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10. 1. 16:54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일기
(2021년 10월 1일)

벌써 10월이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어서 좋다. 그래서 가을의 여유와 넉넉함이 더 느껴진다. 또 그런 달이 또 있다. '6월'을 '유월'이라 한다. 그리고 시월은 맺음의 시간인 동시에 버림의 시간이다. 버림은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향한 희망이다. 그래 난 시월이 좋다. 오늘 공유하는 시도 목필균 시인의 <시월>이다.

시월/목필균

파랗게 날 선 하늘에
삶아 빨은 이부자리 홑청
하얗게 펼쳐 널면

허물 많은 내 어깨
밤마다 덮어주던 온기가
눈부시다

다 비워진 저 넓은 가슴에
얼룩진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는
시월

오늘은 몇 일전부터 읽고 있던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중 네 번째인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는 규칙을 공유한다.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두 분야에서 마을 최고의 전문가로 대접을 받는다. 그런 동네 영웅들은 각 분야의 승자가 되어 세로토닌 호르몬의 혜택을 누린다. 나도 그런 면이 있다. 저자 피터슨에 의하면, 작은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 압도적으로 저명한 인물이 많다고 하였다. 현대인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산다. 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수억 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인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세상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본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재미도, 의미도 없이 따분하기만 하고,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취향은 후지고, 몸매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면에는 우리를 잘 아는 비평가가 살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자기 비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혹한 자기 비판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법이다. 죽으면 다 소용 없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우리는 '긍정적 망상(positive illusion)'이라 한다. 세상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곳이어서 망상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거짓말 보호막을 활용하는 거다.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대안이 있다. 내면의 비평가가 늘 자신의 노력과 삶의 가치를 깎아내린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닫아야 한다. 그건 지혜로운 충고가 아니라 쓸모 없는 지껄임이기 때문이다.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허무주의의 상투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냐?' 하고 화를 내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합리성으로 위장한 비열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야"라 반응하면 지는 거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늘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가치 판단이 배제된 선택은 없는 거다. 가치 판단은 모든 선택, 모든 행동의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 속에는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에는 언제나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게 가치의 차이이다. 그런 가치의 차이가 없다면 의미의 차이도 없다. 의미는 더 좋은 것과 더 나쁜 것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우리가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짓대로만 보기에는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다. 좋은 게임은 내 소질과 능력에 맞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예를 들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작업 중인 작품, 직업 등이 게임이다. 게다가 어떤 게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게임에 도전하면 된다.  또한 게임을 바꿔도 효과가 없으면 아예 새로운 게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모든 게임에서 승리한다는 말은 새로운 분야, 까다로운 분야에는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승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성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성장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을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생의 게임들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사실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인간에게는 본성이 있다. 잠시 억누를 수는 있지만 십중팔구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므로 가치 기준을 정하기 전에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여기고 객관적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1)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무엇인가?
(2)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3) 고된 일상 속에서도 지쳐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떤 보상, 어느 정도의 여가가 필요한가?
(4)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인생을 놔 버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조심해야 할까?

인간은 사회적 책임으로 연결된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기에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임무가 있다.  그리고 그 임무를 완수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용감하게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삶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적어도 자신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이런 질문들을 자신에게 해 보아야 한다.
(1) 자신은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 대접받고 싶은가?
(2) 자신은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3)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에 자신이 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4)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는 건 없는가?
(5) 마음 속에 맺힌 응어리나 누군가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없는가?

원망은 마음에 병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감정이다. 원망과 오만, 기만은 악마의 삼형제이다. 이 악마의 삼형제보다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마음에 원망이 남아 있는 경우는 다음 둘 중의 하나이다.
(1)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원망을 느끼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원망의 대상이나 내용을 입 밖으로 꺼내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른다.
(2) 부당한 폭압을 당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때는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저항해야 한다. 도덕적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침묵의 결과는 더 참혹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침묵으로 갈등을 피하는 게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침묵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폭압과 독재는 그런 거짓말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인이 된 순간부터 고유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의 문제와 씨름한다. 이런 문제는 각자가 살아온 삶으로 인해 빚어진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문제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디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표기해야 할 것과 계속해야 할 것도 신중하게 경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중 네 번째인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는 규칙을 말하고 있다. 이 규칙을 지키려면 나 자신부터 할 일이 많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지금 고유하고 있는 거다. 글이 길어져 다음 일요일 <인문 일기>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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