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내 일상에서 취사선택을 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8. 17:50

348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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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 야만을 이긴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라톤으로 대변되는 이성철학이 실제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는 탁상공론인 경우가 많은 경우를 보면 그렇다. 삶이 지루하고 신명(神明)이 없었던, 어거스틴(아프리카 알제리 출신)은 엘리야가 들었다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들었다. 그러자 어거스틴은 이제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섬세하고 미세하지만 강력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심연을 응시할 수 있었고 자신의 귀로 내면의 소리, 침묵의 소리를 경청하게 되었다. 

그 소리를 우리는 "똘레 레게(tolle lege!)"라고 한다. "톨레 레게"를 번역하자면, '한 가지 원칙을 선택하여 집어 들고, 그 선택한 것을 너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알려라'란 의미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취사선택(取捨選擇)할까? 이 기준의 원칙은 선하게 살려는 의지이다. 예를 들어, 이집트 사막에서 홀로 수도 생활을 했다는 성 안토니우스가 들은 것이, '너는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였던 것처럼,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었다고 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 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 그때부터 그는 과거의 어거스틴이 아니라, 미래의 어거스틴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한 순간의 취사선택을 통해 그리스도교라는 웅장한 건물의 틀을 잡은 사람이다. 예수는 앞으로 등장할 그리스도교의 청사진을 찍었다면, 바울과 베드로는 그리스도교의 터전을 마련했고,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의 외벽을 만든 자였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분연히 일어섰던 것이다. 그후, 그의 삶은 단정(端正)해졌고, 타인과 경쟁하여 제압하려는 삶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투쟁하고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제 신의 옷을 입은 자로, 신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배철현 선생의 글에서 얻은 것들이다.

어거스틴처럼, 나는 오늘도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내 일상에서 취사선택을 하는 하루를 보낼 것이다. 사진은 아침 산책 길에서 만난, 제 할 일을 쉼 없이 하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열매이다.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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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는 아래 사진처럼, 2025 제21회 한국 국가대표 소믈리에 경기 대회 결승전에 참관하고, 선수들을 응원하고 마지막 시상까지 참여할 것이다. 프랑스에는 와인 맛보는 직업이 있다. 요리를 맛보는 직업은 없어도 와인을 맛보는 직업이 있으니 프랑스인들은 와인을 마시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와인을 맛보고 평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꼬네쐬르(Connaisseur)’라고 부른다. 한국 말로는 ‘포도주 감정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와인의 선택에 대한 각종 자문과 조언을 해주고 주문한 와인의 품질을 확인해 주는 일을 하는 ‘소믈리에(Sommelier)’가 있다. 소믈리에는 와인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레스토랑에 있는 주류 전반에 걸쳐서 그 관리와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소믈리에는 중세 프랑스 궁정에서 음식과 와인을 관리하고 감독하던 사람을 일컬었는데, 오늘날엔 그 일터가 고급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는 규정된 의상을 착용하도록 정해져 있는데,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정 조끼에 상의와 바지 그리고 검정 앞치마를 착용하게 되어 있다. 또한 손에는 냅킨을 휴대하며, 조끼의 주머니에는 소도구인 코르크 스크류(와인오프너)와 성냥을 넣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타스트뱅(시음용 은제용기)을 목에 거는 것이 보통이며, 프랑스 파리 소믈리에의 경우는 상의 칼라에 포도송이를 상징하는 은 빼지를 매달고 있다. 이들은 와인을 주문 받고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이고 와인 품목 선정과 리스트 작성, 와인의 보관 및 관리, 음식과 와인과의 조화를 위한 서비스 등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가 매출의 50%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 소믈리에는 인상이 좋고 친절하여야 한다.

사람과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몸의 70%-90%가 물이라고 한다. 어린이나 젊은이는 몸속에 더 많은 양의 물이 있고, 나이가 들면 피부에 주름이 지는 것처럼 물이 적어진다. 만약 우리 몸속에 물이 1-3%가 부족하면 심한 갈증이 나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 12%가 부족하면 사망하게 된다. 몸속의 물을 채워주는 것을 '음료(飮料)'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료란 액체를 많이 포함하여 마실 수 있는 음식을 뜻한다. 그래 우리는 흔히 음료수(飮料水)라 부른다. 음료의 중류는 크게 비알코올 음료와 알코올 음료로 나뉜다.  비알코올 음료는 물, 우유, 청량음료, 스포츠 음료, 주스, 차, 커피, 두유, 숙취해소 음료 같은 기능성 음료 등이 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비알코올 음료로 대세가 커피이다. 우리는 커피전문가를 이탈리아어인 '바리스타(barista)'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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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음료(영어로는 alcoholic beverage, 한국어로는 술, 한자로는 酒)는 에탄올 성분을 1% 이상 함유하여 마시면 취하는 음료를 통틀어 말한다. 그 종류는 크게 발효주(釀造酒, 양조주), 증류주 그리고 혼성주로 나뉜다. 

발효주는 곡물이나 과일의 즙을 효모를 이용하여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주는 1-8%의 알코올을 함유하며 함유량이 높아도 12% 정도이다, 효모가 생존할 수 있는 최대 알코올 함유량이 13%정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하는 알코올 음료가 맥주, 와인, 청주, 사케 등이다. 증류주는 일단 만든 술을 다시 증류해서 도수를 높인 술이다. 물에 잘 섞이는 알코올은 약 78,4도면 끓어 기체가 된다. 이걸 냉각수를 거치게 하여 알코올만 빼내는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브랜디, 위스키, 소주, 보드카, 럼, 데낄라, 진 등이다. 그리고 여러가지 술과 다른 액체 음료를 섞거나 과일이나 식물 뿌리나 열매 등의 성분을 술에 넣은 뒤 그 성분 들을 추출해서 마시는 것이 혼성주인다. 여기에 속하는 것이 각종 칵테일과 리큐어(liqueur)이다.

이런 주류를 다루는 소믈리에의 제 1원칙은 군대에서 하는 말인데, 전쟁에 진 장군은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처럼, 배식에 실패하지 않고 잘 배분하는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사진처럼, 소믈리에 경기대회애서 샴페인 매그넘 한 병으로 16개의 잔에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평가하는 이유이다. 

일주일간 와인과 지내다 보니 몹시 피곤하다. 그렇지만 "그곳은, 눈물 버리고 돌아오기 좋은 곳'이다. 소금사막처럼 말이다. 몇 일동안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소금 사막/류미야

바닥이 안 보일 때 그곳에 가 보리라
슬픔도 끝없으면 눈물조차 마르는 걸
그곳은, 눈물 버리고 돌아오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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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부동산 문제로 골치 아파한다. <한겨레 신문>의 성한용 기자가 내놓은 진단과 대안이 옳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 위에 만들어진 체제이다. 정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풀린 과잉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기에 수도권 집중 가속화라는 구조적 원인이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상승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수요 규제로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다. 공급 대책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서울에는 아파트를 새로 지을 수 있는 땅이 거의 없다. 재건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절차를 개선하고, 고연령층이 소유한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과감한 행정 개혁과 세제 혜택, 종합병원을 포함한 실버타운 건설, 파격적인 교육 개혁, '부·울·경' 메가시티 등 국가 전략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는 의미이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부동산 문제는 결국 수도권 문제이다. 비수도권에서 부동산은 다른 나라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서울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 정치, 행정,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의 중심이 서울이다. 서울을 쪼개야 한다.

사실 선각자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김대중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 출마하기 전부터 안보, 국토 균형개발, 인구 분산을 위해 대전을 공동수도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대전을 ‘행정부 수도’로 만들어 1단계로 정부 각 부의 외청을 옮기고 2단계로 행정부의 일부를 순차적으로 이전시키자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구상을 박정희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말 행정수도 이전을 실제로 추진했다. 당시 제작됐던 행정수도 이전 이후 지도를 보면 지금 충청권은 수도권으로, 서울·경기·인천은 경기권으로 표시되어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백지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충청권에 새로운 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청와대와 국회, 중앙행정기관을 이전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에서는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한 선거 전술”이라고 비난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평생 지역감정과 정면 대결을 벌여온 정치인 노무현은 매우 오랫동안 지역 갈등의 원인에 대해 연구했다.

결론은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서울을 쪼개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은 우리 국민이 행정수도 건설에 찬성한다는 의미였다.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은 2003년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94인 중 찬성 167인, 반대 13인, 기권 14인 압도적 다수로 가결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04년 10월 21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관습헌법이라는 이유로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김영일 권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 이상경 재판관 등 ‘서울 기득권자들’이 다수 의견을 냈다. 전효숙 재판관만 반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득권자'들이 문제이다.

그때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행정수도는 세종시가 됐을 것이고 서울 아파트값 폭등뿐만 아니라 지역 소멸, 인구 감소, 캄보디아 사태 등 우리를 괴롭히는 여러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도 6월 23일 ‘엠비시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의 2004년 위헌 결정을 비판했다.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동의했고 대통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걸고 당선되었다면 그 관습은 폐지된 겁니다.”

우리에게 수도권 집중을 해소할 기회가 다시 올까? 다시 올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누군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대공약을 내놓고 온 국민이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성한용 기지는 다음 대선에서 그런 장면이 벌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으로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재명 현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만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1월 19일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현재의 방법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지 못한다면 보다 강력한 그런 여러 가지 방안들을 계속 강구해서라도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담’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정책만으로 풀 수 없다. 부동산 문제는 결국 수도권 문제이다. 서울을 쪼개야 한다. 그리고 서울 1극 체제가 아니라, 지방도 함께하는 다극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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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오, 하느님! 제게>/상지종 신부님

오, 하느님!
저 스스로
이렇게 말씀드리니
저에게 그저 들으십시오

오, 하느님!
저 스스로
아무 말씀도 드릴 수 없으니
저에게 기꺼이 말씀해 주십시오

오, 하느님!
저 스스로
잘 하고 있으니
저에게 굳지 오지 마십시오

오, 하느님!
저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저에게 어서 오십시오

오, 하느님!
저 스스로
있을 수 있도록
저에게 당신을 거두십시오

오, 하느님!
저 스스로
있을 수 없으니
저에게 당신을 주십시오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하인리히의 재판을 보면서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한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의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높아야 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하려면 좀더 배워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악이 선만큼이나 대단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없다. 악은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일 뿐이다. 

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겸손해지는 거다. 사람들은 나서는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을 더 믿는다.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고, 모든 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오히려 의심을 사기 쉽다. 그런 사람이 보여주는 것은 신뢰가 아니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태도로 자신의 단점을 말하고 경쟁자를 칭찬하는 사람을 더 믿을 만하다고 여긴다. 자신의 상처나 흠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신뢰를 쌓는 방법이 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재수가 없다. 반대로 자신의 상처 입은 내면을 볼 수 있게 허락한 사람들은 인간적이고 공감이 가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그저 잘난 체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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