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건강과 장수(長壽)는 좋은 삶을 위한 수단일 때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9. 09:30

345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18일)

1
친절은 나약함이라고 착각한다. '너무 친절하면 만만해 보이지 않을까?', '친절은 약자의 쉬운 선택이 아닐까?'  우리 생각과 달리 친절은 나약하지도 쉽지도 않다. '진짜' 친절은 상대를 존중하고, 때론 불편한 진실까지 품위 있게 말할 수 있는 강한 힘이다. '진짜' 친절은 사람들의 신롸와 존중을 이끌어내고, 갈등을 줄이며 협력하기 쉽게 만든다. 그런 친절은 다음과 같이 3 가지가 이루어지게 하는 힘이다.
▪ 관계를 살리고, 
▪ 신뢰를 쌓으며, 
▪ 가장 힘든 순간에는 상대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다.

친절은 따뜻한 태도이다. 그 속에서 상대는 존중 받았음을 느낀다. 친절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상대의 존엄을 지켜주고, 상처를 최소화하는 강한 힘이다. 진짜 힘은 '강함'이 아니라 따뜻한 '친절'에서 나온다. 오바마 여사는 “상대에게 화가 난 상황에서도 ‘나는 지금 당신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지만 여전히 당신을 존중한다’ ‘당신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신은 친절하고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자주 그녀의 말을 기억한다. 

인문학자와 인문 운동가는 다르다. 인문학자가 과학자라면, 인문 운동가는 공학이고 기술이다. 인문학이 이론이라면, 인문 정신은 일상에서 구현되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면 인문학자이고, 사랑이라는 말이 생활에서 구현되어 친절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문 운동가이다.

2
'힘' 이야기 나오니, 몇 가지 생각을 소환한다. '힘'이란 말의 영어는 두 가지가 있다.  '포스(force)'와 '파워(power)'. 프랑스어로는 'la force'와 'le pouvoir'라고 한다. '포스'가 '명함의 힘'이고, '파워'가 '발가벗은 힘'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어의 le pouvoir는  명사형으로 '힘, 능력, 역량'을 뜻하지만, 동사 쓰일 때 pouvoir는 영어의 can처럼 조동사로 쓰인다. '~을 할 수 있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 명사형, le pouvoir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이 된다. 이게 '발가벗은 힘'이 아닐까? 저자는 박창수의 <<임파워링하라>> 에서 포스와 파워를 이렇게 구분한다고 소개하였다. 포스는 외부의 힘과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물리적인 힘이라면, 파워는 자기 자신이 영향을 주는 힘이며,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는 포스가 아니라, 파워가 필요하다.

노자 <<도덕경>> 제 3장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워주며, 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주고, 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虛基心, 實基腹, 弱基志, 强機骨,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여기서, 비우고 약화시켜야 할 마음과 의지는 이미 설정되어 있는 가치 체계라는 그물망을 통과하여 외부로 향하고 있는 것들이다. 반면에 아직 인위적 가치의 지배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의 상징으로서의 배와 뼈대는 채우고 강화시켜야 한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세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는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自勝者强(자승자강)"을 말하면서, 유력(有力)과 강(强)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나와 분리된 객체로서 타인을 이기는 것은 '유력'이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강'이라 한다. 타인을 통제하는 힘인 권력은 '유력(force)'의 범주에 해당되고, 마음의 갈등을 스스로 다스리고 조절하는 힘은 '강', power(le pouvoir)에 해당된다.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참나무>처럼, 이 더운 여름에 "발가벗은 힘'을 기르고 있다.  "발가벗은 힘"이란 외부의 힘, 명함, 학력 그리고 가족 등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야생(野生)에서 자신 있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힘을 말한다. 노자가 말하는 "自勝者强(자승자강)", 자신을 이기는 사람의 힘이 이 '발가벗은 힘'이 아닐까?


참나무/알프레드 테니슨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그리고, 그러고 나서
가을이 오면 다시
더욱 더 맑은
황금빛이 되고
마침내 잎사귀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 되어 선
저 발가벗은 힘을


3
건강한 삶과 건강한 인생은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대부분 오래 살기를 바란다. 활력 있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어떻게든지 죽음을 미루고 싶어한다. 이에 부응해 요즘 서점엔 천천히 늙고, 늦추어 나이 드는 법을 다룬 책들이 넘쳐난다. <<저속 노화 식사법>>. <<노화의 종말>> 같은 책들이 말하는 건 사실 비슷하다. 통 곡물 위주로 가려 먹고, 비만하지 않게 줄여 먹고, 자주 땀 흘려 운동하라. 그런데 노화와 죽음에 대한 영웅적 승리로 귀결되는 의학의 서사와 달리, 문학은 단순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삶이 나날이 나아진다는 기분,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함께 더 나은 공동체를 이룩하는 느낌, 살아 숨 쉬는 동안 더 강렬하고 의미 있는 현재를 보내겠다는 의지 없이 불로불사(不老不死)는 아무것도 아니다. 건강과 장수(長壽)는 좋은 삶을 위한 수단일 때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 활력 있게 오래 사는 법만큼이나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자주 물을 때 삶은 빛을 발한다. 

<<부서지기 쉬운 삶>>(돌베개 펴냄)에서 토드 메이 미국 클렘슨대 교수는 세 편의 작품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장은수의 칼럼을 보고 갈무리한 것이다.
▪ 첫 번째는 이오네스코의 <<새로운 세입자>>이다. 이 작품엔 런던 아파트로 이사하는 남자가 나온다. 짐꾼들이 하나씩 물건을 부리면서 남자의 새집은 점차 아수라장이 된다. 포개진 짐들로 결국 남자는 설 자리조차 잃는다. 산다는 건 이처럼 막대한 짐들을 우리 뒤에 남긴다. 그 중엔 추억이나 성취도 있지만 후회와 상처도 넘친다. 따라서 과거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날이 새롭고 즐거운 삶을 이룩하는 법을 모른다면, 장수는 갈수록 더 많은 무게를 짊어지는 고통을 견디는 일에 가까워진다.
▪ 두 번째는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이다. 이 작품엔 '스트럴드브럭'이라는 불사의 존재들이 나온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 받았으나, 계속 나이가 들어간다. 온몸이 쭈글쭈글해지고, 쇠약 해져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최소한의 식량과 지원만 제공받은 채 사회로부터 내쫓긴다. 적절한 사회적 역할을 찾지 못하는 장수는 비참함의 지속일 뿐이다. 
▪ 세 번째는 보르헤스의 <<죽지 않는 사람>>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불사의 존재는 죽지도, 늙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삶 역시 암울하다. 절박함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까닭이다. 1만년간 친구와 사귀고 연인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건 공허할 뿐이다. 언제든 해볼 수 있는데, 지금 당장 그걸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보르헤스는 말한다. "유한한 인간 사이에서는 모든 게 돌이킬 수 없음과 위태로움이라는 가치를 얻는다." 

4
그리스 로마 신회에서도 마냥 오래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화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여인으로 시빌레(Sibyl)가 나온다. 그녀는 신화에서 무녀(巫女)를 총칭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었다. 시빌레가 젊고 아름다울 무렵, 아폴론은 그녀에게 구애하며 약속했다. "내 사랑을 받아준다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소." 시빌레는 손에 한 움큼의 모래를 쥐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이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주세요."

영원히 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지만 아폴론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시빌레가 깜빡 잊고 놓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젊음이었다. 모래알의 수만큼 오래 살게 해 달라고는 했지만, 젊은 모습 그대로 살게 해달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시빌레는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음이 변하여 더 이상 아폴론을 사랑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그녀에게 약속한 대로 모래알만큼의 수명을 주었다. 그런데 늙도록 내버려 두었다. 시빌레는 결국 늙고 지친 몸으로 무수히 많은 세월을 살아야 했다. 700년도 넘게 살고 나니 시빌레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제발 나를 죽게 해주세요." 

늙어서 몸이 점점 줄어든 시빌레는 나무 구멍 속에 넣어져 매달려 있었다. 오직 죽고 싶다는 소원 하나를 마음에 품고서. 시빌레는 영원히 살았으나 영원히 살았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었다. 제발 죽게 해달라는 소원 하나만 품고 살아야 했던 그녀가 우리에게 전해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축복처럼 받아들이라고. 죽음이 있기에 주어진 생이 소중한 것이라고. 

우린 인생이 너무 짧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짧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이 속절없이 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뜨겁던 그 사랑이 쓸쓸히 식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그래서 소중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5
오늘의 말씀을 대면할 시간이다. <루카 복음> 7,36-50: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이다.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벗이여 내게 오소서/상지종 신부님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루카 7,36ㄱ)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삶이
나의 삶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희망이
나의 희망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사랑이
나의 사랑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눈길이
나의 눈길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손길이
나의 손길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발길이
나의 발길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살림이
나의 살림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당신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오니

벗이여
내게 오소서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