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못된' 언론에 생각없이 생각을 당한 거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4. 09:44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1월 3일)

지난 <이태원 참사>를 되짚어보면, 정치권, 특히 여권 인사들의 행태는 상식을 벗어났다. 대통령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끝내 사과하지 않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로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 ‘송구하다’고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대통령이 뒤늦게 녹취록을 보고받고 불같이 화냈다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뒤늦게 보고받았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대통령이 화낼 일이 아니다. 인재임을 알고도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을 향해 유족과 국민들이 화내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외신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농담하고 웃음을 보인 것도 어이가 없다. 국격 추락이며, 죽음에 대한 무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찰과 관료시스템이 갑자기 기능부전 상태가 된 것은 더 크고 근원적인 어떤 원인의 현상이 아닐까?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용산구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의 가볍고 무책임한 언동과 외신기자 회견에서의 한덕수 총리의 말이 ‘실수’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사회를 탓하는 위험한 발언과 어이없는 농담이, 있어야 할 곳엔 없고 다른 곳엔 과잉 배치된 공권력의 문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현 정부는 근본적 무능과 빈약하고 전도된 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검사와 특권층 엘리트들로 구성된 정권이 과연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안전문제를 생각하고 다룰 능력이 있을까? 그들에게 만원 지하철 출퇴근과 산업현장의 위험에 대해 어떤 경험과 공감이 있을까?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28명이었다. SPC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과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 다른 존재가 아니다. 겨우 만들어 놓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덕 기업과 그 소유주에게 적용하기는 커녕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하거나, 틈만 나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없애려 하는 것이 이번 참사와 다른 맥락에 있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해밀턴호텔의 불법 증축을 들지 않더라도 참사의 원인에 생명이나 안전보다는 돈, 사람보다는 이윤의 논리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권력과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지만 관리되지 않는 갈등은 위험하다.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 갈등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국 중 3위인데 갈등 관리 능력은 27위로 바닥권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문제는 ‘유익하게 싸우는 정치’는 할 줄 모르고 ‘유해하게 갈등하는 정치’에만 능한 것이다.

다음은 아침에 읽은 오은 시인의 애도방식이다. 어쩌면 이게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애도의 과정에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는 일 또한 포함되어야 하는데, 참사 이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유감을 전달하면서도 과오는 인정하지 않았다. 사흘. 정부와 지자체가 사과를 결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시행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책임입니다. 국민들께서 안심하실 때까지,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일어났다. 애통과 참담 사이에서 지치지 않고 책임을 따지는 것, 이것이 나의 애도 방식이다."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마련되기도 전, 대대적인 온라인 여론전이 이루어졌다. 할러윈은 외국 전통이 상업적으로 변질돼 청춘의 방종을 부추기는 날이고, 상인들이 이를 돈벌이 기회로 삼았다는 것이다. 안전불감증, 유명인의 출현, 사고 후에도 춤과 음악이 멈추지 않았다는 증언, 대여섯명의 남성이 밀라고 소리쳤다는 소문 등 참사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이야기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인에게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 할러윈에 이태원을 찾고 술 마시며 논 그들에게 말이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당한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는 길이었음을 강조했던 이들이 있었다. 내 주변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못된' 언론에 생각없이 생각을 당한 거다.

그후, 참사 당일, 실제로 112에 수차례나 신고가 접수되었다 한다. 최초 신고자의 말에는 “압사당할 것 같다”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백’과 ‘부재’였다. 공권력의 공백과 안전할 권리의 부재. 공권력에는 혼잡이 예상되는 도로를 통제할 권리, 대규모 군중이 무사하도록 치안 유지에 힘써야 할 의무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상황은 위태로워진다. 그날,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정부는 없었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이 문제는 명백하다. 이젠 저항해야 한다. 이게 나의 애도 방식이다.

대안이 무엇일까? 노자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과 세계관이 답이 아닌가 하며, 그의 글을 다시 읽게 된다.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를 적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는 말이다. "나라를 작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 갖추지만, 굳이 쓸 일이 없게 삶을 경영한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죽음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되게 한다. (…) 자기가 먹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고 여기고, 자기가 입은 옷이 가장 아름다우며, 자기가 사는 집이 제일 편안하고, 자기가 누리는 문화를 가장 즐겁게 여기는 삶을 산다. 이웃나라는 서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 닭 우는 소리와 개 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 있지만, 주민들이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권력의 강화와 영토의 확장을 위하여 더 큰 질서를 요구하던 시대에게 노자는 개인의 자유와 평범한 일상의 회복이라는 '인문학적' 이슈를 던졌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야 할 당위성이 있으며, 어떤 권력도 인간의 삶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 제80장에서 자신의 이상적 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거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이고,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고, 내가 즐기는 오늘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세상을 제시했던 것이다. 왕은 권력은 가지고 있으나 통치하지 않고, 방어력은 갖고 있으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문명의 도구는 있으나 그 도구에 인간이 종속 당하지 않는 그런 평화의 세상을 노자는 꿈꾸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도 마을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거라 본다. 동네에 산다는 것은 이웃에게 나의 삶을 드러내는 거다. 우리 세대는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알던 시절을 살았지만. MZ 세대들은 모른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세계화 시대를 살고,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 세상을 준비하는 그들에게는 익명성과 소외감이 기본이다. 핵가족도 해체되었다. 이젠 결혼도 잘 안하고 애도 잘 안 낳는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대안적 공동체를 확보해야 한다. 동네가 미래이다.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개인들이 모여 살면서 느슨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동체가 미래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장거리 이동이 줄고 온라인 소통이 늘어남에 따라 동네 기본 활동에 대한 욕망은 늘어날 것이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지역화는 불가피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 지역 재생을 고민할 시간이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성경 구절이다. 다디단 여름의 포도송이를 죄다 건네주고 너덜너덜 늙어버린 포도나무 가지들은 다음 봄을 위해 잘리고 태워진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과 포도나무가 태워진 이후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열매를 맺고 서서히 말라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삶의 편에 '서' 있는 우리의 시간에 속한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생기기 이전과 우리가 사라진 이후의 사이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 이후 그 사이에 숨을 멈춘 채 타들어가는 시간이 있다. 그 사이를 무엇이라 부를까? 조문의 시간일까, 상실의 시간일까, 애도의 시간일까. '사이를 알아차린다는 건 사무치게 부재를 견뎌내는 일이겠구나' 생각하는 사이 가을 달이 지고 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허수경

서는 것과 앉은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나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니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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