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는 순환한다. 돌고 돈다. 가면 돌아오고, 만나면 헤어진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0월 3일)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비가 구슬프게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 비이다. 아마도 이 비 그치면 가을이 좀 완연해질 거다. 벌써 10월도 3일째이다. 시간이 가는 것만큼 나는 늙는 거겠지만, 나는 늙는다는 것을 잘 모른다. 늙는다는 것에 초연해서 그럴까? 그냥 하루를 살기 때문이다. 오늘만 그리고 지금-여기에서만 살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쉽게 바꾸고 편안해 질 수 있다.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내일이 없으니 오늘 있는 힘을 다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 때 나를 옭아매던 어떤 한계에 갇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감정을 다시 갖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자유롭고, 일상이 귀찮지 않다. 실제적으로는 가끔 게으름 피우고 싶은 마음을 각성하게 하게도 한다. 그리고 어떤 상대가 나를 괴롭히면 내일은 내가 없을 테니 그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편안하다.
오늘 아침에 내리는 이 비는 계절이 가을로 가는 길을 더 재촉할 거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봄비에 만물이 잘 보이고, 여름 비에 튼실한 열매 열리고, 가을 비에 나뭇잎 보내고, 잎 떨어진 벌거벗은 나무에 겨울 비 내릴 거다. 비 이야기 나와서 말하는 데, 봄 비는 일 비이고, 여름 비는 잠 비고, 가을 비는 떡 비고, 겨울 비는 술 비이다. 봄에는 비가 와도 들 일을 해야 하고, 여름에는 비교적 농한기 이므로 비가 오면 낮잠을 자게 되고, 가을 비는 햅쌀로 떡을 해 먹으며 쉬고, 겨울에는 술을 먹고 즐긴다는 뜻이다
오늘은 월요일이지만, 10월 3일 개천절로 공휴일이다. 개천절(開天節)은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개국한 날이다. 왜 개천(開天)인가?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과 이화세계(理化世界, 이치를 세상에 구현하다)는 우리 한민족의 뿌리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다. 국정 목표로 홍익인간도 좋지만 이화세계는 더 좋다. 이치, 즉 진리의 세상을 이 땅에 구현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리와 먼 편견, 거짓, 불법, 불평등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오늘이라도 우리 조상들의 건국 이념을 되새기는 날이었으면 한다.
가을 비 내리는 조용한 아침에, 지금부터는 지난 주 금요일에 함께 읽은 노자 <<도덕경>> 제40장을 읽으려 한다. 이 장의 화두는 "반(反)"과 "약(弱)"이다. 노자는 '도'의 작동 방식을 '거꾸로 되돌아옴'과 '부드러움'으로 설명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가는 것은 돌아오고 약한 것이 쓰인다'는 거다. 이 장이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도'는 순환한다. 돌고 돈다. 가면 돌아오고, 만나면 헤어진다. 달이 찼다가 기울고, 추운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오는 자연의 이치도 '도'를 닮았다. 그래서 '도'는 곧 자연이다. '도'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크고, 강하고,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작고 약한 것, 엉성하고 투박한 것이다. 약하기에 강하게 되고, 작기에 크게 되고, 엉성하기에 정밀하게 되고, 투박하기에 아름답게 된다. 모든 사물은 "유(有)"의 형태를 띠지만 그 "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무(無)"다. "무"가 있기에 "유"가 가능하므로 "무"는 만물의 어머니이고, 근원이고, 시초이다. "무"의 상태인 텅 빈 골짜기, 빈 방, 빈 그릇 등의 비유를 통해 자주 나온 바 있는데, < <도덕경>> 후반부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도의 기본 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장은 가장 간략하지만 가장 포괄적인 우주론이다. 그리고 가장 집약적으로 노자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반"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은 도의 쓰임이다. '허(墟)' 있기에 생생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천하만물은 유형에서 생겨나지만, 결국 유형은 무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반"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약"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약"의 기능은 '허'의 창조력을 의미한다. '허'가 있어야 순환이 가능해지고, "약"이 있어야 새로움이 개입된다. 짧은 제40장의 전문을 공유한다.
反者 道之動(반자도지동) :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다
弱者 道之用(약자도지용) : 약함이 도의 쓰임이다
天下萬物生於有(천하만물생어유) :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有生於無(유생어무) :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반"은 <<도덕경>>에서 네 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노자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글자이다. '반"의 사전적 정의는 '반대로', '돌아오다', 뒤집히다'이지만, 세상이 구동하는 원리인 '도'는 우리의 상식과 반대로 움직이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오고, 극에 다다르면 뒤집힌다는 것이다.
<<도덕경>> 제25장에 나오는 말이다.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하자. 이 큰 것은 크기 때문에 흘러 움직이고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거다. 이 말을 내 방식대로 하면,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 온다'는 말이다. 노자는 도를 억지로 개념화하여 '크다'고 하는데, 이 '크다'는 말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즉 전체 우주의 존재 원칙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전체는 가만히 있는 정지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부단한 순환 운동 속에 있다고 보았다. 또 하나 빠뜨리는 곳이 없는 부단한 운동의 방향은 먼 곳을 향하여 있는데, 이는 어떤 극한을 향하여 간다는 뜻으로 보았다. 사물의 발전은 극점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그 극점에 이르러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거다 이것이 노자가 보는 전체 자연의 운행 모습이었다.
'대(大)→서(逝)→원(遠)→반(反)'은 전체 운행의, 즉 도의 운행을 나타내는 전략 아래 동원된 유기적 의미 연관 고리들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도'가 마치 하나의 물건과 같이, 비록 원형이나 리듬성, 귀환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하나의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도는 혼돈의 무엇이며, 독립 주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개념에 잡힐 수 없는 무형, 무명의 전체이다. 따라서 그 전체의 방향성은 원형이라 할지라도 단선으로 표시될 수는 없다. 순환을 반복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닌 창조의 리듬이다. 순환이 없는 창조는 없다.
나는 순환에 주목한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이 순환 속에서 부드럽고 약한 것이 반대로 강하고 센 것을 이기고, 비우고, 낮추는 것이 결국 채움과 높음으로 돌아온다. 군림과 강요는 결국 뒤집히고 되고, 섬김과 모심은 복종과 존경을 얻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반"의 역설이다. 아름다움 뒤에는 추함이 있고, 행복 뒤에는 불행이 엎드려 있음은, 결국 "반"의 원리가 세상만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박노해 시인의 <동그란 길을 가다>를 공유한다. 절정이든, 최악이든, 천국이든, 지옥이든 결국 인생은 동그란 길을 돌아 나가는 거다. 세상을 구동하는 원리는 결국 뒤집히고, 돌아오고, 반대로 돌아간다.
동그란 길로 가다/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 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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