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대상을 정했다는 거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15일)
지난 수요일에 <미인(미술과 인문학) 모임>에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살아있는 전망대, 2021>를 관람했다. 신세계 오노마 호텔의 40층에 있는 전망대에 설치된 미술이다. 호텔 이름 오노마는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로 '이름'과 '명성'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것과 구분,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존재 자체의 호칭'을 의미 한다. 사실 '이름' 안에 그 존재의 성질, 가치, 능력,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닌 더 깊이 알아가는 관계를 의미한다. 오노마 좋은 이름이다.
이 전시회는 전망대라는 특수한 공간 해석, 그 공간에 노출된 자연현상, 빛의 효과 등을 고려한 여섯 종류의 시각 체험과 통합형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시회의 특징은 관객과 작품의 상호적인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다. 멀리서 언뜻 보았을 때와 작품에 다가갔을 때의 시각 경험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관객은 더 자세한 탐색을 위해 작품에 더 깊이 들어서는 적극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말을 들어 본다. "나는 예술 작품을 수동적인 감상 대상보다는 관객의 기대, 꿈, 생각 그리고 감각과 만나기를 기대하는 하나의 실험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환경, 다른 사물, 기타 여러 조건과 상호작용한다. 이 요소들은 작품과 협상하고, 작품을 함께 결정짓는 동인이다. 예술작품이란 교차하는 여러 궤적들의 만남이다. 작품은 관객 여러분, 주변환경 그리고 다른 요소와의 교차지점에서만 비로소 예술이 될 수 있다."
그 전시회를 다녀온 후, 오랫동안 본다는 것에 대해 성찰을 했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대상을 정했다는 거다. 그러나 그 대상을 '보기'에서, 그 '보기'라는 말의 깊이는 다음과 같이 다르다.
(1) look: 수동적으로 '그냥 보다'이다. 수동적으로 ‘그저 보는 행위'는 장님이 아닌 이상, 누구든지 본다. 그저 보는, 그러나 나의 정체성을 만드는 정보가 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보는’ 행위를 영어로 ‘look'이라 부른다 . '그냥 본다'는 말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여기서 '무식(無識)'이 등장한다. '무식'이란 보이는 것만 보는 시선이 고착화된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두 가지로 드러난다. 하나는 쉽게 화를 낸다.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멋대로 만들어 놓은 허상 속에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화는 허상과 실제 대상이 불일치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남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사리 폭력을 행사한다.
(2) look at: 우리 시선이 그 대상에 머물러 소통을 시도하는 경우이다. ‘그저 보는 행위’와 다르게 ‘보는 행위’이다. 한자로는 '시(視)'다. 영어 단어 look에 전치사가 붙기 시작한다. ‘쳐다보다(look at, look upon)', ‘돌보다(look after)' 혹은 ‘(사전에서 낱말을) 찾아보다(look up)' 등이 있다.
(3) see: 우리가 어떤 대상에 관심이 생겨, 내 시선이 따라가 그 대상에 머무는 것이다. 그 행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가 ‘see'이다. ‘본다'는 의미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 단어는 원래 ‘눈으로 따라 가다'라는 의미다. 관찰자가 그 대상을 자신의 눈으로 끌고 들어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관찰자의 눈으로 그 대상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행위다.
(4) watch: 우리는 대개 사물들을 무심코 보는 습관대로 보며(look), 그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눈으로 따라가지(see) 않는다.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부르는 과학자, 예술가 혹은 작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마주친 관찰의 대상을 인내하며 보고 또 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보고, 눈으로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관찰(觀察)’한다. ‘관찰’이란 자신이 응시하는 대상을, 처음 보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이 그 대상에 관한 선입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여,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영어로 ‘watch'라 부른다.
(5) perceive: 영어단어 ‘watch’가 관찰대상의 겉모습을 관찰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라면, 영어단어 ‘perceive'는 관찰 대상의 속 모습 혹은 자신의 속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행위다. ‘watch'가 눈으로 보는 행위라면 ‘perceive'는 마음으로 보는 행위다. ‘퍼시브’는 인간의 오감을 모두 동원하여 ‘철저하게(per)' 자신이 응시하는 대상에 감추어진 핵심이나 원칙을 자신의 소유로 ‘장악하는(ceive)' 행위다. ‘퍼시브’를 ‘꿰뚫어 보는’ 행위다.
(6) contemplate, meditate on: 우리가 보는 대상 중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충분한 성공과 가치를 이루어 내지 못한 현재의 삶을 깎아내리는 대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일들을 찾는 거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다. 관조의 단계이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관조에 관한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대신 글을 마치기 전에, 몇 일전에 읽은 글을 공유한다. 제목이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이다. 전시회에서 빛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글이 눈에 잡힌 것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의 글이다.
"빛은 출발한 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직선을 따라 직진한다. 평평한 거울에 닿은 빛은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하고, 맑은 연못 바닥은 실제보다 얕아 보인다. 기하광학의 여러 성질을 고전 물리학은 딱 하나의 원리, 가장 시간이 짧은 경로를 따라 빛이 움직인다는 페르마(Fermat)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가장 급히 움직이는 빛은,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정할 때도 시간이 기준이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간다.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 전시장에서 그걸 느꼈다.
그리고 "빛이 반사한 각도가 입사한 각도와 똑같아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되어야 전체 경로가 최소 시간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빛이 직진하는 이유, 거울 면에서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빛이 반사하는 이유, 그리고 빛이 다른 매질(媒質, 어떤 파동 또는 물리적 작용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매개물)로 입사할 때 방향을 꺾어 굴절하는 이유, 이 모두를 고전 물리학은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한칼에 설명한다"고 했다.
그리고 김 교수는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따라 곧게 뻗어가는 빛을 보며 구불구불 우리 인생을 떠올린다"고 쓰고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누구나 터벅터벅 긴 길을 걸어간다. 힘든 고비를 만나 고생도 하고, 고비를 넘긴 후 내리막길을 한껏 달리며 상쾌한 맞바람에 시원하게 땀을 식히기도 한다. 걸어온 긴 길을 돌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걸어온 길에서 만난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곡절 많은 우리 각자의 인생은 최소 시간의 원리가 아니라 최대 의미의 원리로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효율과 빠름이 아닌 의미를 기준으로 한 선택이 어쩌면 삶의 낭비를 줄이는, 느려서 오히려 더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시회에서, 순간의 낭비도 없이 늘 서두르는 빛을 보며 내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했다.
빛/전병철
휘어짐이 없다
끊이지 않는다
비록
그 어디에 가로막혀 더 나가지 못하는
비참함에 사로잡혀도
오직
강직하고 곧은 성격
조금도 거짓이 없는 진실됨으로
남에게 피해를 넘기지 않고
자신이 감수해 내는
청백리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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