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제9괘인 <풍천 소축> 괘 (1)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30. 18:18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28일)

오늘은 우리 성당 38주년 본당의 날로 정하고 야외 미사와 놀이 한마당을 한다. 그래 공유를 못하고 나간다. 오늘은 제9괘인 <풍천 소축> 괘를 읽고 공유한다.  

외괘가 손풍(巽風, ☴), 내괘는 건천(乾天, ☰)으로 되어 있는 괘의 이름을 ‘소축(小畜)’이라 한다. 내괘의 하늘(☰) 위에 바람(☴)이 불듯이, '육사 음(陰)'이 다섯 양(陽)을 쌓아간다는 뜻이다. <수뢰둔> 괘에서 어렵게 시작된 경륜이 <수지비> 괘에서 드디어 전쟁의 참화를 끝내고 만국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제 아름다운 문명과 문화의 덕을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이다. 파괴되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문명을 쌓아 나가는 것은 차츰차츰 조금씩 쌓아 나가야 한다.

<대상전>은 "象曰(상왈) 風行天上(풍행천상)이 小畜(소축)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懿文德(의문덕)하나니라'고 말한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하는 것이 소축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문덕을 아름답게 한다'이다. TMI: 懿, 아름다울 의. 바람이 하늘 위를 간다. 그러니 작게 쌓일 뿐이다. 군자는 이러한 소축 괘의 상을 본받아 내면의 문덕(文德)를 아름답게 축적 시킨다. 그러니까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 올라가는 것처럼, 소축의 군자는 공부해서 인문적 삶의 힘을 기른다는 거다.

<풍천소축> 괘는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하는 상이다. 군자가 이러한 기운의 양상을 보고 본받아, 문명과 문화의 덕을 아름답게 한다. 문명과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 위로 바람이 불면서 천지 기운의 변화가 차츰차츰 이루어지듯이 문명과 문화의 발전은 조금 조금씩 이루어진다. 하늘 위를 지나치는 바람은 항상 움직이기 때문에 구름을 휘몰아도 잠시 동안 축적시킨다. 무엇이든지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럴 때는 외면의 상황에 대해 행위 하는 것보다는 내면의 누덕을 아름답게 온축시키는 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인지 괘의가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懿文畜德, 의문축덕)"이다. 지금까지의 괘의를 정리해 본다.
- 제1괘 <중지건>-자강불식(自强不息):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후덕재물(厚德載物):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창세경륜(創世經綸):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과행육덕(果行育德):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음식연락(飮食宴樂):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자사모시(作事謀始):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용민휵중(容民畜衆)-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서괘전>>은 <수지비> 괘 다음에 <풍천소축> 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比者(비자)는 比也(비야)니 比必有所畜(비필유소축)이라 故(고)로 受之以小畜(수지이소축)"이라 했다. '비(比)라는 것은 도움이니, 도우면 반드시 쌓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소축으로 받았다는 거다. 서로 도우면 반드시 좋은 결실을 쌓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지비> 괘 다음에 <풍천소축> 괘로 받았다는 뜻이다.

<풍천소축> 괘의 괘사는 다음과 같다. "小畜(소축)은 亨(형)하니 密雲不雨(밀운불우)는 自我西郊(자아서교)일새니라."  번역하면, '소축은 형통하니 구름이 빽빽하되 비가 오지 않은 것은 내가 서쪽 들(西郊)에 있기 때문이다'라 할 수 있다. TMI: 畜:쌓을 축·기를 휵, 密:빽빽할 밀, 雲:구름 운, 自:부터 자, 郊:들 교(성 밖). <‘천수송>괘와 <지수사>괘의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 문명과 문화를 쌓아가는 것이 ‘소축’이니 형통하다. <소축괘>는 내괘가 건천(乾天, ☰), 내호괘가 태택(兌澤. ☱ 연못), 외호괘가 이화(離火 ☲ 불), 외괘가 손풍(巽風 ☴ 바람)이다. 이를 기운의 양상으로 살펴보면, 내호괘 연못이 외호괘 불의 작용으로 수증기가 올라가 구름이 만들어지나, 외괘의 바람(西風)이 불어서 구름이 비를 내리지 못하는 상이다. 그래서 구름은 빽빽하게 생기지만 바람이 불어 비는 오지 않는 것이며, 이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뜻한다. ‘내가 서쪽 들로부터 함이라’는 것은 내호괘 태(☱)가 후천팔괘로 서방이니 서풍(西風)이 부는 것을 말한다. ‘密雲不雨 自我西郊’는 또한 문왕(文王)이 서백(西伯)으로 있을 때, 은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에 백성들은 문왕의 선정(善政)을 갈구하지만, 문왕이 유리지방에 있는 옥에 갇혀 있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나타낸 문왕 자신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상왈) 小畜(소축)은 柔(유) 得位而上下(득위이상하) 應之(응지)할새 曰小畜(왈소축)이라.
健而巽(건이손)하며 剛中而志行(강중이지행)하야 乃亨(내형)하니라. 密雲不雨(밀운불우)는 尙往也(상왕야)오 自我西郊(아아서교)는 施未行也(시미행야)라"이다.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소축(小畜)은 유(柔)가 제자리를 얻어 위와 아래가 응하기 때문에, 소축(小畜)이라 이른다. 굳건하고 겸손하며, 강한 것이 가운데하고 뜻이 행해서, 이에 형통하다. ‘구름이 빽빽하되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오히려 가는 것이고, ‘내가 서교로부터 함’은 베풂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가 된다. TMI: 健:굳셀 건, 巽:공손할 손, 乃:이에 내, 尙:오히려 상, 施:베풀 시.

<소축(小畜)> 괘에서 유일한 음효인 '육사'가 음 자리에 제자리를 얻어, 위의 양('구오', '상구')과 아래의 양('초구', '구이', '구삼')이 응하기 때문에 ‘소축’이라 한다. 즉 육사 음이 제자리를 얻고 나머지 다섯 양이 응하고 있으니, 음 하나가 다섯 양을 그치게 하여 '소축'인 것이다. 괘덕으로 보면 내괘 건천(乾天 ☰)으로 굳세고, 외괘 <손풍(巽風, ☴)으로 겸손하며, '구이'와 '구오'의 강이 내괘와 외괘에서 중을 얻어 그 뜻이 행해지니 이에 형통하다. ‘구름이 빽빽하되 비가 오지 않는 것’은 구름이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바람때문에 지나가는 것이고, ‘내가 서교로부터’라는 것은 문왕의 선정(善政)이 행해지지 않는 것이라 보는 해석이 여럿이다.

주나라 건국에는 네 사람의 영웅이 있었다. 문왕, 무왕, 주공 그리고 강태공이다. 문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폭정을 견디며 힘을 길렀고, 무왕은 은나라 정복에 성공했다. 거친 전쟁을 이끌었던 무왕은 수많은 죽음의 원혼을 책임지듯이 새로운 나라를 오래 이끌지 못하고 병들어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앞둔 무왕이 신생 왕국인 주나라를 생각해보니, 은나라는 백이와 숙제가 상징하는 도덕성으로 저항하는 세력, 무경으로 대표되는 힘으로 저항하는 세력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거기다 주나라 건국 공신들 사이의 알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이 왕위를 얻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안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그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없었다. 동생인 주공이 왕위를 잇는 것만이 아들과 주나라를 동시에 살리는 길이었다.

주공은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꿈이 있었다. 주나라가 왕권 중심 국가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인 예(禮)가 살아나고, 예(禮)에 기반을 둔 백성들이 삶의 즐거움을 누리길 원했다. 단지 그 일을 위해 주공은 손과 발이 다 닿는 한이 있어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주공은 형인 무왕의 간절한 부탁과 자신의 꿈을 위해 어린 성왕을 대행하는 섭정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풍천 소축> 괘의 효사들이 더 잘 이해가 된다. 그건 다음으로 이어간다.

<풍천 소축> 괘가 말하는 미약한 힘이지만 보탬이 이루어지려면, 중요한 문화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 때 문화적 높이를 가지려면, 학술의 엄밀한 토론과 지지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현재 우리는 이론이나 학술보다는 '진영'의 정치 공학이 우선이다. 이렇게 되면 진영만 바꾸는 일이 반복되고, 학술과 문화가 국가 운용과 별 상관 없이 존재한다. 삶과 지식이 분리되어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문학과 인문정신이 따로 논다. 인문적 지식을 기능적인 이해의 대상으로만 삼지 내 삶에 충격을 주는 송곳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약하다. 높은 수준의 지식을 송곳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송곳이란 말을 하니까 사자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생각난다.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날카롭다는 뜻이다. 주머니 안에서도 들어 나는 것처럼, 문화도 스스로 드러난다.

문화를 글자 그대로 보면 '무엇인가를 만들어서 혹은 그려서(文) 변화를 야기(化)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변화를 더 잘 야기하는 인간일수록 더 인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변화를 야기하는 동력을 흔히 창의력이라고 한다. 창의적 도전은 집단적으로 함께 내달리던 정해진 방향에서 급선회하던 바로 그 지점이다. 문화는 선회(旋回)에서 시작된다. 전진(前進)하다 역진(逆進)하는 사람은 두 방향을 다 경험하지만, 이 경험의 여정에는 전진과 역진이 교차하는 신비한 지점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이 바로 문화적이고 창의적이며 인간적인 활동의 시작이다. 이게 인문 정신을 가진 자들의 활동이기도 하다.

몇 일동안 밤 곡기가 좋다. 그럴수록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며, 두런두런 말을 나누며, 어두운 길을 밝게 걸을 그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대신 조해주 시인의 시를 읽는다. 이렇게 적은 단어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는 표현은 압권이다.

밤 산책/조해주

저쪽으로 가 볼까

그는 이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얇게 포 뜬 빛이
이마에 한 점 붙어 있다

이파리를

서로의 이마에 번갈아 붙여 가며
나와 그는 나무 아래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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