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4. 16:52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0월 3일)

지금 우리는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중 네 번째인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는 규칙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시각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관심이 있는 대상에 눈길을 보내고 다가가서 살펴보고 만져 보고 소유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보려면 먼저 대상을 정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목표로 삼아 눈길을 보낸다. 그건 인간이 수렵과 채집에 길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수렵은 표적을 정해서 돌멩이 같은 무기를 던져 맞히는 행위이고, 채집은 대상을 줍고 뜯는 행위이다. 그래 우리 인간은 목표를 향해 돌이나 창, 부메랑을 던지는 행위에 익숙하다. 던지고 쏘는 대상은 그것만이 아니다. 한턱을 쏘고, 질문을 던지고, 돈을 투자하고, 물량도 투하한다. 표적을 맞히거나 점수를 올리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하거나 죄를 짓는다. 영어의 죄(sin)이 '과녘을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A'라는 지점에 있고, 동시에 'B'라는 지점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늘 건너가는 존재이다. 여기서 'A'는 기준에 못미치는 지점이고, 'B'는 지금보다 더 나은 지점이다.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시 불충분한 상태로 보기 때문에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시도한다. 그때 현재 상황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알지 못하고,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바로 본다는 것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깨달음과 실천의 시작은 바로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리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시작하면, 내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성질이 급하다. 진짜 다이내믹하고, 한 번에 올인하는 기질도 있고, 굉장히 낙천적이긴 한데 근본적인 통찰 같은 건 약하다.

어쨌든 본다는 것은 대상을 정했다는 거다. 그러나 그 대상을 '보기'에서, 그 말의 깊이는 다르다. 나는 다음 4 가지로 층위를 나뉘어야 한다고 늘 주장한다. (1) 그냥 보다 (2) 자세히 보다 (3) 관찰하다. (4) 관조하다. 뿐만 아니라, 그 대상 중에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충분한 성공과 가치를 이루어 내지 못한 현재의 삶을 깎아내리는 대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일들을 찾는 거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다. 관조의 단계이다. 그런 점검에서 미래는 과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래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미래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언제나 결함이 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행복은 산 정상에서 느끼는 잠깐의 만족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길에서 느끼는 희망이다. 행복은 희망에서 나온다.

그 다음은 행동하는 거다. 우리는 하루 동안 오백 번의 결정을 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다. 그 결정과 행동을 좀 더 나은 것으로 선택한다. 그래서 내일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면이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남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오로지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그리고 거창한 목표 대신 작은 목표를 세운다. 사실 우리는 능력에 한계가 있고, 쉽고 편한 걸 좋아하며, 걸핏하면 자신과 남을 속이려 하고, 잘 안 되면 세상과 남을 탓하며, 어지간하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아주 작은 목표부터 시작하는 거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아침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내가 되자!"고 다짐하고, 그 목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성공했을 때 어떤 보상으로 나를 격려해 줄까? 묻는다. 그러다 보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더 높고 가치 있는 목표에 눈길이 간다.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목표가 바뀌면 보이는 게 바뀐다. 원하는 것이 바뀌면 보이는 것도 바뀌는 법이다.

목표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는 거을 증명한 실험이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대니얼 사이먼스는 '지속적인 부주의에 의한 맹시(사물을 보고 있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흔히 부주의 맹이라 한다)라는 심리 현상을 연구한 것이다. 부주의 맹은 인간의 특징 중 하나이다.

글이 길어진다. 오늘의 시를 한 편 공유하고, 시각이라는 감각이 일어나는 복잡한 구조를 통해 '부주의맹'이 일어나는 현상을 살펴본다. 나는 이점이 늘 궁금했다. 왜 눈을 떴는데, 그걸 보지 못하는 걸까? 그 문제이다. 세상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들이 많다.

연속되는 연휴인데,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아직도 이동이 불편하다. 배철현 교수는 거리두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이다. 나는 이 말을 '물리적 거리 두기'로 바꾸었으면 한다. 두 번째는 '다른' 자신의 삶을 응시해 군더더기가 없는 삶으로 전환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 '수동적인' 거리두기는 개인의 자발적이며 능동적인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을 통해서만 성공한다. 배철현 교수가 말하는 개인의 '생활 속 거리 두기'란 자신의 언행을 깊이 관찰하는 '자기 응시'가 필수다. 인간은 어제의 습관대로 오늘 행동하기 마련이다. '생활 속 거리 두기'란 그런 어제의 삶을 지속하고 연명하려던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보는 행위다. 그런 과거의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천천히 복기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고 감동적이지 않은 언행을 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결심이다. 그래 내일도 대체 휴일로 연휴인데, 동네에서 그냥 놀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많다.

오늘은 개천절로 국경일인데, 일요일이라 내일이 대체 휴일이다. 개천절(開天節)은 말 그대로 하늘이 열린 날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개국한 날이다. 왜 개천(開天)인가? 환웅이 천신인 환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 그래 오늘 아침 사진은 언젠가 찍어 둔 하늘을 공유한다. 그런데 개철철의 의미와 행사들도 사라진 목록 중의 하나이다.

홍익인간(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과 이화세계)이치를 세상에 구현하다)는 우리 한민족의 뿌리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념이다. 국정목표로 홍익인간도 좋지만 이화세계는 더 좋다. 이치, 즉 진리의 세상을 이땅에 구현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진리와 먼 편견, 거짓, 불법, 불평등이 나무한다. 그렇지만 오늘이라도 우리 조상들의 건국 이념을 되새기는 날이었으면 한다.

사라진 것들의 목록/천양희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지고 고전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오늘 <인문 일기>의 주제로 돌아간다. '부주의 맹'이 일어나는 이유는 시각이 매우 복잡한 감각이기 때문이다. 시각은 정신 생리학적으로나 신경학적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감각이다. 망막은 안구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투명한 신경조직이다. 망막이 빛을 받아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 망막 한 가운데에 있는 중심와(황반)이다. 망막으로 들어 온 빛은 중심와에서 초점을 맺는다. 중심와가 고해상도로 빛을 처리해 주는 덕분에 사물을 세밀하게 구별하고 얼굴과 형체 등을 인식할 수 있다.

좀 복잡한 것 같지만, 알아 두면 좋다. 그래도 시각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한 거다. 자세히 보면 훨씬 더 복잡하다. 중심와를 이루는 세포들이 시각 과정의 첫 단계를 처리하는데, 시각 피질에 있는 만 개의 세포가 관여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또 만 개의 세포가 추가로 필요하다. 만약 망막 전체가 중심와로 되어 있다면, 뇌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커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인간의 모습은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을 닮았을 것이다. 따라서 뭔가를 보려면 대상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하는 거다.  인간의 시각이 감지하는 대부분은 주변적이고 해상도가 떨어진다. 중요한 것들만 중심와가 처리한다. 목표로 삼은 대상을 고해상도로 처리하는 데 시각 능력이 집중된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대부분 눈에 뜨지 않고 사라진다. 그래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관찰 능력이 필요한 거다. 아니면, 어떤 대상에 목표를 정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를 견뎌낸다. 개인적인 관심사에만 집중하며 나머지는 무시한다.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에만 시선을 둔다. 그걸 방해하는 장애물은 눈에 들어오지만 그 밖의 것들은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무엇을 볼 것인지 신중하게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특히 인간은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목표를 분명하게 보게 된 대가로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시각을 잃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우리가 위기에 빠졌을 때이다. 삶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뛰어나오고 보인다. 그런데 그런 문제들은 어쩌면 자신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 때문에 시작됐을지 모른다. 욕망 때문에 눈이 멀어 버린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정작 우리들 코 앞에 있는데, 시선이 오로지 목표에만 가 있어 못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려면 무엇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이를 사자성어로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 한다. '하나를 집기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놓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하나를 쥐고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하나를 쥐려고 하면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까지 모두 잃게 된다는 고사성어는 그 외에도 '일리일해(一利一害), '일득일실(一得一失)이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하나도 못 잡는다’는 우리나라의 속담처럼 너무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모두 잡으려다 모두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언덕길을 잘 오르려면 내려놓는 법을 잘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인생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으며, 위기를 맞아 패배주의에 빠지기 전에, '인생에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나한테 있다'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여러 선택지가 생긴다. 인생이 꼬이고 있다면 자신의 지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이지 삶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자신의 가치 체계를 바꾸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것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못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하는 순간부터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려져 있던 것들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나아지기를 간절히 원할 때에만 이런 노력도 효과를 발휘한다.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활력을 되찾아 의미 있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어지러운 정신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더 좋은 삶은 책임질 것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의미하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큰 노력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부질없는 삶의 고통을 끝낼 수 있고, 오만과 기만, 원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바라기만 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면,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거나 세상에 배신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말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세상과 춤을 추려고 한다면 춤을 출 수 있다. 우리는 보려고 하는 것만 본다. 그 밖의 대부분의 세계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것을 보고자 한다면, '더 좋은 삶을 살고 싶다'라는 목표를 세우면, 우리의 정신은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정보를 들고 나타날 것이다. 그 정보를 활용해 움직이고, 행동하고, 관찰하고,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또 다른 목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전진하게 될 것이다.

구하라. 그래야 너희가 받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래야 너희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간절하 구하고 힘껏 두드려야 비로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는다. 우리 개개인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면 이 세상도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다. 위대한 개인이 위대한 사회를 만드는 거다. 지금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 조던 B. 피터슨이 말하는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중 네 번째 법칙인 '현재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라'는 것이다. 내일 한 번 더, 이 법칙에 대해 이야기해야 겠다. 글이 너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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