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정신은 세끼 먹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거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9월 18일)
어제는 <우리마을대학> 토요학교 하반기 강의가 재개되었다. 내가 제일 먼저 <와인 인문학> 강의를 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각 세대별 부부 3팀이 참여했던 거다. 거기다 나와 같은 나이의 단독자, 즉 열심히 공부하고 사유하는 도반 그리고 별 생각이 없는지 전혀 자기 말을 하지 않는 총각 직장인 등이 구성원이었다. 와인을 매개로 역사, 철학 그리고 인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했다.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이런 플랫폼이 '대학'의 역할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 그래 <우리마을대학>이 그 역할을 하고 싶은 거다.
사람들은 지적하지 않지만, 최근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특히 한국의 문화 위상이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인문(人文) 전통이라 본다. 특리 조선의 인문적 전통이 이제 꽃을 피우는 것 같다.여기서 말하는 인문은 언어, 역사, 문학, 철학, 종교 등의 세계를 말한다. 이 세계가 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인문 정신은 세끼 먹는 것을 뛰어넘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을 하는 거다. 인간과 짐승은 다르다. 짐승은 감각과 본능적인 충동 반응이라 할 수 있는 운동의 결합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면, 인간은 지각과 충동을 제어하는 행동의 관계로 삶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고양이 배부르면 졸고 있지만, 인간은 졸려도 새로운 지각을 창문을 열고 생각한다.
- 동물과 하등 차이가 없는 인류가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킨 문명을 구축한 것은 '생각하는 힘'에서 나오는 지각 능력과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 힘은 종교의 천재들 또한 철학자들이 키워준 거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돌파하여 고단한 우리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하는 힘’에 의해서다. 그 '생각하는 힘'이 감각의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지각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 인문학은 무한과 영원을 향한 영혼의 등대로 '희망의 학문'이다. 벌거벗은 몸을 거울에 비추어보라. 볼록한 배, 가는 다리, 퀭한 눈동자. 생물학적인 존재로서는 어느 것 하나도 볼품이 없다. 그러나 소멸해가는 존재일지라도 자신만의 왕국임을 자부하며 자기완성의 길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인문학이다. 먼지에 불과한 존재일지 언정 천지와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고 바라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세계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이유는 인문 정신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웃의 고통을 내면 화하지 못하는 불치의 병이 전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의 파고 속으로 밀어 넣는데 어떻게 이웃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인문학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은 없다. 전쟁은 국가와 자본이 공모한 학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는 마음의 힘이 욕망에 막혔기 때문이다.
-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의 인문학이 피폐해진다면 인간은 언젠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인문학의 죽음은 인류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관계의 망을 따뜻하게 보살피며, 과학과 기술의 한계를 직시하고, 부조리와 야만을 재판하며, 자본의 자기 파멸적 행위를 멈추게 하는 인문학이 때문이다.
최근 우리 대학은 인문학과들을 폐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한 대학은 사라지고 있다. 대학(大學)을 말 그대로 하면 '대인의 학'이다. 따라서 대학은 인간 최고의 덕성을 구비한 성인(聖人)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 거기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운명을 개척할 준비를 하는 곳이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이 연대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묻고 대답하며, 자신을 집어삼키는 업력의 거센 파도를 타고 넘는 지혜와 용기를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 지식의 수도자들이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탐구하며,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곳이어야 한다. 대학은 오직 누구나 참여하는 마을장터처럼, 사회적 위치나 나이를 떠나 삶의 탐구자로서 의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회사원도 농부도 교사도, 삶의 절벽을 마주한 자도 누구든 자신의 문제를 꺼내 이웃에게 조언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자본은 자율적인 인간의 의지를 노예화하고 있다. 대학은 인간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비판의 힘으로 이 사회는 나아간다. 그 엔진은 세상을 직시한 눈들을 광장으로 이끈 인문 정신이다. 그것이 없는 대학은 ‘팥소 없는 찐빵'과 같다. 자본의 폭주를 견제하고 현대문명을 성찰하는 공동체가 없는 대학은 존립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기업의 전쟁터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현실에 저항할 주력부대가 소멸되는 거다. 그래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문 일지>를 쓰는 거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다. 국가는 대학까지도 무상으로 모든 백성이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책무가 있다. 인류의 지혜를 보존하고 나누며 활용하는 플랫폼으로써 무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에는 기대하지 않는다. 현 대통령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인재 공급"이라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인문의 요람인 대학이 기업의 하청기지임을 재 승인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현철(賢哲)들이 없었다면 무명(無明)에 헤매는 인류의 앞길을 어떻게 밝혀왔겠는 가? 종교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인문학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간이 중도의 길을 걸어왔겠는 가? 원익선 교무·원광대 평화연구소장의 <죽은 인문학의 사회>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어제 <우리마을대학> 토요학교를 개강하면서, 갖은 생각이 또 하나 있다. 마을이 살아야 한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한 말이다. "근대 혁명이 ‘국가’를 형성했다면 21세기 혁명은 ‘마을'이다." 그의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이 갈무리 했다.
통계청에 의하면, 65세 이상 인구가 2024년에 1000만명을 넘는다. 이후에도 가파르게 증가하여 생산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온다는 거다. 그때 나도 초고령 노인일 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실 노후 불안은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노인빈곤율은 늘 세계 1위이다. 가난하면 삶 자체가 움츠러든다. 어디 외출하기도 어렵고, 몇 천원의 병원비도 부담이다. 어르신 사이 교류도 한정된다. 우리 마을 단지마다 있는 경로당에도 매주 두세 번의 식사 제공 시간에만 어르신들이 주로 모인다. 노인이 늘고 있다는데 정작 지역 일상 공간에서는 소수이다. 미래가 불안하면 현재도 행복하기 어렵다. 노인의 삶이 이리 힘든데 미래 노인인 청년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고령자 소득을 위하여 ‘연성 일자리’ 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직 우리마을대학은 거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연성 일자리'는 행정이 위로부터 설계하는 노인일자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아래로부터 짜가는 사회적 역할망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생산력이면 점차 노동시간을 줄여, 오후에는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서 어울려야 한다. 지역에 주민들이 모이면 돌봄, 문화, 체육, 평생교육, 도시재생 등 새로운 역할들이 생길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경성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협동하는 참여 일자리이다.
그리고 급한 것이 요양 돌봄을 완전 재설계하여야 한다. 지금의 소규모 상업적 체제를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적 요양 돌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므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임종기 인프라도 절실하다. 연성 일자리와 사회적 돌봄, 금세 달성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담대한 의지로 차곡차곡 추진해야 한다.
오늘 시처럼, 알 수 없다. 그래도 생각하고, 외쳐야 한다.
알 수 없어요/황인숙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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