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다.

349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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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동안 정말 바빴다. <2025년 아시아 와인 트로피>에서 4일간 와인 시음 평가 그리고 오후에는 각종 와인 마스터클래스 참여, 이어서 2025년 대전와인 엑스포에서 강의와 <대전시민소믈리에 대회> 심사와 시상 그리고 2025 국가대표 와인 소믈리에 대회 참석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와인도 원 없이 마셨다. 그래 와인 기운을 비우기 위해 오늘 아침은 긴 산책을 했다. 산책 후,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영혼을 회복시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던 사이, 가을이 깊게 쳐들어 왔고, 날씨는 벌써 초겨울 날씨이다. 산책 길의 일부 나무들은, 오늘 아침 사진처럼, 단풍이 들었다. 여름철 짙은 녹색으로 무성했던 나뭇잎들은 수분이 줄어들면서 엽록소를 잃기 시작한다. 엽록소는 파랑색이나 붉은 색, 노랑색의 파장을 흡수하고 녹색의 파장을 반사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엽록소가 죽으면서, 그것에 가려져 있던 붉은 색과 노랑색, 혹은 그것을 합친 갈색이 드러나는 거다. 이른바 단풍은 물드는 게 아니라, 잎의 본색을 겉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는 거다. 가을은 그런 거다. 자기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거다. 고운 단풍을 만나면, 생각나는 시이다.
단풍 드는 날/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아는 순간부터
나무가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방하착(放下着): '내려놓다', '마음을 비우다'라는 뜻의 불교용어
2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다. 진딧물 같은 곤충을 향해 겨울을 나는 자신의 경계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신체적 비용이 따른다. 그러므로 또렷한 가을빛을 내는 나무는 주위의 그 어떤 나무보다 건강하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단풍을 노년에 비유하면 생각이 더 풍성해진다. 가령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좋은 말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좋은 공부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제부터 라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돌아보고 싶다.
"겨울은 추워서 좋고, 여름은 더워서 좋습니다. 둘 다 좋아해요." 스님 말을 듣다가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싶다. 봄이 좋은 건 꽃이 피어서고, 가을이 좋은 건 단풍 때문이다.
천국은 따분하다는 말을 들으면, 귀찮고 힘든 일상이 짓누르는 어려움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좋은 기도를 돌린다.
"기복이나 행운을 빌기보다는 감사해 하며 살고 싶어요.
대박을 원하기보다 자족, 가진 것에 만족해 하며 살고 싶어요.
기적보다는 일상에 더 치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가을 단풍이 서로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뽐내는 것처럼, 기복보다는 감사, 대박보다는 자족, 기적보다는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3
몇 일동안 지난 글들을 묶어 책으로 만들어 볼 욕심으로 많은 시간을 그곳에 투자하고 있다. 왜 책을 내려 하는가? '그냥' 한다.
기분이 안 좋고 의욕이 없어도
생각하면 더 하기 싫다
그냥 하는 게 제일 빠르다.
완벽히 준비된 날은 평생 안 온다.
그냥 하는 사람이 결국 끝까지 간다.
그냥 한다.
이유는 나중에 찾는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 보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이다.
틀리면 고치고,
아니면 배우면 그만 이다.
어차피 인생은 정답 답안지가 없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일단 해보는 거다.
'그냥'이라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언젠가 노트에 적어 둔 거다.
사람이 좋아지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를 꼽으라면 '그냥'을 꼽는다. ‘왠지 그냥 좋다'라는 말이 나는 그냥 좋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딱 부러진 이유가 꼭 있어야 할까요? 그냥 좋으면 안 되는 걸까요?
'그냥'은 '아무 이유 없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없다' 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그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한 두 마디 언어로 표현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 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태어난 절묘한 말이 '그냥'일 것이다. '그냥'은 여유 이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자잘한 이유 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말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훨씬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워질 것이다.
우리 인생에 '그냥'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복잡한 인생 사 한 번 즈음은 '그냥' 헐렁하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4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후회하고, 내일을 희망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습관처럼, 어제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그렇게 산다. 산다는 것은 내가 어느 곳으로 걸어 가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보면, 내가 사는 사람은, 물처럼, 흘러간다. 그냥 간다. 삶이 너무나 힘들어도 세월은 위로해주지 않는다. 버거운 짐을 내리지도 못하고 끝없이 지고 가야는 데 어깨가 무너져 내린다. 한없이 삶에 속아 희망에 속아도 희망을 바라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낭떠러지인가 싶으면 오를 곳을 찾아 헤매 이고 암흑인가 싶으면 빛을 찾아 한없이 걸어야 한다. 죽음의 끝이 다가와도 애절하게 삶에 부질없는 연민을 갖는다. 산처럼 쌓아 둔 재물도 호사스런 명예도 모두 벗어 놓은 채. 언젠가 우리는 그렇게 떠나 다시 걸어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그냥 걷기만 하세요/법정
한 걸음,
한걸음 삶을 내딛습니다
발걸음을 떼어 놓고 또 걷고 걷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짊어지고 온 발자국은 없습니다
그냥
가버리면 그만인 것이
우리 삶이고 세월입니다
한 발자국 걷고 걸어온 그 발자국
짊어지고 가지 않듯
우리 삶도 내딛고 나면 뒷발자국
가져오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냥 그냥 살아갈 뿐
짊어지고 가지는
말았으면 하고 말입니다
다 짊어지고
그 복잡한 짐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냥 놓고 가는 것이
백번 천 번 편한 일입니다
밀물이 들어오고
다시 밀려 나가고 나면
자취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애써 잡으려 하지 마세요
없어져도
지금 가고 있는 순간의 발자국은
여전히 그대로일 겁니다
앞으로 새겨질 발자국
삶의 자취도
마음 쓰지 말고 가세요
발길 닿는 대로 그냥 가는 겁니다
우린 지금 이 순간
그냥 걷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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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루카복음> 13,10-17 "등 굽은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시다" 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마침 그곳에 열 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 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지금-여기에서/상지종 신부님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6)
믿음을
당길 수는
없을지 언정
미루지는
말아요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믿음이어요
희망을
당길 수는
없을지 언정
미루지는
말아요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희망이어요
사랑을
당길 수는
없을지 언정
미루지는
말아요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사랑이어요
함께를
당길 수는
없을지 언정
미루지는
말아요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함께이어요
살림을
당길 수는
없을지 언정
미루지는
말아요
그리하여
지금-여기에서
살림이어요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말은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도 했던 말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지성인 이다. 그의 인생 좌우명이 랍비 힐렐의 말이라고 한다. 나도 그의 말을 외우고 있다.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위해줄 것인가?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날이 있겠는가?" 이 두 문장이 그를 지금-여기에 존재하게 이끈다고 했다. 다시 내가 외우고 있는 것을 공유해 본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랍비 힐렐,『선조들의 어록』 1장 14절)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