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이 기득권이 된 것은 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2. 15:19

2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10월 2일)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의(justice)의 세상을 넘어 공의(righteousness)의 세상이다. 롤즈(Rawls)의 정의론은 일단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난 지의 문제는 더 이상 따지지 말고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정의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가며 사회 정의 이론을 기초했다. 그 기초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기회의 평등,
• 과정과 절차의 투명성,
• 결과의 정의로운 사용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것이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였다. 하나의 레토릭(rhetoric)이었다. 왜냐하면 롤즈(Rawls)의 정의론이 다음과 같은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 유전자 복권 당첨자(좋은 머리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기회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복권에서 배제된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혜택을 누린다.
• 과정과 절차의 투명성으로 다시 한번 당첨자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경기를 응원하고,
• 이렇게 해서 얻은 우월한 결과를 개인들에게 귀속 시켜준다.
주목해야 할 것이, 이 이론은 당첨자의 행운을 이중 삼중으로 세탁해서 불평등을 정당화해주는 역기능을 더욱 심화시킨다.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불공정의 세탁소로 전락했다. 불공정한 양극화가 정당화 된다. 예컨대,
▪ 롤즈의 무지의 커튼을 빌미로 유전자 복권 장본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운이 좋아서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감추고 모든 결과를 자신이 스스로 땀 흘려 일군 것으로 주장한다.
▪ 억세게 운이 좋은 것도 자신이 남들과 달리 특별하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었다고 포장한다.
▪ 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일군 것처럼 스스로도 믿게 되면 마치 세상을 다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권능감을 가지게 되고 어느 순간 더불어 커져 가는 거만과 탐욕을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한다.

이젠 유전자 복권 은행이 돌아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화려한 수사에 불과한 정의(justice)를 넘어 현실 속에서 공의(righteousness)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 주장한 공의(公義)라는 단어는 공평(公平)과 정의(正義)를 하나로 줄인 말이다. 인간사회에 불공평하고 부정한 일들이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기득권과 '갑'의 놀부 심보가 암처럼 퍼져 가고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윗사람이 우선 자기 것을 희생하는 문화가 없거나 부족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문화가 아쉽다. 자신이 기득권이 된 것은 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많은 약자의 희생으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힘 있을 때, 약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기회가 살면서 쉽게 그리고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마다 약자에 대한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 그건 강자에게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을'과 약자에게는 내 것 일부를 양보해 함께 풍요로워지는 '너그러운 사회',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 글을 갈무리하고 나니, 나부터 부끄럽다. 그런 감정 속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 하나가 소환되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등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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