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놀 줄은 알면서 쉴 줄은 모른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19일)
살면서 중요한 것이 균형이다. 그 중에서 특히 나는 긴장과 이완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너무 일들만 한다. 우리는 놀 줄은 알면서 쉴 줄은 모른다. 우리는 실제 일상에서 내려놓는 방식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주로 '일을 해 나가는' 기술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는' 방식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긴장을 푸는 방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나는 최근에 잘 사는 방법은 긴장의 양과 이완의 양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삶은 그러니까 '균형 맞추기'이다. 비슷한 양과 질로 말이다.
이완이란 긴장을 푸는 일이다. 이는 진짜 '쉬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외부 자극 없는 시간 보내기'이다. 맨발 걷기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명상도 괜찮다. 쉰다는 것은 삶을 건사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불안과 우울, 압박감 같은 감정들을 다른 자극으로 눙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직시하고 다독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지 못한다. 늘 비우려기 보다는 성취를 고민한다. 쉴 틈이 생기면 쉬는 게 아니다. 삶을 지탱하느라 들쑤셔진 마음을 다독거릴 재주가 없어 또 다른 자극을 주입한다.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대신, 정신이 쏙 빠지게 단 콜라 따위를 물려준다. 질리고 움츠러든 마음은 달콤한 흥분으로 덧씌워졌지만 그게 진정한 이완은 아니다.
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이루어진다. 각성상태가 나를 피로하게 하지만 제대로 이완하는 법을 모르기에 마취를 택한다. 예를 들어, 삶을 지탱하느라 이어지는 흥분과 불안에 지친 상태에서, 말 잔치만 이어지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두거나 아예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먹방 따위를 본다. 혹은 SNS에 접속해서 무한대로 펼쳐지는 타인들의 삶을 지문이 닳도록 문지른다. 그리고 알고리즘의 신에게 혼을 빼앗겨 무더기 같은 영혼으로 헤매다 동틀 무렵 어느 벌판에 쓰러져 잠들곤 한다. 홍인혜 시인의 솔직한 고백이다.
휴식, 진짜로 쉴 줄 아는 것은 능력이다. 그러나 잘 놀고, 잘 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거기에도 삶의 내공이 필요하다. 제대로 쉬려면, 일단 노동과 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낮의 노동이 우리에게 힘든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주는 소외와 압박 때문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소외이고, 의지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 압박이다. 그러니까 쉰다는 건 앞의 두 가지, 즉 소외와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과 쉰다고,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가족은 감정노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배설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배치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노동의 스트레스와 감정의 배설로부터 벗어나는 활동 혹은 관계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활동을 하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 소외와 압박으로 부터 벗어나는 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고미숙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지성을 중심으로 관계를 재구성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모임도 좋다고 했다. 특히 소리 내어 읽는 낭독 혹은 낭송을 추천했다. 그것이 몸을 이완시키는 데 최고라고 했다. 나의 경우는, 소프라노한테 배운 노래를 내 방식대로 큰 소리로 부르며, 가창력이 향상되는 기쁨을 느끼고,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 늘어나는 기쁨이 나를 몸과 정신으로부터 이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 나는 근처의 초등학교 동틀 무렵에 나가 맨발 걷기를 한 후, 발을 씻고 신발을 신은 후 다시 운동장을 뛰거나 걸으면서, 배운 노래를 들으며 소리 내어 따라 부른다.
몇 일전, 최진석 교수는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으로만 삶을 채울 필요 없다"고 한 칼럼에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제안했다.
- 우선 자신 안에 감동을 받아들일 길을 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쓰자.
- 시를 읽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지 말자.
- 자신을 향해 반성하고 질책하는 대신에 조근조근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궁금해하자.
그것은 "논변을 피한 채 이야기를 하자는 말"과 "이야기를 치우고 시를 읽자는 말"이 아니라, '논변할 때도 이야기하는 심성으로 하고, 이야기할 때도 시적 감동을 품고서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정치도 학문도 예술도 반도체도 기술도 더 나아진다"는 거다. 왜냐하면 논문이 없이는 문명이 서질 못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을 차지하고, 시적 감동으로 떠는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걸 최 교수는 "지적 진동"이라 했다. 훈련된 지성이 시적 충격을 받으면, 어떤 부귀영화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만의 질서를 창조해내며, 그 길을 미련하게 걷게 되기 때문이라는 거다. 감동은 지적 진동이며, 가장 센 마약이라는 거다.
요즈음 나는 그런 '감동이 있는 배치'로 내 삶을 보내고 싶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래 어제는 맨발 걷기 장소를 바꾸었다. 정말 원하던 장소였다. 오늘 아침 사진이 그곳이다. 이곳에서 실컷 "지구 신발"을 신고 놀았다.
지구 신발/함민복
너 지구 신발 신어 봤니?
맨발로 뻘에 한번 들어가 봐
말랑말랑한 뻘이 간질간질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금방 발에 딱 맞는
신발 한 켤레가 된다
그게 지구 신발이야
지구 신발은
까칠까칠 칠게 발에도
낭창낭창 도요새 발에도
보들보들 아이들 발에도
우락부락 어른들 발에도
다 딱 맞아
지구 신발 한번 꼭 신어보렴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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