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드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344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11일)
1
우리는 방심하면 내 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만든다. 내가 만드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니면, 남이 만든 시간에 나를 소비하게 된다.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에는 세 가지 걸음이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 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달아나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듯이, 폭염이 내리쬐다가 또 비가 쏟아지고, 다시 폭염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가을이 다가온다. 절정에 가면 모든 것은 내리막길을 가기 마련이다. 느리게, 그리고 주저하면서 다가오는 것 같지만, 미래는 현재가 되는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다. 하루하루는 지루한데 일주일은 금방 흩어지고, 한 달이나 일 년은 쏜살같이 날아가고 없다. 우리 만난 지가 언제 였더라 하며 악수하다 보면 못 본지 10년, 강산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해 한때의 친구가 서먹서먹한 타인이 되어 있다.
2
승자는 패자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고, 패자는 승자보다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고 말한다. 승자의 하루는 25시간이고 패자의 하루는 23시간 밖에 안된다. 이런 말도 시간은 매우 자의적이다. 승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패자는 시간에 끌려 가며 산다는 데 인생에서 패자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인생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린 그저 무엇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그 경험이 다할 때 세상을 떠날 뿐이다.
적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아직도 다 하지 못한 어떤 경험이 내 인생에 남아 있을까? 다가오는 미래를 다 알 수야 없지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시간에 끌려 다니며 살지 말고, 시간을 부리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건,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그것을 정말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없다는 거다.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나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하지만 시간은 내는 것이기도 해서,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냈다가, 힘들게 비웠던 그 시간이 가득 채워졌던 경험은 행복하다. 행복의 비밀은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 순간을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다.
"나의 9월은" 내 영혼의 근육을 더 키워,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포기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반항하며 일상을 사막에서 버티는 것처럼 견딜 생각이다. 까뮈는 말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침 사진은 높아진 하늘을 감히 올려 보고 대낮에 찍은 것이다. 저 구름을 타고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수없이 주어지는 일상을 문제들이 순방향으로 풀리고 풀어간다. 오늘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문제는 내가 결정할 것들이 아니고, 다른 이의 손에 달렸다는 점이다. 되는 대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나의 9월은/서정윤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
하늘로만 뻗어가고
반백의 노을을 보며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깊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아직 지쳐
쓰러지지 못하는 9월
이제는
잊으며 살아야 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정리하며
오랜 바램
알알이 영글어
뒤돌아보아도 보기 좋은 계절까지
내 영혼 어떤 모습으로 영그나?
순간 변하는
조화롭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늘 열매를 달고
보듬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3
<<콰이어트>>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전 케인은 인문적인 삶을 살려면, 우리는 하는 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더 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좌절하지 말고, 시간을 내어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이다. 삶에는 두 가지가 있다. 원하는 삶과 감수하는 삶. 한번 뿐인 인생을 그저 감수나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고 걸으면서 숙고해라. 그러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탁월한 결과를 얻는 지혜도 그 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수전 캐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글을 잘 쓰는 데는 재능과 작문 기술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누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생각과 철학을 문장 들 속에 풀어 놓을 수 있다. 시간이 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편집자이다." 탁월한 결과를 얻으려면 결과에 상관 없이 우리는 시간에 투자를 해야 한다. 간단한 지혜인데, 우리는 그걸 잘 잊는다. 그러면서 늘 초초해 하고 조급해 한다. 나는 그런 경우에 다음 기도를 바친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 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니버의 기도>이다. 이걸 한문으로 하면 다음과 같이 세 자로 요약할 수 있다. 정(靜), 용(勇), 지(智). 여기서 차분함은 '조급해 하지 않음' 이다.
공자도 조급함을 경계했다. 성인은 하루 종일 움직여도 '무거움'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리더는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다.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신중하고, 자중하는 길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다. 절제는 할 수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참는 것이다. 고대에 군주가 궁궐 밖으로 행차를 할 때는 항상 군주가 탄 수레의 뒤에 '치중(輜重)'이라는 무거운 짐수레를 달고 다녔다고 한다. 군주는 항상 신중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고 고요한 것은 조급한 것의 임금이다." "가벼우면 근본을 상실하고 조급하면 임금 자리를 잃는다." 자중한다는 것은 지구의 중력과 함께 하며, 우주의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나는 고병권 작가의 다음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또한 철학이라고, 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 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 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 하지 않는 것이다."
철학, 즉 인문학은 삶의 정신적 우회라는 말이 멋지다. 삶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말이라고 본다. 이 세 표현이 잘 말해준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다 시간의 문제이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떤 일 앞에서 초조해 하고 조급해 한다.
그리고 수전 케인은 인생을 수입의 시간과 지출의 시간으로 나누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지출의 시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을 기댈 수 있는 '재정적 쿠션'을 만드는 일이"라고 그녀는 충고한다. 수입이 있어야 창조적인 삶을 꿈꾸고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인간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배운다는 태도를 갖는다면 한결 수입의 시기를 견디기가 쉬울 것이다. 위험한 것은 수입도 아니고, 지출도 아닌 모호한 삶을 계속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머지는 시간에 맡기라고 한다. 시간이야 말로 우리에게 더 나은 삶, 더 창의적인 결과를 선물하는 지혜로운 코치라는 것이다.
4
기꺼이 주는 선물이 세상을 바꾼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돈을 치러 망설이던 물건을 사거나, 가고 싶던 여행지를 다녀왔을 때 쓴다. 따뜻하지만 안쓰러운 말이다. 나한테 축복 되지 못하는 세상, 짓밟고 뿌리치는 경쟁만 있을 뿐 누구도 선물을 주지 않는 관계, 끝없이 쏟아지는 일에 시달리다 외로이 널브러지는 날들…. 그 막막함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려고 자신에게 기쁨을 선물하려는 발버둥을 응원한다. 그러나 위로가 삶을 바꾸진 못한다. 우리에겐 다른 선물이 필요하다.
일본 철학자 다케우치 유타의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다다서재 펴냄)가 요즘 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크게 입소문이 났다. 좋다는 이야기만으로 출간 한 달 만에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에서 다케우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선물은 본래 누군가가 주어야 존재하기에 '내돈내산'이 불가능한 까닭이다.
선물은 증여의 다른 이름이다. 같은 장미라도 남에게 받은 순간 "이 세계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변모"한다. 이것이 선물의 마법이다. 증여라는 맥락이 생길 때, 즉 누군가 거저 주었을 때만 주변의 흔한 물건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소중한 선물로 변한다. 그래서 선물은 어떤 경우에도 돈으로 살 수 없다.
'대가 없는 선물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다. 보답을 바라고만 사귀고, 대가를 주고받아야만 사랑하기에, 그에겐 내줄 게 없어도 만날 사람도,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관계도 불가능하다. 다케우치에 따르면 대가를 바라는 선물은 저주가 된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관계는 비즈니스로, 선물은 거래로 변질된다.
가령 부모가 아이한테 "너, 왜 공부 안 하니? 네 학원비, 누가 내주는 줄 알아?"라고 하는 순간, 선물 같던 돌봄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으로 바뀐다. 서로 대가를 치러야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된다면, 가정과 회사가 다를 바 없다. 부모가 모든 걸 내주고도 모르는 체할 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이가 가없는 그 마음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사랑을 전할 때만 돌봄은 선물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베풂엔 주는 이의 윤리와 받는 이의 상상력·지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환과 거래는 합리적이지만 세상을 삭막하게 하고, 사랑과 증여는 불합리하나 세상을 인간답게 바꾼다.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걸 우리에게 남긴다. 애정을 다해 친구를 사귀고,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이렇게 주고받는 선물로 가득한 사회가 우리를 살 만하게 바꾼다.
5
일주일 한 번 씩 복사를 한다. 가톨릭 복사(服事, Altar server)는 미사 집전 신부님을 도와 미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제대 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 일의 시작은 제단의 초에 불을 켜는 일부터 이다. 그때마다 한 자루의 초를 생각한다. 초의 사명은 자신의 몸을 태워서 빛을 내는 거다. 불붙지 않은 매끈한 초로 100년을 보존한다고 한들 의미가 없다. 어둠을 밝히고 생명을 살리면서 한 자루의 초와 같이 사는 것이 올바른 인생이고, 예수가 앞서 보여주고 우리들에게 따르라고 한 삶이 아닐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가 최근 방한해 여러 매체에서 자신의 인생 철학을 이야기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인 그는 자신이 세운 재단을 통해 2045년까지 재산의 99%를 기부하고 재단을 해산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 했다. 그의 재산 규모는 150조원에 달하는데 제3세계 지역의 말라리아나 홍역을 퇴치하고 영양실조를 해결해 아동 사망률을 낮추는 데 사용되고 있는 거다. 부자로 성공한 것도 대단하지만 모든 재산을 생명 살리는 일에 사용하겠다는 결단은 더욱 놀라워 보인다.
이제는 말씀을 대면하는 시간이다. 오늘 말씀은 루가복음 6장 20-26이다. 역설이다. 지금 행복하거나 부자이거나 배부르면, 이미 위로를 받은 것이다. 반대로 가난하거나 굶주리는 자, 지금 불행한 자는 나중에 하늘이 반드시 상을 줄 것이다. 이게 자연의 이치이고, 우주의 원칙이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나와 너, 너와 나/상지종 신부님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네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네가 있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있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게 있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를 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를 보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보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보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와 함께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와 함께하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홀로 있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함께하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에게 열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를 품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닫힌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품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를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를 믿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믿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믿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를 바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를 바라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바라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바라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사랑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네가 사랑하는
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