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11월처럼 나란히 "적당함의 거리"를 유지하며, 혼자 가리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1. 1. 19:12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1일)

어제는 할로윈(Halloween, hollow는 앵글로 색슨어로 '성인') 데이였는데, 코로나-19로 행사들이 대부분 취소되었다. 나는 동네 꼬마들이 분장을 하고 오면, 건네 줄 사탕을 사다 놓았다. 그런데 한 팀밖에 오지 않았다. 할로윈 데이는 매년 10월 31일에 기이한 분장이나 복장 갖춰 입고 미국에서 하는 축제이다. 오늘 11월 1일 만성절(죽은 모든 영혼들을 기리는 날)을 앞두고,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는다는 것이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이웃집을 찾아 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을 얻는다. 이 때 외치는 말이 "trick or treat!"이다. "과자를 안주면 장난칠 거야"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 되었다. 그러나 이웃 사이에 다리를 놔주고, 지역의 문화 활동을 활성화 시키는 축제로 만들어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축제의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 한 주는 죽은 영혼들을 기리는 주간이다. 이를 우리는 만성절(萬聖節, 모든 성인 대축일)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All Saints Day, 프랑스어로는 Jour de Tous Saints(뚜쌩)이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오늘 11월 1일이 휴일이다. 많은 이들이 묘지를 찾아가 대리석을 닦고, 꽃을 갈아준다. 더 춥기 전에, 죽은 자를 위해 산 자가 시간을 내는 것은 도리라고 본다. 나도 내 부모님을 비롯하여, 먼저 하늘 나라에 간 내 처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을 기억하는 한 주를 보낼 생각이다. 특히 하늘나라로 가신 102살 이모님의 천당에 가심을 축복하는 한 주를 보낼 생각이다. 오늘 사진은 동네 꽃집이 꾸민 장식이다.

어쨌든 만성절 11월 첫날이다. 프랑스는 오늘 공휴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월요일이다.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리고 이젠 올해도 두 달 남았다. 그렇지만 11월이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나태주, <11월>) 나태주 시인은 우리 동네 어른이시다. 그리고 시인의 모습과 내 모습이 거의 비슷하여, 사람들은 나보고 "나 시인님" 하면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더 웃기는 것은 나태주 시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페이스 북에 오르면, 내 포스팅에 올라와 어제 함께 하신 사진이라고 뜬다. 11월이다. 시인은 11월을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하신다.

또 하나 더 있다. 이호준 시인의 <11월>이다. "괜히 11월일까/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따뜻한 눈빛 나누라고/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끝내 사랑하라고/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나란히 세워 세워놓은 게지"

세월이 빠르다. 그 덥던 여름이 어제 같은데 말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장자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한다. 그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사실 '금방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체득은 언뜻 생각하면,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 포기해 버리려 할 것 같지만, 정반대로 내게 두려움 대신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주기도 한다. 그 의지는 순간을 영원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순간에 대한 체득은 필연적으로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낳게 한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그것을 흔들어서 무한 확장하려는 예술적인 높이의 도전으로 이끌어 준다. 죽음에 대한 체득이 삶을 튼실하게 북돋운다.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바람직한 일보다는 자기가 바라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교수가 늘 하는 말이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삶이 진짜 귀중하다는 가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드물게' 누릴 수 있는 자원이다. 그러니 삶은 더욱 다정한 언어로 채워야 하는 귀한 시간이다. 죽음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가? 멍청한 일에 기웃거리고, 세상이 주입한 생각에 휩쓸리면서 말이다.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지금 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정말로 나의 유한한 시간을 쓸 만한 일인가를 스스로 묻게 한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앞당겨 대면하면, 삶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난다.

11월처럼 나란히 "적당함의 거리"를 유지하며, 혼자 가리라. "누구나 붙어있을 때 상처받기 쉽다/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언제나 혼자임을 가슴에 종기처럼 안고 가라."

적당함의 거리/김기산

아무리 떠들고 웃고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질러 봐도 돌아올 때는 혼자다
낯섦이 친구를 찾게 하고
아내를 얻고 살을 맞대도
깨고 나면 누구나 혼자 길에 서 있다
가족도 특별히 친한 타인일 뿐

워즈워스의 수선화 찰랑이는 호수
황홀한 빛에 발을 들여놓으면
늪이 되고 만다
삶은 얽매이는 것 아니다
지극한 사이기에 자신을 내어주면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인생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하늘의 별들이 각각이고
대숲의 댓잎들 서로 붙어있지 않듯이
바람소리 그대로 성글성글 지나가게 하라
누구나 붙어있을 때 상처받기 쉽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언제나 혼자임을 가슴에 종기처럼 안고 가라  (시집 『사람이라서 미안하다』 2021년 도서출판 한터)

언제나 그렇듯이, 우주의 주인인 시간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자연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적당하게 변모하지만, 시간을 인위적으로 인식하는 인간은, 언제나 시간과의 대결에서 패배자다. 2021년 10월도 그렇게 쏜 살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변이바이러스의 등장은, 우리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자랑했던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이 선제적이지 못하고 임시방편이란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인간 문명은 언제나 회고적이고, 문화는 변명이다. 우리는 어리석게, 과거 깨달음에 대한 기록을 통해 오늘과 내일을 예상하고 대처하려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시간과, 시간이 만든 장소 안에 매 순간에 입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해답을 과거에서 찾으려 시도한다. 우주가 창조된 이후, 시간은 멈춰선 적이 없고 장소는 원래 그대로의 상태로 머문 적이 없다. 지금을 직시하여 그것에 어울리는 방안인 '변화', 아니 '혁신'만이 해답이다. 혁신은 과거를 유기하려는 용기이며, 미래를 지금-여기에 당겨오려는 수련이다. 이를 위해 우선 변하여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잘 존재하려면, 즉 웰-빙(well-being)하려면, 세상의 틀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절절하고 적당한 변화(變化)를 해야 한다. 한근태는 변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큰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키워드가 세 개이다.
- 간절히 원하는 것
- 고통 감내
- 새로운 습관
그러면서 변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 정말 변화를 간절하게 원하는가?
- 변화에 따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가?
- 새로운 생활 습관을 만들 수 있는가?

11월부터는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를 가장 우선하는 습관으로 만들 생각이다. 아침에 꼭 30분 이상을 걷는다. 딸을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와인 마시기를 좀 줄이고 싶다. 어차피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뿐이다. 세상과 '적당함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제나 혼자임을 가슴에 종기처럼 안고" 가리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기산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적당함의_거리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