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이 “우리”에서 “나”로 넘어갈 때, 노자가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15일)
어제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고, 지금도 비가 내린다. 가을비이다. 이 비는 계절이 가을로 가는 길을 더 재촉할 거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여름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가을비에 나뭇잎 보내고, 잎 떨어진 벌거벗은 나무에 겨울 비 내릴 거다. 빗 속에서 어렵게 자기를 지키고 있는 백일홍
의 모습이 오늘 사진이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을 탄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을 보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 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 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이란 구절이 있다.
이 인상적인 구절은 우리 주변의 특별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이런 사람들이다.
▪ 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 예상치 못한 결정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이
▪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이
이들은 삶의 주인공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간다. 때로는 위험해 보이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결과를 책임지며 성장한다. 우리는 종종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인상 깊은 구절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인가, 아니면 관객인가?
변화는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진정한 성장을 경험한다. 우리도 삶의 혁명가가 될 수 있다.
오늘부터 작은 변화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 새로운 취미 배우기
▪ 오랫동안 미뤄온 결정 내리기
▪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이런 작은 도전들이 모여 우리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소살의 구절은 우리에게 삶의 주도권을 쥐라고 말한다.
니체는 정육점 앞에 있는 개를 보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이중성을 통찰 했다.
▪ 한 개는 당장 들어가 고기를 뜯어 먹고 싶지만, 주인의 손에 들린 칼에 다칠까 봐 그저 주변을 서성대며 짖고 만 있는 개가 있다. 하고는 싶지만, 두려운 마음, 원하기는 하지만 주저하는 마음,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 안타까운 마음의 굴레일 수 있다.
▪ 두 번째 개은 짖기만 하는 개와는 달리 과감하게 정육점 안으로 돌진해서 물어 뜯는다. 이 두 번째 개는 상처를 입을 수는 있어도 고기를 먹었다는 만족감과 자신도 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이 개는 앞으로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차이는 크다. 주도권을 쥐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일도 이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주저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그 전략을 알고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어느덧 '고기 맛'을 알게 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흥분감은 짜릿한 스릴이 된다.
언제까지 주인공을 빛내게 하는 조연으로 살아갈 것인가? '내 역할에 충실했어'라는 소소한 자기 위안보다 '내 삶에 중실했어'라는 충만한 자존감을 위해 무서운 사냥개처럼 돌진해 보자.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힘이 존재한다.
▪ 원심력: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하려는 힘
▪ 구심력: 그 반대로 작용하는 힘
▪ 가속력: 속도에 비례해 증가하는 힘
▪ 마찰력: 그 힘을 저지하려는 힘
▪ 회복력: 원래대로 되돌아오는 힘
▪ 저항력: 힘에 반발하는 힘
▪ 주도력: 자연 세계에 없는 아주 독특한 힘으로, 가장 선두에서, 그리고 가장 중심에서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뤄내는 역동적인 힘이다. 주도력을 잃으면, 노예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자신이 계획하고 예상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계속 끌려 다니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 주도력을 주도권으로 불리기도 한다. 주도력을 갖고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권력이란 말이다. 이러한 주도력이 없으면, 파도에 휩쓸려 토사구팽 당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파도 위에 올라 타 승승장구 할 수 있다. 주도력이 빼앗긴 곳에는 가지 않는다.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내 삶의 주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도권은 전략에 의해 탄생한다. 이 주도권을 가지려면,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고, 힘이 어떻게 배분되어 있는지, 그 중에서 결정적인 굽소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다면, 비록 약자라 할지라도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주도권 싸움은 전략에 의한 승부이자, 머리로 하는 싸움이다. 다시 말하면, 주도권은 나와 내 인생, 주변의 관계 전체를 조망하고 힘과 자원을 재배치하는 고차원의 맥락에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주도권을 갖게 되면, 강한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삶의 흐름을 더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 주도권의 확보는 희망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마음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속화한다.
"지나가야 할 문이 아무리 좁고 아무리 가혹한 벌이 기다리더라도 문제 되지 않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
이 주도권이 “우리”에서 “나”로 넘어갈 때, 노자가 있다.
공자가 인간을 “인”(仁)이라고 하는 본질을 가진 존재로 규정하면서 그의 철학 체계는 이미 근대성을 대표로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 공자에게서 본질로서의 “인”은 잘 보존되고 키워져 할 대상이다. “인”이 확장된 최종적인 단계를 그는 “예(禮)"라고 말한다. 근대주의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보편적인 이념이다. 그래서 그는 “예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말고, 예에 맞지 않으면 듣지도 말고, 예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도 말고, 예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공자의 철학을 한마디로 개괄하여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한 주자의 말은 매우 정확해진다. 여기서 “기(己)"는 개별적이고 경험적이며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일상적인 자아다.
“예”(禮)는 보편적이며 집단적이고 이념적인 기준이자 체계이다. 그래서 공자의 철학에서는 일상을 영위하는 경험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는 부단한 학습의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이념의 세계 채워져 있다 하더라도 “이상(理想)"의 지위를 차지하는 한 “기준”으로 행사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준으로 작용하면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는 기능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거다. 구분과 배제 그리고 억압의 기능은 폭력을 잉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기준으로 행사 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념의 단계를 최대한 약화 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노자는 “거피취차(去彼取此)"라고 표현했다. 즉 “예”처럼 저 멀리 걸려 있는 이념을 버리고,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구체적 “나”(己)의 일상을 중시하라는 말이다. “극기복례”와는 정반대이다. 이렇게 되면 주도권이 “우리”보다는 “나”에게 있게 된다. 보편적 이념의 지배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개별적 주체들의 자율성에 의존하자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의 책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에서 얻어온 생각이다.
노자의 "거피취차去彼取此"라는 말은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것이다.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려 하는 이념들과 결별하고, 바로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 자신의 욕망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 그것은 어떤 거대한 기회가 찾아올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순간, 내 삶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부터 기적은 시작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탐욕이다. 그 탐욕은 늘 저 먼데를 보고 있어서 바로 눈 앞에 있는 행복을 못보게 한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찾는 정신이 '거피취차'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욕망 속에 있다는 것이다. 돈, 지위, 학벌, 권력, 이런 것들말고도 더 다양한 가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다양하게 욕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바람직한 일보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한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좋은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좋아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도권'을 갖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류시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뭇잎이 집합이 나뭇잎들이 아니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방울의 집합이 파도이고
파도의 집합이 바다라고 믿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길의 집합이 길들이 아니라
여행이라는 걸 발견한 사람
절망의 집합이 절망들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슬픔의 집합이 슬픔들이 아니라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벽의 집합이 벽돌이 아니라
감옥임을 깨달은 사람
하지만 문은 벽에 산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
날개의 집합이 날개들이 아니라
비상임을 믿는 사람
그리움의 집합이 사랑임을 아는 사람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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