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추석이지만, 내 어린 시절의 추석과는 다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30. 18:16

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30일)

배 철현 교수는 인생을 '멋진 춤이 아니라 레슬링'이라고 보았다. 인생은 잘 짜인 안무라기보다 사각 링에서 펼치는 레슬링 경기라는 것이다. "링 안에는 나와 호흡을 맞추려는 파트너가 아니라, 나를 호시탐탐 링 바닥에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려는 경쟁자가 있다. 레슬러에게 고통과 예상치 못한 습격은 일상이다. 레슬러에게 링 위는 적 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 감정 그리고 훈련의 성과가 여실히 드러나는 공간이다. 인생에서는 우아한 몸짓이나 감동적인 목소리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이란 링 위에서 나를 엄습하는 공격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평상시 고강도 훈련이다."(배철현) 그래 나는 이번 연휴 기간을 체력과 영혼의 근육을 기르는 고강도 훈련 기간으로 삼고 있다. 연휴이지만, 쉬지 않고 나의 습관으로 고정된 아침 글쓰기와 맨발 걷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젠 쌓인 <인문 일지>를 책으로 만들 생각에, 모두 인쇄하여 다시 읽으며 비문을 찾고, 오 탈자를 수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문 정신이 더 고양되는 중이다. 그리고 어제도 저녁 식사 후에 추석 보름달 아래에서 딸과 맨발 걷기를 했다. 오늘 공유하는 아침 사진이 그 거다.

추석이지만, 내 어린 시절의 추석과는 다르다. 가족이 해체되어 만남도 형식적이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 갔다가 바로 헤어졌다. 나는 딸과 친구 밤 과수원에 가 떨어진 밤을 엄청 주워 왔다. 김사인 시인이 말하는 추석 같지는 않았다.

추석은/김사빈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집 뒷마당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름달이다.

달밤에 달구 잡기 하다 넘어져
무릎이 깨어져 울던 일곱 살이다

한참 잊고 살다 생활에 지쳐
고향 생각나면 달려가던
뒷동산에 만나던 첫사랑이다.

큰어머니가 해주던 찹쌀 강정과
송화 가루로 만든 다석이다

울담 안에서 오가던 정을
건네 주던 푸성귀 같은
내 사랑 여인아

책갈피 속에 곱게 간직한
진달래 꽃잎 같은 내 친구야

괴롭고 힘들 때
영혼의 안식처
내 쉼터인 것을

원래 추석의 유래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3대 임금인 유리 이사금이 도성 안 부녀자를 두 팀으로 나눠 한 달간 길쌈 만들기 경쟁을 하게 한 뒤 진 쪽이 한턱을 쏘게 한 축제에서 비롯된 게 추석이라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에도 조상의 묘를 찾아 인사 드리던 풍속이 잘 기록돼 있다. 지금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수확한 곡물을 조상께 바치며 감사드리는 날로 인식하지만, 원래 추석은 아직 곡식을 수확하기 직전이어서 무사히 풍년이 들도록 조상님이 마지막까지 도와주십사 기원하는 의미가 더 컸다고 한다. 실제로 이 무렵이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지면서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쳐 한 해 농사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들이 잊혀지고 있다. 추석의 대표음식인 송편도 사라지고 있다. 송편의 원래 이름은 '오려 송편'이었다 한다. '오려'란 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올벼를 뜻한다. 송편이란 이름은 떡 사이에 솔잎을 깔고 찐다는 의미로 소나무 송(松)과 떡 병(餠)을 붙여 부르던 데서 나왔다. 송편이 반달인 이유는 점점 기울어지는 보름달보다 앞으로 가득 차오를 반달을 중시한 우리 조상들의 우주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추석에는 달도 둥글고, 과일도 둥글고, 마음도 둥글어진다.

벌써 오늘이 9월의 마지막 날이다. 세월이 빠르다.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두고, 우리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라 한다. 장자가 한 말이다. 장자는 우리의 삶을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이라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리며 지나치는 순간 정도다. 홀연할 따름이다!"(<<장자>> 외편 <지북유>)고 했다. 이를 간단히 우리는 "백구과극"이라  한다. 우리의 삶이 "마치 흰 망아지가 벽의 틈새를 지나치는 순간"이라는 백구과극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내일부턴 10월이다.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 때쯤 되면 늘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무의 지혜 말이다. 이제  나무들은 겨울 준비를 할 것이다.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무들은 나뭇잎을 떨굴 것이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비우고 덜어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10월이 시작되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살펴 보리라.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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