되는 전관적인 삶의 건강을 실천하는 거다. "전관의 지혜를 가지는 자는 대대(對待) 관계의 양면을 포월(包越)한다"(김용옥)는 거다. "대립하는 것들은 서로 의지하여 자신의 존립을 도모한다. 유가 있기 때문에 무가 있으며, 무가 있기 때문에 유가 있다. 그래서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이라고 말했다. 즉 대립자들은 대립하는 가치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유는 무를 포섭하고, 무는 유를 포섭한다. 어려움은 쉬움의 포함하며, 쉬움은 어려움을 포함한다. 그런데 결국 이 대립자들은 서로 대립되는 상대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쉬움이 어려움이 될 수가 있고, 어려움이 쉬움이 될 수가 있다. 이렇게 대립되는 양면을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통일하는 것이 포월(包越, 품어 안고 넘는다)의 지혜"(김용옥)라는 거다. 그 길이 전관(全觀)의 인간이 되는 거다.

▪ 천장지구(天長地久) 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제7장
노자는 천지의 모습에서 성인의 행동 준거를 찾고, 당연히 우리 보통 사람은 성인의 행동에서 우리의 행동 준거를 찾는다. '도(道)' 대신 천지(天地)를 말한 것은 천지는 '도'보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천지의 문제를 '영원'으로 말하지 않고, '장구(長久)'로 말하였다. 보통 장구는 시간의 지속을 말하지만, "장(長)"에는 공간적 성격도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천장지구"는 "하늘은 너르고 땅은 오래간다"로 해석된다. 그리고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부자생(不自生)"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여기서 "자(自)"를 목적어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니까 "부자생"은 '자아를 위한 삶을 살지 않는다', '자기 의식 없이 생성한다', '자신의 의지나 욕망에 따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것을 조작하지 않는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삶을 연장키 위해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리고 '만물의 생성이 모두 자기로 인하여 이루어진다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거다. 생이불유(生而不有, 낳되 소유하지 않음)" 계열의 해석이 가능하다. 천지가 '장구' 할 수 있는 것은, 천지는 만물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을 뿐 자기 자신의 사적인 생명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지는 자기 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능히 '장구' 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 후신신선(後身身先), 외신신손(外身身存), 무사성사(無私成私)-제7장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邪(비이기무사야)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

이 말은 '그러므로 성인은 몸을 뒤에 두기에 앞설 수 있고, 몸을 밖에 둠으로써 몸을 보존한다. 사사로운 마음을 앞세우지 않기에, 능히 자신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다르게 해석해 본다. '성인은 그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앞서게 된다. 그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 그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능히 그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노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바로 후기신(後基身)이나 외기신(外基身) 혹은 무사(無私)가 아니라, 바로 신선(身先)이나 신존(身存) 그리고 성기사(成基私)이다. '후기신'이나' 외기신' 혹은 '무사'는 '신선'이나 '신존' 그리고 '성기사'를 차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능할 뿐이다. 노자적 삶은 소극적이고 모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앞서게 하기 위하여 그 몸을 뒤로 하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다.

▪ 곡즉전(曲則全), 왕즉지(枉則直), 와즉영(窪則盈), 폐즉신(敝則新), 소즉득(小則得), 다즉혹(多則惑)-제22장

휘면 온전할 수 있고(曲則全 곡즉전),
굽으면 곧아 질 수 있고(枉則直, 왕즉직),
움푹 파이면 채워지게 되고(窪則盈, 와즉영),
헐리면 새로워지고(敝則新, 페즉신),
적으면 얻게 되고(小則得, 소즉득),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됩니다(多則惑, 다즉혹).

나는 이 "곡즉전(굽어서(曲) 온전할(全) 수 있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길도 강(江)도 나무도 적당히 휘어져 있어 자신의 임무를 다할 수 있다. 또한 땅 속의 온갖 나무뿌리도 알맞게 굽어서 척박한 땅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휘면 온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하려면 휘어져야 한다. 들판의 풀잎들을 보면 그렇다. 바람이 불 때 휘어지지 않는다면 뿌리에 뽑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나무가 구부러져 쓸모없어 보이면 잘리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남을 수 있는 거다. 살아 가는데 융통성, 유연성을 유지라는 말로도 이해된다. 이 문제는 오늘의 시를 공유한 다음 그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쨌든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구부러진 길>을 좋아한다.

자벌레를 가만히 보면, 굽어져야 곧아지고, 곧아져야 굽어진다. 곧아지려면 굽어져야 하고, 굽어지려면 곧아져야 한다. 굽어짐이 돋 곧아짐이고, 곧아짐이 곧 굽어짐이다. 굽어짐과 곧아짐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처럼 "와(파임)"과 "영(메워짐)", "폐(헐어짐)"과 "신(새로워짐)", "소(적음)과 "다(많음)"은 모두 반대되는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 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서로 붙어서 돌아가는 하나의 진행일 뿐이다. 따라서 노자적 삶을 사는 사람은 '반대의 일치'라는 위대한 진리를 통찰하고, 거기에 따라 살아가는 자이다. 보통 우리는 세상을 한 쪽 면으로 본다. 이런 사람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절대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하고, 그 한 쪽을 위해 전심 전력한다. 위에 본 것처럼,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한 세상 지내는 것보다 좋다고 생각했으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다. 기회 있을 때마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자기가 뭔가 되는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자기를 자랑하고, 뽐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짓들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세상을 양면으로 다 보는 사람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일이 없어 구태여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더욱 빛이 나고, 돋보이고, 인정을 받고, 오래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구부러진 길"을 좋아한다.

구부러진 길/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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