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4일)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에서 말하는 아홉 번째 규칙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이다.
진솔한 대화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며. 기발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지만, 듣는 시간이 더 길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경청(傾聽)한다. 경청은 주의를 집중해서 듣는다는 뜻이다.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은 뜻밖의 것까지 말한다. 잘 알다시피,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온전히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청은 쉽지 않다. 남의 말을 잘 듣는 데도 능력이 필요하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을 오늘 아침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그 책은 토마스 쯔바이펠이 쓴 『듣기력』(박주관 역, 에코 비즈니스, 2004)이다. 지금은 이 책을 구하기 어렵다. 어느 날, 내 누님이 주신 책이었다. 그 책은8 듣기 능력을 8단계로 나눈다. 내 듣기 능력은 몇 단계일까?
0단계: 듣기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고 아무 것도 듣지 않는 수준이다.
1 단계: 상대방의 말을 듣는 척하는 사람이다. 실제로는 듣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듣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2단계: 상대방의 말을 통제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는 몸동작이나 얼굴 표정, 소리를 통해 상대가 말을 할 때 영향을 미치는 듣기이다.
3단계: 상대방을 말을 걸러내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말을 '해석'이라는 절차를 거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3단계까지, '무시하기', '척하기', '통제하기', '걸러 내기'는 듣기 능력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말하는 동안 배울 것이 없다'는 격언을 받아들이면, 그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다. 진정한 경청은 다음 단계 부터이다.
4단계: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존중하기'는 자신이 할 말을 머릿속에서 지운 상태로 상대방의 말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다.
5단계: 상대방의 말을 공감하는 사람이다. '공감하기'는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자신이 그가 되어 서 보는 것이다.
6단계: 상대방의 말을 발생시키는 사람이다. '발생시키기'는 상대방이 돋보이게 하며 듣는 단계이다.
7단계: 말을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듣는 사람이다. 이 단계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말하는 동안 상대방이 내 말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상배방의 말을 잘 듣는 경청은 절제이며 겸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경청의 태도는 우리들이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중 하나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안 그러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웅덩이에 빠진다. 생각한다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계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해서는 안 될 어리석은 짓들을 알아낼 수 있다.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모의 실험을 통해 행동을 계획한다. 오직 인간만이 그렇게 한다. 인간이 그래서 똑똑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어 상상의 세계로 보낸다. 그러고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본다. 상상의 세계에서 아바타가 성공하면, 현실 세계에서 아바타처럼 행동하며 실제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아바타가 실패하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아바타가 상상의 세계에서 망하게 둔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망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상의 아바타의 소리를 잘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이라 여겨지는 것은 주로 자기 비판이다. 진정한 경쟁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사고(思考)도 드물다. 생각하는 행위는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무척 어렵다. 진정으로 생각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두 사람 역할을 해야 한다. 내 안의 둘의 의견이 충돌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생각은 둘 이상의 서로 다른 세계관이 내면에서 하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행위는 내적인 아바타들이 각자의 세계를 서로에게 표현하고 설명하는 과정이다. 생각할 때 허수아비 같은 보잘것없는 아바타들을 세워 둬서는 안 된다. 허술한 허수아비들의 논쟁은 생각이 아니라 사후 합리화일 뿐이다. 조심해야 한다. 정해진 결론으로 증거를 합리화하게 된다. 한 마디로 진실을 감추게 된다.
진정한 사고는 까다롭다. 진실하게 생각하려면 명료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들어야 한다. 진실하게 생각하려면 갈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 갈등을 받아들여야 한다. 갈등에는 협상과 타협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딜(deal)의 기술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상대가 있다는 것, 혼자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 주고받아야 한다. 그게 딜이다. 그러니까 주고받는 법을 배우고, 전제를 수정해 생각의 방향과 세계관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데 능숙하지 않으면, 말을 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어 줄 상대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말을 하면서 깨닫는다. 즉 자신의 인격에 찢어진 작은 틈새를 발견하고 스스로 꿰매어 붙이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늘 아침에는 권대웅 시인의 페이스 북 담벼락에서 한 가지 '위안 되는' 통찰을 얻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자꾸 해결하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풀려고 할수록, 말할수록 더 꼬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두는 거다. 가만 두면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권 시인은 어떤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순간 뇌가 판단해서 지시하는 답을 곧바로 따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우리 인간이 배워온 이성적 판단이 항상 옳지는 않다. 그러니 그 판단을 믿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많다. 시인은 "우리의 삶은 유화나 페인트 칠이 아닌 번짐, 스며들어 배어 나오는 수채화"라 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우리들의 삶은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혹은 급한 문제가 생길수록 바로 빨리 해결하지 않고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문제에 당면한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다 보면 저절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성적 판단에서 나오는 합리적 생각보다, 살아오면서 체험한 감성적 판단이 인간의 문제에 대부분 정답을 가져다 준다. 그 답은 조금 늦게 온다. 거리를 두고 있어야 온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신성마을연구소>의 시민연구원들은 이번 주말에 새로운 도시를 방문한다.
그리고 권 시인 덕분에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니, 한 구절 한 구절 새롭게 다가온다. 왜 사람들이 이 시집을 "제2의 성서"라 부르는지 이젠 알겠다. 이 시집은 '사랑, 결혼, 선과 악, 일, 자유 등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할 만한 보편적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한다. 나는 틈나는 대로 이 시들을 공유할 생각이다.
사랑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싸 안을 땐, 몸을 내어 맡기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사랑이 그대들에게 말할 땐 그 말을 믿으라,
비록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들의 꿈을 망가지게 하더라도.
왜? 사랑이란 그대들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만큼 또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니까. 사랑이란 그대들을 성숙시키는
만큼 또 그대들을 베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니까.
심지어 사랑은 그대들 속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들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를 껴안지만,
한편 사랑은 또 그대들 속의 뿌리로 내려가 대지에 엉켜 있는
그것들을 흔들어대기도 하는 것이기에.
(…)
시가 너무 길어 이어지는 것은 블로그로 옮긴다. 그리고 시 피터슨의 이야기로 되돌아 온다. 로저스(C.R Rogers)는 경청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대다수가 경청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경청하지 않고 섣불리 상대를 평가하려는 습관이 있다. 왜냐하면 경청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경청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항상 용기가 있는 게 아니다." 로저스에 의하면, 경청이 사람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늘 경청하는데 바뀌는 게 없다고 말하면 자신이 말하는 경청의 유형에 속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피터슨은, 잘 경청하기 위해, 대화할 때 습관적으로 상대의 말을 요약해서 들려주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이점들이 있다 했다.
(1) 내가 상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요약 기법을 통해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세계에 들어가 그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게 되면, 그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의 서고 방식과 성격이 변할 수 있다. 이런 변화의 가능성이 요약의 가장 놀라운 측면 중 하나이다.
(2) 상대가 기억을 강화하고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화하면서 중간 중간에 이해한 것을 요약하며 서로 주고 받으면 과거의 기억이 압축된다. 기억이 쓸데없는 부분들은 지워지고 핵심만 남게 된다. 게다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요약함으로써,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비슷한 사건이 가져올 비극과 고통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사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정확한 기록'을 위해서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3) 상대방의 견해를 실제와 다르게 왜곡하여 받아들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논법인 '허수아비 논법'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 누군가의 주장을 요약할 때는 그 말을 한 당사자보다 더 명료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 상대는 자기 생각을 빠짐 없이 솔직하게 전달한다. 대화가 지루하지 않으면 경청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지루하면 경청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말하는 행위가 모두 생각하는 행위가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모든 경청이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다음과 같은 대화는 수준이 낮고 역효과와 위험한 결과로 이어진다.
(1) 대화를 통해 서열 주조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고 시도하는 대화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최근에 있던 흥미로운 사건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재미도 있고 중요한 정보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은 왠지 자신이 그보다 하찮아 보인다. 그래서 그보다 더 화려하고 놀라운 주제를 생각해 낸다. 이런 대화는 순수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열 싸움을 하는 거다.
(2) 어느 쪽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 경우이다.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한다. 듣지 않기 때문에 다음 발언이 주제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화가 원만히 흐르지 않고 삐끗 거리다 중단되기 일쑤다.
(3)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설득하려는 의도가 지배하는 대화도 있다. 이런 대화에서는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강하다. 이런 대화의 목표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단순한 세계관에 대한 지지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점을 알려 주려는 목적이 있다. 정치적인 대화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 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이데올로기적 믿음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위의 세 가지 대화 유형에는 경청이 없다. 경청은 한 번에 한 삼만 발언하고, 상대방은 주의 깊게 듣는 것이다. 발언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의견을 진지하게 개진할 기회가 주어진다. 인간은 대화하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사실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으면 정신이 망가진다. 정신 건강을 위해 마음을 정리하려면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활용해 복잡한 자아를 정산적으로 기능하게 한다면 건강한 정신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적절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경청이 중요한 이유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청자의 공감은 화자에게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며 발언 내용 역시 주의 깊게 들을 가치가 있음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강의도 대화의 한 형태이다. 말은 주로 강사가 하지만 청중은 비언어적으로 강사와 교감한다. 자세와 표정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비언어적 상호 작용이 일어난다. 훌륭한 강사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중의 이해 수준에 맞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응을 보면 청중의 이해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훌륭한 강사는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청중과 함께 대화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강사는 청중의 움직임, 태도, 소리 등 모든 반응을 잘 살피고 그것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청중을 일방적으로 듣는 집단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함께 대화하는 개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적 탐험을 위한 대화' 유형도 있다. 이 대화는 경청과 비슷한 유형에 속한다. 듣는 쪽과 말하는 쪽 모두에게 진정한 상호성이 요구된다. 이 대화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런 대화의 참여자는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모두 대화를 통해 뭔가를 배우겠다는 자세로 참여한다. 이런 대화는 질서보다 혼돈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경청과 관련되지 않은 대화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지적 탐험을 위한 대화는 미지의 것이 이미 알려진 것보다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우리 자신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면 지금 당신이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자신이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이 모든 것에 휘둘리는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알게 되면 더 간강하고 도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있다. 고통을 줄이고, 악의 사악함에 저항함으로써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상대를 억압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철학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혼돈과 질서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심오한 대화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빈틈없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미 믿고 있는 것만 고집하며 그것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 함께 새롭고 넓고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존 듀이는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① action communication : 말하는 사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선형적이고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S → R
(source 화자) (receiver 청자)
② interaction communication : 듣는 사람의 종속성에 초점을 맞춘 쌍방향의 원형적 커뮤니케이션
S ↷ R
↻
Stimulus(자극) Response(반응)
③ transaction communication :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교호’적, 상호 의존적 커뮤니케이션
S1 S2 S3.................
↘ ↗ ↘ ↗ ↘
R1 R2 R3........
'줄탁동시‘라는 사자성어처럼, 새로운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이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청자와 화자가 과거의 믿음을 버려야 변화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얻게 된다. 이런 식의 경청하는 대화를 통해 모든 가면은 벗겨지고, 진실은 환히 밝혀진다. 그러니 삶의 중요한 규칙으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새로이 얻은 지식이 합쳐져 지혜로 변할 것이다. 자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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