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28. 20:14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28일)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 법칙인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를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나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거다.

위태롭게 흔들리며 지옥으로 추락하는 세상을 천국으로 옮겨 놓는 일에 우리 자신의 역할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각자 은밀하게 개인적인 지옥이 있다. 프랑스어에 '샤꾕 아 싸 메르드(Chacun a sa merde)'란 말이 있다. 세상에 문제 없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직역하면, '사람은 다 자신만의 문제[자신의 똥]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는 자신의 더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살다 보면, 교집합 없는 사건은 없다. 나 자신에게 온 사건 중에 내가 빠져 있는 채로 이루어진 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건도 내 안에 있는 세포와의 상호작용이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러니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안에 가지고 있는 문제, 즉 지옥이 무엇인지 철저히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런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수 있다.아니 애초에 그런 지옥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거다. 그러면 삶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또한 죄악으로 가득한 본성이 구원받는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동행하는 힘을 다시 배운 사람답게 부끄러운 자의식을 떨쳐 내고, 자연스러운 자긍심과 당당한 자신감을 찾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몇일 동안 <창세기>를 다시 읽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어제 공유했던 내용은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제안한 열매를 먹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그러나 하느님은 하와와 아담에게 저주를 내렸다. 하와 여자가 받은 저주는 단순하지 않다.

그 저주의 내용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뇌 용량이 크게 늘었다. 늘어난 뇌 용량 덕분에 자의식도 생겼다. 이때 태아 머리와 여성 골반 사이에 치열한 진화 경쟁이 벌어졌다. 여성은 달리기가 불편할 정도로 골반을 넓혔고, 인간의 아기는 비슷한 몸집의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하면 물렁물렁한 머리로 1년 이상 먼저 태어나게 진화됐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출산과 육아는 여성과 아기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태어나서 다름없이 첫해에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성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젠 <창세기>의 다음 구절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제3장 16절)고 말했다    

아담과 그 후손까지도 만만치 않은 벌을 받았다. 하느님은 대략 이렇게 말했다. "남자야, 너는 여자의 말에 넘어가 눈이 열리고 밝아졌다. 뱀과 열매와 사랑하는 여자가 허락한 시력 덕분에 너는 멀리, 심지어 먼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은 재앙이 다가오는 것도 볼 수 있으므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영원히 희생해야 하고, 안전을 위해 쾌락을 멀리해야 한다. 항상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네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좋아하면 좋겠구나. 네 주변에 그런 것들이 잔뜩 자랄 테니까."

<창세기> 제3장 17장-19장을 공유한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마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을 풀을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흐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장자>>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자연(大自然)은 육체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 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기기 위한 것이다." 원문은 이렇다. "夫大塊載我以形(부대괴재아이형) 勞我以生(로아이생) 佚我以老(일아이로) 息我以死(식아이사) 故善吾生者(고선오생자) 乃所以善吾死也(내소이선오사야)"

원문을 나름대로 다시 풀이해 본다. 사는 것이 힘들 때, 나를 위로 해주는 문장이다.
(1) 夫大塊載我以形(부대괴재아이형): 자연은 우리에게 육체라는 모습을 주어 이 세상을 살게 한다. 여기서 '대괴'가 혼돈이다. 혼돈은 여성이고, 거기서 우리의 모습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2) 勞我以生(로아이생) : 또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의 수고로 살아야 한다. 공짜는 없다.
(3) 佚我以老(일아이로) :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하게 한다. 그러니까 은퇴하면 편안하게 지내는 거다. 그래 나는 가급적 하루 한 가지 씩만 일을 하려 한다.
(4) 息我以死(식아이사) :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어 다행인 거다.
(5) 故善吾生者(고선오생자) 乃所以善吾死也(내소이선오사야) :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는 것은  곧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 있어도 좋고, 죽어도 좋다. 다 똑같다.

너무 길어지니, 오늘의 화두와 맞고, 이 계절에 어울리는 좋은 시 하나를 공유한다. <<당신에게 시가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책을 샀다. 내가 좋아하는 류근 시인의 서문을 읽으며, 왜 <인문 일기>에서 매일 시를 한 편 씩 공유하는지 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이 시집에 있는 거의 모든 시들이 <인문 일기>에서 소개하였음을 확인했다. "여기에 당신이 모르는 시는 없다. 다만 잊고 사는 시일 뿐. 당신이 지금 외롭고 고단한 것은 시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모서리가 없어서/최하연

1.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식탁에 올려놓고
얼음물을 붓는다
산봉우리에서 구름이 사라지고
가문비나무와 졸참나무 사이에
바람이 머무는 동안
한 모금 마시고
또 물을 붓는다
오후의 햇살이 식탁을 가로지르자
갈색도 아니고 분홍은 더욱더 아닌
서재가 가라앉는다
달력의 숫자 하나가
머리부터 흠뻑 젖는다
폴리에틸렌 프탈레이트 투명 컵 안으로
前.後.左.右.上.下.어제.그제.그리고.太初가
수면 아래
꼭꼭 숨어 있다
이제 또 물을 부으면

2.
흰 구름 아래, 하얀 날개
백로 한 쌍이 무논 위를 저벅저벅 걷다가
아가의 속살처럼 날아오른다
봄 가고 여름이면
언제까지가 꽃이고
어디서부터가 열매일까
그 경계로 물이 차오르고
그 다음은 푸른 적막이어서
벼는 여름 햇살에 익고
소금쟁이는
네 발로 수면에서 버티는 중
논이 하늘에 빠지지 않게
하늘이 논에 젖지 않게

*大方無隅(대방무우), ‘극한의 네모는 모서리가 없다’는 『노자』의 한 구절.

다시 오늘의 화두로 다시 돌아 온다. 하느님은 저주의 말과 함께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한다. 그 의미는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의식이 없는 유아기의 동물 세계에서 쫓겨나 공포로 가득한 역사의 세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하느님은 천사들에게 에덴동산의 정문을 지키게 하였다. 왜냐하면 몰래 들어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조치를 했을까? 우리의 눈에는 옹졸한 짓 같지만, 천국은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거다. 다시 말하면, 영생은 우리가 땀을 흘려 얻어야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인 것 같다. 내 수고로 내 천국을 만드는 거다.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 에서 두 번째 법칙인 '우리 자신을 마치 도와주어야 할 사람처럼 대해 주라'는 것이 이젠 더 이해가 잘 된다. 피터슨은 이 책에서 이런 질문을 했었다. 왜 아픈 강아지에게는 처방 약을 열심히 먹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까? 이젠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아담의 후손만큼이나 발가벗고 추하고 방어적이고 비판적이고 무가치하고 비열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그 존재를 애지중지 보살펴야 한다.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죄, 희망, 노동, 고통은 <창세기>의 주요 주제이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여기서 '고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최근의 정치 이야기를 좀 한다. 인문운동가의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장항준 감독이 했다는 말, 서로 분노하는 지점과 웃는 지점이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을 오늘 아침 다시 소환한다. 웃는 포인트가 같다는 건 취향이 비슷하다는 뜻이고, 분노하는 지점이 같다는 건 세계관이 통한다는 말이다.

그 세계관은 신념체계에서 나온다. 신념체계를 공유하면,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신념체계는 단순히 믿음만은 아니다. 신념체계를 다르게 말하면, 가치관이다. 그래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가치관이나 신념체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알기에 사이좋게 협력을 할 수 있고, 심지어 경쟁마저 평화롭게 할 수 있다. 공유된 신념 체계는 모든 사람을 단순한 잣대로 판단하게 만든다. 그들은 단순하다. 그들은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애를 쓴다. 이런 체계가 위협받으면 중대한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해가 간다. 진영으로 나뉘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를 말이다.

사람들은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계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람들은 혼돈의 감정을 줄이려고 신념체계가 같은 진영에서 논다. 행동은 말보다 힘이 세다. 공유된 신념 체계는 동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위와 기대의 공유 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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