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21일)
노자 <<도덕경>> 제45장을 읽는다. 이 부분은 깊어 가는 가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실제적으로 가르쳐주는 장들이라, 흥미롭다. 일상에서 잘 실천하고 싶다. 제45장의 제목은 '훌륭한 솜씨는 조금 서툴러 보인다.' 또는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다.' 또는 '잘난 것은 못나 보인다'로 고를 수 있다. 정밀 독해를 시작한다.
大成若缺(대성약결) 其用不弊(기용불폐): 크게 이루어진 것은 조금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은 끝이 없다(다 함이 없다, 영원하다).
大盈若沖(대영약충) 其用不窮(기용불궁): 가득 찬 것은 조금 빈 듯하나, 그 쓰임은 무궁무진하다(끝이 없다).
大直若屈(대직약굴) 大巧若拙(대교약졸) 大辯若訥(대변약눌) : 크게 곧은 것은 조금 굽은 듯하고, 훌륭한 솜씨는 조금 서툴러 보이고, 훌륭한 말은 조금 어눌해 보인다.
완전히 이루어진 것, 완전히 가득 찬 것, 완전히 곧은 것, 완전한 솜씨, 완전한 웅변 등은 완전히 자연스럽기 때문에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보면 뭔가 시원치 않은 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화려하게 꾸미고, 반지르르하게 다듬고, 매끈하게 가꾸고, 곧 바르게 깎는 등 인위적이고 가공적인 모든 것과 상관 없기 때문이다. 크게 이루어진 것, 가득 찬 것, 크게 곧은 것, 훌륭한 솜씨, 훌륭한 말은 모두 형식적 완결성을 뜻한다. 도란 이러한 형식적 완결성에 있지 않다. 겉모습은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 듯 보여도 속이 꽉 찬 것, 청산유수처럼 좔좔 쏟아내는 말보다는 조금 어눌해도 진정성이 담겨 있는 말에 도의 참 모습이 있다. 노자가 제38장에서 화려한 꽃을 버리고 속이 실한 열매를 취한다고 한 것이나, 제32장에서 다듬지 않아 투박해 보이는 통나무를 도에 비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똑똑한 판단과 결정을 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더듬는 사람이(訥)이 오히려 설득력(辯)이 있다. 장사꾼이 너무 말을 잘하면 경계하게 된다. 오히려 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진실함으로 무장한 사람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아무런 단점은 없고, 장점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완성은 자연의 본질이 아니다. 미완성이 오히려 우주의 본질에 가깝다. 왜냐하면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순간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완성은 죽음이고 미완성은 생명이다. 그래 노자는 채움(盈)은 죽음이고, 비움(沖)은 생명이라 말하는 거다. 비움 속에 새로운 채움의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미 다 채운 것 속에 동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기교(技)가 있는 기술자는 보기에 재주가 없어(拙) 보이기도 하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자신이 잘났다고 요란하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시끄럽다. 그래 이렇게 읽을 수 있다.
1. "대성약결(大成若缺)"이면 "기용불폐(其用不弊)"라 했다. 즉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이 보여도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읽는다. '크게 이루었다고 해도, 잘난 척 하지 말고, 좀 모자란 듯이 행동하여야 그 쓰임이 계속 된다'로 읽는다. 완성된 거라도 빈틈이 있어야 그걸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2. "대영약충(大盈若沖)"이면, "기용불궁(其用不窮)"라 했다. '크게 찬 것은 빈 듯이 보여도 그 쓰임이 궁진함, 끝이 없다.' 이 번역은 금방 와 닿지 않는다. 그냥 가득 채웠더라도 빈 곳이 있어야 언제라도 쓸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자꾸 채우려고, 빈 틈을 메우려고 하기보다는 그 틈을 오히려 가득 찬 것으로 생각하라는 말로 이해한다.
3. 대직약굴(大直若窟)는 구부러진 것이 오히려 크게 곧은 것으로 생각하자는 말이다.
4. 대교약졸(大巧若拙)는 서툰 것이 오히려 크게 솜씨 좋은 것으로 생각하자 것으로 이해한다.
5. 대변약눌(大辯若訥)은 더듬더듬 거리는 말이 크게 말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자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성(大成), 대영(大盈), 대직(大直), 대교(大巧), 대변(大辯)은 5가지의 '고졸(古拙)의 멋'의 세계, 즉 결(缺), 충(沖), 굴(屈), 졸(拙), 눌(訥)의 세계를 포용해야 한다. '고졸(古拙)'이라는 말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고풍이 돌고 뭔가 서툰 듯한 것, 그러면서도 내면에서 풍기는 어떤 멋 같은 것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도자기가 기계에서 찍혀 나온 듯 흠잡을 데가 없이 반듯한 듯하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가진 그릇이 멋있고 비쌀 것 같은데 그것은 상식적이고 천박한 미의식에 의한 판단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도자기의 진가를 감식할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듯 반듯반듯하고 반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뭔가 균형도 완전히 잡히지 않은 것 같고, 어딘가 거칠고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구수하고, 은근하고, 정답고 살아 숨쉬는 듯한 것, 금방 눈길을 끌 정도로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리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에 손이 갈 것이다. 거기에 이른바 '고졸(古拙)'의 미가 있기 때문이다. 백제의 아름다움이라 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말이 기억난다. 이 말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질박하고 따뜻한 조선 시대의 찻잔들이 고졸미(古拙美)의 대표이다.
그 다음 문장은 "躁勝寒(조승한) 靜勝熱(정승열): 바쁘게 몸을 놀리면 추위를 이길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요함으로 더위를 이기는 것이다.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인데, 정밀 독해와 제46장의 결론은 내일로 미룬다.
<<도덕경>> 제45장을 내 나름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다 완성된 것도 빈틈이 있어야 그걸 쓰는 데 불편함이 없고, 가득 채웠더라도 빈 곳이 있어야 언제라도 쓸 수 있다. 구불구불한 길이 바른 길이며, 질박하고 서툴러 보인 것이 화려하고 정교한 것이며, 어눌한 눌변이 곤 완벽한 말 솜씨인 것이다. 고요함은 시끄러움을 극복하고, 냉정함은 날뜀을 극복한다. 맑고 고요함(淸靜)이 세상의 표준(천하의 정도)이다." 자연스러운 무위의 삶 속의 말고 고요함이 하늘 아래의 정도이다. 그래 올해도 '습정양졸(習靜養拙)'을 실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 새소리 듣고 바람의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따뜻하고 유쾌하고 뭉클하게 살고 싶다. 희로애락을 살아도, 곡절이 많더라도. 그런 사람들의 풍경을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 속에서 만난다.
날이 저물고 장사를 마친 부부가 마주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다. 탁주도 한 잔 곁들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죽을 먹으러 찾아온 손님들의 온순한 성품에 대해 말을 나눈다. 작은 가게에서 따뜻한 죽을 내놓으면서 만난 소박하고, 자상하고, 명랑하고, 자잘한 정이 많은 사람들의 됨됨이에 대해 말한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평원(平原)의 고귀한, 진정한 주인이라고 말한다. 늙은 염소처럼 순한 부부가 살아가는 훈훈한 삶의 풍경이다.
초식동물/고증식
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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