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에 매달려 모두 함께 잘 사는 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10. 17:47

345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1
오늘 아침 사진은 우리 동네 길에서 만난 상사화 이다. 시인 반칠환은 이 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한다지만, 저들은 봄마다 잎이 푸르기를 멈춘 적 없고, 여름마다 꽃이 붉기를 그친 적이 없다. 폭우에 찢겨도 꽃잎은 웃고, 강풍에 쓰러져도 꽃대는 푸르니 무모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다. 그리고 뜨겁지 않으면 그리움이 아니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지만 실은 땅속 같은 뿌리에서 돋지 않던가? 헤어진 것 같으면서도 이미 만나고, 만나고 있으면서도 또 그리워하는 몸짓 아닌가? 지구라는 알뿌리에 꽃이며 잎인 우리는 모두 형제이며, 연인인 상사화가 아닌가? 

꽃무릇도 상사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상사화는 잎이 먼저 자란 뒤 꽃이 피지만, 꽃무릇은 꽃이 피고 잎이 나중에 자란다. 잎과 꽃이 서로 그리워 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두 꽃 모두 잎이나 꽃받침 같은 것이 없이 꽃대만 쭉 올라와서 꽃이 핀다. 두 꽃 모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잎과 꽃이 그리워한다는 상사화 이다. 잎은 봄과 여름에만 나와 있고, 잎이 떨어진 후에 꽃대가 솟아나, 평생동안 그리워만 한다. 그 그리움이 줄어 그림이 된다. 그리움이란 멀어질수록 더하고, 희미해 질수록 또렷하고, 몰래 하는 것이기에 간절하다.  


나의 <인문 일지>는 소란스러움을 가라 앉히고,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하지 말고, 오롯이 나 만을 세워놓고 깊은 대화를 하게 한다. 거기서 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중심을 찾고, 그 중심을 지키는 것이 마음의 허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허하다'는 것은 중심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  중심 자리는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중심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빈 곳으로 모인다. 정말 좋은 말이다. 채우려 하지 말고, 비워야 사람들이 모여든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열매 맺듯이, 빈 가지에 새가 날아 앉듯이,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텅 빈 곳만 스치듯이, 비여 있는 곳에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든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에 매달려 모두 함께 잘 사는 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천양희 시인의 시처럼, 지금 우리는 "외딴 섬"이다. 시인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 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믿게 되었다." 아침 사진은 어제 산책 길에서 찍은 화살나무이다. 이렇게 우리도 공존할 수 있다.


외딴 섬/천양희

어려운 일은 외짝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은 실존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아직 밟지 않은 수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이 세상은 내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갈망이라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내가 일어날 때까지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딴 섬이라는 것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


2
그린 의미에서, 어제 황정은 소설가의 에세이 <<작은 일기>>를 구입했다. 작년 12월 4일 수요일 오후 10시 23분 계엄, 그날부터 쓴 소설가의 일기이다. 그걸 읽으며 다시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역시 작가의 표현은 다르다. 그 당시의 그녀는 "마음이 곤죽 되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곤죽이 되다.는 말은 술에 너무 많이 취해 인사불성이 되거나, 심한 피로로 인해 기운이 하나도 없이 늘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꼻아서 썩은 죽'을 뜻했지만, ㅣㅈㄹ척한 밥이나 땅처럼 엉망이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다가, 요즈음에는 사람이 몹시 지치거나 무기력해진 상태를 묘사하는데 주로 쓰인다. 나 자신도 그 당시 '곤죽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곤두선 마음"이었다. '곤두서다'는 물리적으로 무언가가 거꾸로 솟아 오르거나, 비유적으로 긴장,, 놀람, 두려움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져 몸이 뻣뻣해 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매국과 내란의 얼굴들, 파렴치며 몰염치가 그네들 힘이다. 꼴도 보기 싫다. 곱게 늙어서 더 징그러운 폭력들, 샹, 샹. '국가'와 
나라를 주제로 열렬히 말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보수인가 싶었다. 이 계엄을 옹호하는 입장들을 '보수'라 칭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봉건, 내란, 위헌 중에 골라봐."

2024년 12월 14일 탄핵안 통과. "화가 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속이 뒤집힌다. 남의 삶을 조금도 아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삶을 다 무너뜨릴 막강한 힘을 가졌고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럴 수 있을까. 군대를 동원해 사람들 목숨을 이런저런 전선으로 내모는 계획을 세우면서, 수많은 목숨이며 삶을 전쟁에 쓸어 넣을 계획을 세우면서, 그 머리와 가슴에 '사람'이 없을 수 있을까. 자신 말고 누구도 피 흘리는 생명체로 보지 않는 마음으로는 그게 될 것이다. 타인의 삶과 고통에 닿는 감각이 발달하지 않은 삶, 그럴 의지도 없는 마음으로는 그럴 수 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상황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에 뻔한 가능성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 자체가, 그런 시간이 있는 현실 그 자체가 두렵고 아프다."

"온갖 부정과 비리가 알려져도 그를 비롯해 그의 세력들이 하나같이 오만하게 얼굴을 들고 다니고 오히려 화를 내는 꼴을 보면서, 저들이 장기 집권을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배경이 아니라면 어떻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저렇게까지 안하무인일 수 있을까. 의심을 했고 그래서 '계엄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무심코 말하고 다니면서도 나는 그것이 내가 겪은 불행에서 비롯된 불안이기를, 타인의 기록에서 내 기억으로 이동한 기우이기를, 방정이기를 바랐는데." 

"계엄의 위법성", 이런 이야기는 "말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벼워지고 하찮아 진다. "내게 너무 중요한 그것이 당신에겐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목격하는 일, 사람의 무언가를 야금야금 무너뜨리는 그 일을" 나도 겪곤 한다. "이젠 감흥이 없다.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숨 쉬는 게 좋고 싫어서 하나. 그냥 한다."

3
2015년 1월 15일 윤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 그리고 19일 구속 영장 발부와 서울 서부지방법원 습격. "목적이 뭘 까. 뉴스를 읽고 보는 동안 어리벙벙해 계속 생각했다. (…) 그 폭력들이 화면을 넘어 바로 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법원 안을 뒤지고 돌아다니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넘 끔찍했다. 그 말투, 그 거리낌 없음, 그 오만함, 반드시 찾아내 치명적 상처를 입히고 말겠다는 적의이며 앙심. 굳이 책상을 밟고 올라가 사무용품들을 내던지고 발로 차는 모습도. 그 모든 게 내게는 정치적 입장의 표출이 아니고 어떤 욕구를 충족하려는 영역 표시로 보였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세상에 그 모습을 흩뿌리는 것 외에 목적 이랄 게 없는 파괴들."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립이 징그럽다."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따르고자 했던 사회적 합의가 엉망진창이 되는 모습을 요즘 매일 보고 듣고 겪는다는 생각에 우울하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력감이 있고."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근데 이제 그 말투가 생각나 씨발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 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 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 나 에게도 그 때 오염(汚染)된 것이 아직도 씻어지지 않는다.

"시력이 너무 떨어졌다. 넉 달 사이에 시력 검사표에서 석 줄이 흐릿해 졌다. 시신경이 유의미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고 근시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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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5일 헌재 윤 탄핵 제판의 최후 변론. "국회 측 대리인 장순욱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내게 무척 아름다웠다. "오염"이라는 말로 내 상처의 원인을 부드럽게 짚어주는 것 같았다. 말(헌법)의 오염. 바로 그것을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한 말이 건네는 위안을 받았다." 그 오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일상에서 만나는 일부 정치 현수막이 그렇다. 그 멋진 변론의 일부를 공유한다. 길이 남을 명문장이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피청구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언동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말했습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도 헌법 수호를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킨 것입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이 노랫말처럼 모든 것들이 제대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 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그 첫 단추가 권력자가 오염시킨 헌법의 말들을 그 말들이 가지는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과 함께 이 시간 탄핵결정문에서 피청구인이 오염시킨 헌법의 말과 헌법의 풍경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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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7일 윤 구속 취소.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해 그를 구속시켰는데, 한 판사가, 전례 없고 법에도 없는 방식으로 구속 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셈을 해 그를 석방하기로 했다. 각종 뉴스에 출연한 법조계 사람들도 이유를 몰라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이 성황을 그저 지켜 봐야만 하는 시민들의 불안이 얼마나 큰가. 사회를 향한 이 불신의 값을 누가, 어떻게 치르나. 그저 한때 공부를 잘해 그 자리에 들어간 한 사람이, 한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의 정서를 이렇 게나 뒤흔들고 있다. 계속, 계속."

계속 이어, 밑줄 그은 문장들을 공유한다. "연결성이라는 사슬로 이어져 모두가 동등하다(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커, <<세계숲>>). "이런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인간을 향해 돌돌 구브러드는 생각은 접어두고, 보고 듣는 것만을, 찰나의 생가만을 기록하며, 삶이 내게 주는 감각을 편견 없이 흠뻑 음미하고, 그렇게 살고, 쓰고 싶다. 그런데 자꾸 더러워진다.산다는 건 결국 더러워진다는 것이지만, 더러운 도랑물을 마시며 사는 것이지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물줄기, 다른 삶에서 내 사람으로 흘러드는 물을, 타인의 삶에서 흘러나온 피가 스며든 도랑의 물을 내 도랑의 물로 받아 마시며 사는 일이고, 그래서 내가 받아들이거나 말거나 삶이란 끊임없이 더러워지는 일이지만, 이런 오염은 싫다." 이게 작년 12.3일 '불법 계엄'부터 그 오염이 노골적으로 내게 흘러 들어 온다.

"이름들을 기록해 두고 싶다.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이제 지귀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정진석, 김태효 그리고 조희대, 또 김건희, 남상원 …

"공부를 잘한다는 건 멀까. 내란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ㅛㅏ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세삼, 정말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나도 그 의문을 도끼로 깨고 싶다.

"초 법적 존재들, 초 법적 운명 공동체들. 초 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험한 일을 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빈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 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

6
오늘의 말씀 대면은 <루카 복음> 9,7-9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 이다.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삶을 살고 싶다/상지종 신부님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루카 9,7)

주님의 빛이
나에게도 빛일 수 있는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믿음이
나에게도 믿음일 수 있는
믿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희망이
나에게도 희망일 수 있는
희망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사랑이
나에게도 사랑일 수 있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기쁨이
나에게도 기쁨일 수 있는
기쁜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축복이
나에게도 축복일 수 있는
축복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베풂이
나에게도 베풂일 수 있는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돌봄이
나에게도 돌봄일 수 있는
돌보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섬김이
나에게도 섬김일 수 있는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의 살림이
나에게도 살림일 수 있는
살리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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