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초조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2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16일)
몇 일동안 놓았던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으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도덕경>> 제 48장).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 '도'로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고 싶다. 그러면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을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리고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급증을 덜어내고 싶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중하며 일상을 행복하게 향유하고 싶다.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시작된 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사회생활에서도 이어지고 지금껏 우리들의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가능성이 십분 발현되기도 하고 발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경쟁을 통한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사회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릴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국민의식을 조사한 자료를 살펴보면 행복하기 위해 거창한 무언 가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남 보란 듯이' 살지도 않는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전체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한다. 남보다 빨리 갈 필요도 없다. 조금 느릴지라도 꿈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삶, 경쟁에 밀릴까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남을 밟지 않아도 되는 삶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나는 한계가 아닌 가능성을 늘 믿는다. 나는 리더가 되려고 하기보다, 함께 더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는 일을 하고 싶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다. 그러면서 이해인 수녀님 처럼, 결심을 한다.
어떤 결심/이해인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 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한 순간 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노자 <<도덕경>>을 다시 꺼냈다. 제37장을 읽으며, 다시 결심한다. 억지로 강요하지 말고(無爲),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無名), 욕망을 조절하고(無欲), 소박함(樸)과 고용함(靜)으로 다가가면, 세상은 저절로 안정(자정)되고 변화되어 저절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도덕경>>에서 배운 거다, 그러니 너무 초조해 하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검소함과 소박함이다. 그것 만이 우리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고, 초심을 잃지 않게 한다. 동시에 그러면 세상은 저절로 안정되고, 내 삶도 잘 굴러간다. 사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벌거벗은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은 비록 여러 가지를 소유했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靜)을 찾는 것이 지금의 상태를 지속하기 위한 실천이 되는 거다. 그것이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원리이다. 강요하지 않고, 저절로 되게 하는 길이다.
좀 더 길지만, 원문을 읽으시려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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