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弱)"은 도의 쓰임이다.
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25일)
어제 미사에서 얻은 생각이다. 주일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며 기도하는 일은 아버지의 포도밭에서 일한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늘의 길' 속에서 일상을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제 미사의 말씀들이다. 아버지의 길과 우리의 길은 다르다. 아버지의 길은 노자가 말하는 '도'의 세계와 비슷하다. 노자는 '도'의 작동 방식을 '거꾸로 되돌아옴'과 '부드러움'으로 설명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가는 것은 돌아오고 약한 것이 쓰인다'는 거다. 그러니까 노자의 "도"는 "반(反)"과 "약(弱)"이다. 그리고 더 하나를 말하라면 '허(虛, 비움)'이다. 아버지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 8) 아버지의 길은 "꼬리가 첫째 되고, 첫 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 16) 하늘의 길이 후하다고 시기하지 말 것이다. 그게 우주의 운행 원리이다.
노자에 의하면, "반(反)"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弱)"은 도의 쓰임이다. 그리고 '허(虛)'가 있기에 생생의 기능이 있는 것이다. "반"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약"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약"의 기능은 '허'의 창조력을 의미한다. '허'가 있어야 순환이 가능해지고, "약"이 있어야 새로움이 개입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 가는 것은 "약"과 "허"의 기능이 마비되어 있다. 다 이기려고만 한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영성에 대해 사유를 했다. 이어령 교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컵 하나를 가지고 보디(몸, 육체)와 마인드(마음) 그리고 스피릿(영성)을 설명하였다. 이해가 쉽다. 컵이 육체이다, 죽음은 이 컵이 깨지는 거다. 유리 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이 내 몸이 깨지는 거다.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진다.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다. 그게 스피릿, 영성이다. 원래 컵은 비어 있다. 거기에 뜨거운 물, 차가운 물 담기는 거다.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이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스피릿, 영성이다.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이어령 교수는 컵(육체)가 깨지고, 그 안에 담긴 물(욕망 감정 등의 마인드)이 쏟아져도 컵이 생길 때 만들어진 원래의 빈 공간(영혼)은 우주에 닿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나 자주 '마인드를 비우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빈 찻잔 같은 몸으로 매일 새 빛을 받아 마시며 살라고, 비어 있는 중심인 배꼽(타인과의 연결 호스)과 카오스의 형상인 귀의 신비를 잊지 말라고 우리들 다독였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데, 우리가 무언 가에 집착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되고,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니까 걱정과 불안의 그 고통은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일 수 있다. 걱정과 불안의 고통이 회피 되어야 할 부정적인 상황이 아니라, 마주쳐 스승으로 삼아야 할 몽학선생이 되면 고통까지도 신성한 것이 된다. 당당히 고통을 마주하고, 거기에 실체가 없음을 봐야 지나간 것을 불러내 온갖 망상을 만들어내지 않고, 다가올 것에 불안해 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을 알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이다.
어제는 바람의 빛깔과 향기가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오후였다. 그런데 벌써이 9월이 다 지나간다. 가을 시 한 편을 읽고, 영성 이야기를 이어간다.
9월/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코스 들길에서는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코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사랑이 기다림에 앞서듯
기다림은 성숙에 앞서는 것,
코스모스 피어나듯 9월은
그렇게
하늘이 열리는 달이다.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문화공간뱅샾62 #9월 #오세영 #하늘의_길 #영성 #영적_휴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