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0월 8일)
기분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살면서 중요한 선택이 절제와 겸손이다. 태도의 문제이다. 특히 말 때문에 하찮은 사람 되지 말고, 말 하나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 3 가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 타인을 화젯거리로 삼지 않는다. 귀중한 시간을 잡아 먹는 일 가운데 가장 쓸데없는 일이 '남 이야기'이다. 게다가 내가 뱉은 말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원래 내 의도와는 다른 말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말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말이라도 남들 이야기를 생각 없이 말하다 보면, 결국 그 말의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해도 될 말인지, 하면 안 될 말인지 헷갈릴 때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어느 수도원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당신이 말을 할 때에는 침묵보다 나은 것이어야 하라."
▪ 자기를 드러내려고 욕심 부리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얼마나 대단한 지에 대해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만 돋보이게 하는 과장된 표정이나 과시, 뽐내는 행동들을 유독 더 경계하며 신중하게 처신한다. 사람의 진면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이 아니라, 내면의 힘에 달려 있다고 믿는 그들은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허공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어 한다.
▪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중요한 진실은 항상 반쪽만 전해진다.' '내가 보는 진실은 언제나 반쪽 뿐이다'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이기고 싶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란 걸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우월한 감정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독이 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누가 복음 14장 8-11절에서 말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가 소환된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비슷한 말을 했다. "윗사람에 겸손한 건 의무, 동료들에게 겸손한 것은 예의, 아랫사람에 겸손한 것은 고귀함이다. 일상에서 이것을 실천하려면 '판단 중지' 훈련을 하면 된다.
나는 이 셋 중에서, 오늘 아침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에 더 마음이 갔다. 그러다 보니. 이해인 수녀님이 언젠가 말씀하신 "판단 보류의 영성"이라는 말이 소환되었다. ”인간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사랑은 빨리 하라“고 했다. "판단 보류"라는 말은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이다. 보류하는 마음이 없으면 자꾸 실수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사람이 다 비슷비슷하다. "참 너도 노력하는데 뜻대로 잘 안되지"라며 연민의 정을 갖는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낫냐"며 당당해 한다.
그리고 판단 중지하고 진심으로 들어주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건 진심으로 듣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괄호로 묶는 훈련이기도 하다. 나는 '판단 중지'라 말한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내면 세계를 그의 입장이 돼서 경험하기 위해, 자신의 편견, 판단 기준, 욕구들을 일시적으로 포기하거나 제쳐 두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합일은 실제로 우리 자신을 확장하고 확대하는 것이어야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늘 새로운 지식은 획득 된다. 더욱이 진심으로 듣는 것은 "괄호로 묶기", 즉 자신을 제쳐주는 것이므로 이것은 또한 다른 사람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고 듣는 이에게 마음 속에 간직했던 것을 개방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2인 춤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스티커를 등에 붙인 고독한 전사이다. 그 등은 어떤 책에도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고 다닌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참고' 친절해야 한다. 그래 일상에서 타인에 대한 '판단 중지"를 해보자는 거다. 스캇 펙(Scott Peck)은 '괄호로 묶기"라 했다.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 이전에 행동하던 것과 달리 행동하는 것은 모험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나 자신 안에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바로 "괄호로 묶기"라며,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확대와 결국에 자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계 미국인인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의 향한 찬사(Eloge des vertus miniscules)>>에서, 지은이는 "너무 높게도, 너무 낫게도 날자 말라"며,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중용의 '평범한 삶'을 가치 높게 평가했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을 찬양했다. 그건 판단을 유보하고 삶이 흘러가는 길을 관찰하며 결과 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두는 힘을 기르자는 거다. 그것도 내 안의 '음'의 기질을 키우는 거다. '땅'의 마음의 힘을 기르는 거다. <곤괘>의 용육(用六)에서 말하는 "이영정(利永貞)"이다. 즉 오랫동안 땅의 마음을 지켜야 이롭다. 그러니까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며,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를 '땅의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과학은 인간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해 왔지만 그건 현상의 한 면일 뿐이다. 과학은 쪼갠다. 지능은 대상을 분해한다. 반면에 마음은 대상을 한데 합친다. 마음으로 공감하면 큰 그림이 보이고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으로 관심을 쏟으면 즉시 대상과 연결된다.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무언가를 쪼갤수록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잠시 삶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마음의 평화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해 하고 집중할 때 온다. 그리고 판단중지를 한다. "인간이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은, 동일한 정황에서 누구나가 다 동일한 해석, 결정,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듯, 우리 각자는 다른 해석과 결정을 내린다. 그렇기에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등의 표현으로 한 고유한 존재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자의적 판단/심판을 중지하는 것[은] 인간됨의 실천이다."(강남순)
그 길이 어쩌면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하는 '싸우지 말라'는 "부쟁의 철학"이 아닐까? 노자는 그걸 다음과 같이 잘 말해주었다.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일이다. "훌륭한 무사는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이기는 사람은 함부로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늘 남에게 겸손하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善爲士者不武(선위사자불무) 善戰者不怒(선전자불노) 善勝敵者不與(선승적자불여): 군대 통솔을 잘 하는 자는 무력을 쓰지 않는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대적하여 맞붙지 않는다. 善用人者爲之下(선용인자위지하) 是謂不爭之德(시위부쟁지덕) 是謂用人之力(시위용인지력) 是謂配天古之極(시위배천고지극):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춘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부쟁의 미덕이라 하고, 용인의 힘이라 하고, 하늘에 짝한다 한다. 이것은 모두 예로부터 내려오는 '무위의 준칙(지극한 경지)'이다.
나는 이것을 노자의 '고수 이론'이라고 부른다. 노자가 말하는 "고수 이론'에 따르면,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긴다 한들, 내 병사가 많이 죽고, 상대방의 감점에 상처를 내고 이겼다면 그 승리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고도의 전략을 나열하여 부쟁(不爭)의 탁월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노자는 이런 싸우지 않고 이기는 위대한 능력을 "부쟁지덕(不爭之德)"이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이 하늘의 도와 가장 부합(配天)하는 방법이며, 옛날 태평 시대에 사용했던 정치 방법(極)이었다는 거다.
▪ - 불무(不武): 최고의 전사는 무용(武勇)을 과시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하고 나약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면 단칼에 상대방을 제압한다. 겉으로 강하다고 으스대는 사람 치고 잘 싸우는 고수는 없다. 장자의 "목계(木鷄)"가 생각난다.
▪ - 불노(不怒): 잘 싸우는 군대는 분노(忿怒)하지 않는다. 분노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함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 무모한 공격을 하거나, 상대방의 전략에 말려들면 결국 패배의 결과밖에 없다.
▪ - 불여(不與)또는 부쟁(不爭): 싸움을 잘 이기는 사람은 직접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다. 전략을 잘 세워 쉽게 승리를 얻어낸다. 직접적인 충돌은 결국 후유증이 남는다.
▪ - 위하(爲下): 사람을 잘 부리는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인다. 상대방을 존중하여 나를 위해 전력을 다하게 한다. 진정 용인(用人)의 고수이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의 마티아스 뇔케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을 드러내고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요즈음의 사회가 그걸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꽃 튀는 경쟁 속에서 이기고 인정받으려면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했고, 얼마나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는지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이 팽배하죠. 그러나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과감히 그 나팔의 행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단하고 강인한 내면을 갖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입니다." 하나 더 인용한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인상을 주지 않아도 된다. 뽐내거나 화려한 겉치레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 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당신이라는 사람이 더 빛날 수 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나는 그런 것들을 배웠는데, 잊고 사는 거다.
나는 배웠다/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궂은 날과 잃어버린 가방과 엉킨 크리스마스트리 전구
이 세 가지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당신과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하든
그들이 당신 삶에서 떠나갔을 때
그들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삶은 때로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양쪽 손에 포수 글러브를 끼고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다시 던져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열린 마음을 갖고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
대개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 고통이 있을 때에도
내가 그 고통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날마다 손을 뻗어 누군가와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따뜻한 포옹,
혹은 그저 다정히 등을 두드려 주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 당신이 한 행동은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결코 잊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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