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메타 인지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31. 13:26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10월이 가기 전에 노란 은행잎을 보면 꼭 공유하고 싶은 시가 있다. 길지만, 10월을 보내며, 오늘은 주일이니 차분하게 읽으며, 가는 가을을 잡아두기 바란다. 오늘 시를 읽으며, 아련한 옛 추억으로 감성과 정서가 충만하게 채우고 싶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감정 영역이 망가지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악수를 두고 만다. 이성만 발달하고, 감정이 망가진 유형이 '소시오패스'이다. 지적 장애인은 계산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도, 감정적으로 자녀를 안아주고 보살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회적으로 지적 장애인보다 계산과 이성만 발달한 소시오패스가 훨씬 더 위험하다. 소시오패스는 가장 빨리 강자의 위치에 도달하지만, 가장 빨리 내려오게 된다. 히틀러처럼 말이다. 오래 생존하는 이들은 감정이 발달한 이들이다. 오직 지적 능력만 키운 사람은 결국 가장 빠르게 도태된다. 적절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적절한 감정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긴 것도 감수성이 더 발달해서이다. 능력 있고, 못된 인간, 감정에 문제가 있는 인간 즉 그런 독재자들이 힘이 셀 때는 숨죽이고 있지만, 힘이 약해지면 거세게 그들을 제거해왔다.

인간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기본적인 지적능력은 필요하지만, 감정과 정서야 말로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옷을 살 때도 뭔가 감정과 정서가 반응해서 구매하는 거다. 이성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자기 감정을 모르면 답답하다. 자기 감정을 아는 것이 메타 인지이다. 결정을 내릴 때는 느낌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할 때, 무엇이 더 만족할까 판단하는 거다. 그런 게 명확하면 자신에게 선물을 주기도 쉽고, 스트레스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이다. 오늘 행복감을 느끼면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행복감을 좌우하는 게 정서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시와 그런 정서를 꼭 채우고 싶다.

그 여자네 집/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러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은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 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 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 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 꽃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 아홉 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 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 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3년 전 10월의 마지막 날에 썼던 인문 일기이다. 어제 102살이신 이모님께서 하늘 나라에 가셨단다. 선약이 있어 장례식장에는 가지 못하지만, 삼가 어르신의 명복을 빈다.어머니와 이모님이 함께 사시던 옛집이 생각난다. 은행나무가 큰 게 한 그루 있었는데…...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라고 한다. 진딧물 같은 곤충을 향해 겨울을 나야 하는 자신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또렷한 가을빛을 내는 나무는 주위의 그 어떤 나무보다 더 건강한 것이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단풍을 노년에 비유하면 생각이 더 풍성해진다. 가령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말들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좋은 공부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제부터라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실천 해보고 싶다.

"겨울은 추워서 좋고, 여름은 더워서 좋습니다. 둘 다 좋아해요." 스님 말씀을 듣다가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싶다. 봄이 좋은 건 꽃이 피어 서고, 가을이 좋은 건 단풍 때문이다.

천국은 따분하다는 말을 들으면, 귀찮고 힘든 일상이 짓누르는 어려움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좋은 기도 문장 하나 공유한다. "기복이나 행운을 빌기보다는 감사해 하며 살고 싶어요. 대박을 원하기 보다 자족, 가진 것에 만족해 하며 살고 싶어요. 기적보다는 일상에 더 치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지난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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