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24일)
노자 <<도덕경>> 제47장은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또는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본다'는 "불행이지(不行而紙)"라 제목을 달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장이다. 직접 한 구절 씩 정밀 독해를 한다.
不出戶(불출호) 知天下(지천하):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고
不闚牖(불규유) 見天道(견천도): 창문 틈으로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도(길) 또는 하늘의 운행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호(戶)"는 '대문이'고, "유(牖)"는 '창문'이다.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알고, 창문(유)을 통해 밖을 보지 않더라도 하늘의 변화를 안다. 견문을 넓히려면 세상을 두루 다녀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깨우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세상에 관한 지식을 쌓는 것과 통찰력을 갖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것은 명상과 자기 성찰을 통해 도를 깨우친다는 의미다. 제갈공명은 심산유곡 산중에서도 천하의 대세를 읽는 안목을 깨우쳤고, 달마대사는 세상과 등을 진 채 면벽수도만으로 도를 깨우쳤다. 더 멀리 나간다는 것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그렇게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도 영혼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는 시장을 탈출해서 동굴로 들어갔다.
박재희 교수는 이 문장을 좀 결이 다르게 읽는다. 그는 "지도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 여기저기 다니며 간섭하거나 강요해선 안 된다"는 요지로 읽었다. 자신의 의도를 보이거나 생각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자신의 자리에서 소박하게 지내며 세상이 저절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무위(無爲)를 실천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라는 거다. 최대한 간섭하지 않고, 직무에 맞는 능력 있는 사람을 잘 선발하여 그들에게 각각 임무를 맡기는 정치가 무위의 정치이다. 무위 정치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다음 구절의 이해가 더 잘 된다.
其出彌遠(기출미원) 其知彌少(기지미소): 더 멀리 나갈수록, 더 적게 안다. 또는 밖으로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더 적어진다. 또는 밖으로 나다니는 것이 멀어질수록 참된 지혜는 더욱 더 적어질 것이다.
是以聖人不行而知(시이성인불행이지) 不見而名(불견이명)不爲而成(불위이성): 그러므로 성인은 돌아다니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을 부르고,하지 않으면서 이룬다.
지도자가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고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세상을 이끌어 나가면 세상을 더욱 혼란해지고, 그 피해는 백성과 지도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세상의 정보를 얻고 처리한다. 내가 직접 나서면 결국 나의 앎은 보고 들은 것에 한정된다. 그것이 나설수록 앎이 적어진다는 거다. 나다니지 않아도(不行) 세상의 정보를 얻고, 드러내지 않아도(不見), 명성이 저절로 알려지고, 일 벌이지 않아도(無爲) 저절로 성과(成)을 내는 사람이 진정 성인(聖人)의 지도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불견이명(不見而名)"이 어렵다. 도올은 이것을 "직접 나다니면서 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사물의 이름됨을 알 수 있다"고 풀이를 한다. 여기서 "명"은 제1장의 "상명(常名)"으로 보는 거다. 그것은 "사물의 진체(眞體)"라는 거다. '사물의 진체'는 직접 경험으로 써가 아닌, 원리적 파악에 의하여 그 진상이 총체적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노자가 보는 "성인'은 세상과 결별한 채 자신의 방에 틀어 밖혀 속세를 떠났다고 하면서 면벽 수도하는 사람은 아니다. 세상이 저절로(자연) 돌아갈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성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꿰뚫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있는 사람이다. 천 개의 눈을 갖고 보고, 천개의 귀를 갖고 소리를 듣기에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널고 깊다.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저절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진정한 성인이다
이 장을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세상의 일을 아는 요즘 시대와 겹쳐진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술은 세상과 사람, 정보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사물인터넷은 이미 보편화되었고, 사람과 동물, 동물과 식물을 연결하는 종간인터넷과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우주인터넷도 차츰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백악관을 나서지 않고도 이란의 실력자를 정확하게 제거했다.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은 실리콘밸리의 문을 나서지 않고도 세상 모든 사람들의 욕망과 취향을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기술은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의 도를 앞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장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리가 외부 세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외부 현상에 대한 정보만 찾는 데 온갖 신경을 다 쓰면서 돌아다니기만 하지 말라는 거다. 이렇게 외부적인 것에만 관심을 쏟아 버리면 사물의 밑바탕인 참된 근원을 간과하고 말게 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는 거다. 그러니 진리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생각하면서 표면적 현상 세계를 찾아 쏘다니는 부질 없는 일을 하지 말고, 조용히 앉아서 우리 내면에서 발견되는 진리의 뿌리를 붙잡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주의 근본 법칙인 도(道)를 꿰뚫어 보는 능력만 갖추면, 그 도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 만물이 어떠함은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노자의 도는 책이나 견문을 통해서 배우거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는 집 대문 밖을 나돌아 다니지 않고도 깨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도를 얻고 나면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것으로써 다 풀릴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부산하게 밖으로 쏘다니지 말고 우선 도를 찾는 데 전념하라는 거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 세계에 관심을 집중하는 거다. 오강남 교수는 이것을 "소우주를 이해하므로 대우주를 알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한다.
월요일인데, 노자를 함께 읽는 대신, 우리는 익산 미륵사지를 다녀왔다. 2022 백제역사유적지구 국제학술포럼 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다. 주제가 "메타버스 시대, 세계유산의 과제"여서 흥미로웠고 많이 배웠다. 미륵사지는 익산 기양리에 있는 백제 때의 절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사자사(師子寺)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금당, 회랑을 세웠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지어져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의 배치는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 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한다. 이것이 복도(회랑)로 구분되어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바닥마루의 습기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쪽 금당 앞의 석탑은 현재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목조건축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였던 것을 2019년에 최종적으로 보수정비를 마무리하였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로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오늘 아침 사진은 점심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다가 만난 거다. 그 곳에 한 참 머물다, 안도현 시인의 <가을의 소원>을 소환했었다.
가을의 소원/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 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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