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동아시아적 사유에서 혼돈과 질서는 음과 양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6. 09:16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15일)

지금 나는 삶의 귀감이 되는 법칙이라 기 보다는 규칙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 제목은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이다. 추석 연휴 때까지 계속 이 책을 읽으며, 삶을 되돌아 볼 생각이다. 저자는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가에 대한 주제보다는,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주제를 주로 다루었다. 저자는 우리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혼돈과 질서라고 생각했다.

질서(cosmos)의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므로 예측할 수 있고 협력적이다. 질서는 사회 구조가 잘 갖춰진 세계이고, 이미 탐험이 끝난 구역이자 친숙한 공간이다. 질서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그려진다. 질서는 현명한 왕과 폭군이 영원히 공존하는 상태다.

반면 혼돈(chaos)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혼돈은 무척 사소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혼돈은 재앙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혼돈은 주로 여성적인 상징이나 상상으로 표현된다. 혼돈은 흔하고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새롭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혼돈은 창조인 동시에 파괴이며, 새로운 것의 근원이자 죽은 것을 종착역이다.

동아시아적 사유에서 혼돈과 질서는 음과 양이다. "음정양동(陰靜陽動)"이라는 말이 있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에서 배운 거다. 한형조 교수님의 좋은 독해가 마음에 들었다. 인문학의 핵심은 나는 어디서 와서, 지금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일이다. <성학십도>의 제1도는 태극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태극도에서 우주의 중심을 태극이라 한다.  그러나 그 중심을 무극이라고도 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매이지 않는다. 이 중심의 활동으로부터 우주가 시작된다. 이 것에서부터 온갖 생명이 태어나고, 계절과 사건이 시작된다. 이것은 일종의 의지로서 물질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몇 가지를 공유한다.

(1) 태극의 중심을 '이(理)'라 한다. 물질은 음양이 시작되면서 나오고 이를 기(氣, 에너지)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둘이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2) 태극의 발동으로 음정양동이 이루어진다. 이 말은 태극이 움직여 양이 되고, 정지하여 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연은 서로 맞서는 두 성질의 분화와 교대, 대치와 협력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과 양의 동적 긴장이 자연의 크고 작은 변화를 낳는다. 변화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반드시 음양은 자신의 극점에서 반전, 회귀하고, 고유의 사이클을 갖게 된다.

(3) 동양철학의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을 보면, 우주에 상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극도 존재하고, 상극이 없으면 이 우주의 원활한 운행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오행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이다. 목은 화를 낳고 화는 토를 낳으며, 토는 금을 낳고 금은 수를 낳는다. 이에 반해 목은 토를 극(極)하고 토는 수를 극하며, 수는 화를 극하고, 화는 금을 극한다. 이러한 관계를 상극관계라고 한다. 우주에는 상생관계만 있어도 안 되고, 상극관계만 있어도 안 된다.

(4)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40장): 도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5) 음양의 2차 분화로 오행이 일어난다. 오행은 일정한 질서 속에 있다. 스피노자처럼 유교는 자연의 내재적 필연성이 곧 신이라고 생각한다.

(6) 그 다음은 건도성남(乾道成男), 곤도성녀(坤道成女)라고 말한다. 자연의 활동적 힘(하늘의 강건)은 수컷을 만들고, 수용적 자세(땅의 수용)는 암컷을 만들었다. 여기서 수많은 생명이 면면히 재생산을 거듭한다. 양성은 기의 변화의 결과이다. 인간 또한 남녀 양성을 통해 재생산 된다.

(7) 만물화생(萬物化生): 이제 분화된 각각의 암수를 통해 가족을 이루고, 세대를 전승하며, 종족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이는 "흡사 맷돌 속에서 곡식 가루가 흘러나오는" 것과 같다. 맷돌의 가루처럼, 생명에는 치우친 것과 바른 것, 정밀한 것과 조악한 것이 있다.

(8) 종합적으로 각일기성 이만물일태극야(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 각각의 생명들은 나름의 생물학적 특성을 보인다. 양은 결합(合)하고, 음은 변형(變)된다. 이를 통해 물, 불, 나무, 쇠, 흙(수, 화, 목, 금, 토), 즉 오행이 생겨난다.

이게 '태극도'이다. 또는 '태극도설'이라고도 한다. 피타슨은 이 그림을 보고, 혼돈과 질서를 음과 양으로 보고, 머리와꼬리가 맞물린 두 마리의 뱀으로 묘사했다. 혼돈은 검은 색 암컷 뱀이고, 흰색 바탕 안의 검은 점이나, 검은 바탕의 흰 점은 변화 가능성을 뜻한다. '음정양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위에서 이미 말했던 것처럼, 태극이 움직여 양이 되고, 정지하여 음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연은 서로 맞서는 두 성질의 분화와 교대, 대치와 협력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과 양의 동적 긴장이 자연의 크고 작은 변화를 낳는다. 변화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반드시 음양은 자신의 극점에서 반전, 회귀하고, 고유의 사이클을 갖게 된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상태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재앙의 혼돈 속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그 경계의 길에서 살아간다.  그 경계에 걷는다는 것은 삶의 길 위에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정과 변화의 경계에서 의미를 찾고, 그 중도(中道)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혼돈과 질서, 즉 음과 양의 경계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요즈음 <복합와인문화공방 뱅샾62>가 바쁘다.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이 사람이 고팠던 것 같다. 코로나-19와 이젠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을 아는 듯하다. 우주는 균형을 찾으라 한다. 왜? 오늘 시처럼,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이다. <<인생을 위한 12가지 규칙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더 깊이 공감한다.

어진 사람/백무산

어질다는 말
그 사람 참 어질어, 라는 말
그 한마디면 대충 통하던 말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사람 어진 사람이야, 그러면 대충 끄덕이던 말
집안 따질 일이며 혼처 정할 일이며 흉허물 들출 일에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말
나머진 대충 덮어도 탈이 없던 말

시장기에 내놓은 메밀묵맛 같은 사람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해도
말끝이 흐려 어눌한 듯해도
누구든 드나들수록 숭숭 바람 타는 사람
보리밥 숭늉맛 같은 사람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반쯤 열린 사립문 같은 사람
아홉이 모자라도 사람 같은 사람
아버지들 의논을 끝내던 그 말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질기만 해서 사람 노릇 못해,
그럴 때만 쓰는 말

그 규칙들을 오늘 아침 또 공유한다.
(1) 어깨와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똑바로 앉고, 서거나 걷는다.
(2) 상대를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한다.
(3) 나 자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난다.
(4)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 만 비교한다.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파하지 않는다.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한다.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택한다.
(8) 언제나 진실을 말한다.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자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0) 의견 개진을 할 때는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한다.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트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둔다.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준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위의 규칙들을 반복하며, 나의 가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가치에는 등급이 있다. 가치 체계가 없으면 누구도 적절히 행동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인식하는 행위도 어렵다. 행동과 인식은 목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데, 타당한 목표는 필연적으로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거기서 의미를 찾는다. 가치 체계, 아니 신념 체계가 없다면 목표를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 행동과 인식이 무의미 해진다.

인간은 나약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실존적 존재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인간은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인간이라는 실존적 상황에 내재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가치이다. 그래서 가치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 속에 내재되어 있는 두려움과 불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희망을 잃고 절망적인 허무주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허무주의(虛無主義)는 니힐리즘(nihilism)이라 한다. 기존의 가치 체계와 이에 근거를 둔 일체의 권위를 부인하고 음산한 'nihill(허무라는 말의 라틴어)의 심연을 직시하며 살려는 철학적 견해를 말한다. 이런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고통과 관으로 가득한 이생일지라도,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다. 그것도 재미이니 의미이니 하는 거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즐기는 거다. 우리가 정해 놓은 목표치를 올려다보며 살면 목이 빠질 것같이 아플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 현실에 발을 붙이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풍경도 둘러보고 즐거움도 찾는 게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탈출구를 찾고 싶다면 그 답을 찾는 것 자체를 목표로 두는 것도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 자체가 즐거움일 수 있다. 이상적인 자신에 대한 목표를 너무 높게 잡는 것은 머리를 하늘에 매다는 일이다. 머리를 하늘에 매달아 놓고 발을 땅에 딛지도 않으면서 왜 나는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고 좌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나의 마트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절제'. '중도', 아니 중용이 필요하다. 혼돈과 질서, 음과 양의 경계에 서서 말이다. 어느 날, 다른 사람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자공이 공자님께 물었다. 선생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어』"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 자기 절제가 곧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는 중도(中道)를 이야기하고, 그리스철학과 유학은 중용(中庸)을 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이 말은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중용』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다. '거이'는 거할 거+평범할 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백거이 시를 읽고 싶어서 <<당시(唐詩) 100수>>라는 책을 주문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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