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 개혁의 큰 그림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그 ‘보조'로 두는 것이어야 한다.

344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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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대학생도 어려워하는 수학 문제를 푸는, 최근 방영된 다큐멘터리의 ‘5세 고시반’ 아동의 모습 이야기를 들었다. 공교육의 존재감은 없어진 지 오래고, 한국적 교육 열을 비꼬는 ‘치맛바람'은 수 십 년째 진화를 거듭해 엄마들은 이제 학령기 이전의 아이까지 ‘공부 기계’로 만들며 마침내 학대와 다르지 않은 ‘5세 고시’에 이른 꼴이다. 이 병적인 현상을 놓고 대입 전형방식 다양화나 인공지능(AI) 교과서 등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이 아닌, 근본적 해법을 내놓을 교육 전문가가 절실하다. 새 정부가 할 일이 너무 많다.
나임윤경 교수의 진단은 다음과 같다. "‘노답’ 정치인들은 반국가세력으로 자유 시장경제 체제가 흔들린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할 초자본주의 사회다. 돈이면 못할 것이 없는 이곳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질은 노동을 통한 재화 생산력에 달렸기에, 한국에 사는 부모 대부분에게 교육의 주된 목표는 자녀의 ‘자본주의적 생산성’ 향상, 즉 넉넉한 소득에 있다. 그러므로 ‘출혈’이라 할 정도의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로라도 자식이 고소득자가 되어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 한다." 나는 아이가 없고, 한적한 시골에 살기에 이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도시는 치열한 가 보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돈 돈 돈'만 외치는 모습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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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야수적 자본주의가 문제이다.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대이니 협력이니 찾아 볼 수 없고,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 존재한다. 이건 정글이다. 우리 사회는 양육 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막연하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여기에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엘리트 들과의 전쟁을 덧붙인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도 가장 핫(hot)한 이유이다. 엘리트들이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이 이젠 적폐이다.
언젠가 황창연 신부님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행복을 팔아 돈을 산 나라", 즉 "기적을 이룬 대신 기쁨을 잃은 나라"로 기억이 난다. 이 제목은 한국에서 머물렀던 영국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가 쓴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를 출판사가 붙인 제목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뤄낸 엄청난 경제적 기적 뒤에 가려진 믿기 어려운 온갖 부작용과 희생을 빗댄 제목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우린 돈을 얻은 대가로 인간이 누려야 할 진짜 행복을 많이 놓쳤다.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어 풍요롭게 살게 됐지만, 삶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사는 게 돈이 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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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임윤경 교수의 또 다른 분석도 동의한다. 우리 사회의 젊은 엄마들의 의식도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나임 교수의 말을 공유한다. "[5세 고시만] 이 프로젝트에 직접 연루된 이는 주로 ‘엄마’ 이다. 한때 고소득을 꿈꾸던 직장인이었을 30~40대 여성의 절반은, 그러나 엄마가 되는 동시에 ‘구조적으로’ 회사에서 밀려나고, 그중 많은 이는 초자본주의 사회의 시민 답게 또 다른 생산성을 모색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독박 육아’에 처함으로써 오랜 기간 준비했을 연봉 소득자 트랙에서 강제적으로 내려온 이들이, 자녀교육을 통한 ‘모성적 생산성’ 트랙으로 ‘갈아타게’ 되는 것이다. 다수가 고등교육 수혜자일 30~40대의 그녀들은 높은 수준의 정보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발로 뛰는 교육부 공무원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고교학점제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다양한 혁신안을 비웃듯 ‘치맛바람’에서 훨씬 더 진화한 형태의 모성적 생산성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5세 고시'라는 이 기괴한 현상은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서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빼앗은 대가이자, 모성적 생산성의 예견된 결과일 뿐이다." 답답하다. 그래 좀 흥미로운 천양희 시인의 시를 하나 공유한다.
세상 읽기/천양희
세상을 뜻대로 읽고 싶어
가출을 출가로
불성을 성불로
유수를 수유로 읽어보다가
세상을 거꾸로 읽고 싶어
정부를 부정으로
선생을 생선으로
교육을 육교로 읽어보다가
세상을 마음대로 읽고 싶어
가능을 능가로
입산금지를 지금 산에 들어감으로 바꿔 읽어보다가
세상을 세상대로 읽고 싶어
不二를 이불로
불행을 行不로
유일을 일류로 착각하다가
삶은 삶 외에 더 읽을 것이 없어
나는 나 외에 더 읽을 것이 없어
각자를 자각으로 쓰고 말았네
실상을 상실로 쓰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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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나임 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 교육개혁의 큰 그림은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을 그 ‘보조’로 두는 것이어야 한다. 사전 작업으로는 엄마가 된 여성들이 이전과 유사한 수준의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유지하게끔 제도와 문화를 개선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자녀교육을 통한 모성적 생산성 증진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들이 교육 문제로 행복하지 않다. 그런데 현 정부는 너무 실용적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거다. 정치는 우선 국민을 행복하게 해야 하다. 그런데 새정부조직법에서 교육부 장관이 맡는 사회부총리를 없앤다는 거다. 그리고 아직도 교육부 장관의 임명이 안 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의 자격으로 노동부, 성평등가족부, 법무부 등 여러 부처와의 협력을 통해 여성의 포부와 능력이 자녀의 교육 기획에만 쓰이지 않도록 다각적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초조한 표정으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5세 ‘고시반 문 앞’이 엄마가 된 한국 여성의 생산성이 발휘될 유일한 자리라면, 사교육은 그 시작 연령을 낮춰가며 지속적으로 확장돼 결국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교육개혁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교육개혁은 이처럼 자본주의적 생산성을 포기 당한 채, 모성적 생산성으로 그들의 역할과 능력을 제한하고 전환하는 여성들의 ‘강제된’ 상황도 볼 줄 아는 교육부총리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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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육부 장관은 슈퍼맨이어야 한다. 사교육 문제 해결, 대학 서열 타파, 지역대학 활성화, 유보통합 관련 정책 역량의 구비는 물론이고 유아, 초등, 중등, 고등 교육 및 평생학습 모두에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 글로컬(glocal) 시대 및 다문화, 다원화 사회의 일상적 전개 등으로 촉발된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역량도 갖춰야 한다.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는 각 단계의 교육 내용과 방법, 목표 등에 본질적 차원의 변화와 갱신을 요구하기에, 사실 어느 한 교육 단계에 대한 안목을 지니는 일만 해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이 이 모두에 대해 준수한 역량을 갖춘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교육부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김월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의 주장에 눈길이 간다. 교육부에 초, 중, 고등 교육부터 유아교육과 돌봄, 평생학습까지 집중되는 패러다임은 이를테면 중진국에 진입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단계까지는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능동적,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한편 선진국 다움을 본격적으로 구현해야 하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갱신, 발전시켜가야 하는 때이다. 모든 교육, 학습이 교육부로 집중된 일원 체제로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합리적으로 부응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우리는 이미 국가교육위원회와 민선 교육감이라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 이를 발전적으로 활용하면, 가령 국가교육위원회를 실질적 집행기관으로 전환해 여기서 고등교육과 평생학습, 학술정책을 담당하고, 교육감이 교육 지역자치를 실질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후 교육부와 함께 유치원과 초등, 중등 교육을 대등하게 담당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각 제도적 교육 주체들이 역할을 합리적으로 분담한다면 교육부 일원 체제보다는 한층 적실 하게 교육 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미래지향적으로 대응해갈 수 있다.
새로 임명될 교육부 장관 후보의 어깨가 무겁다. 네가 알고 있는 최교진 후보는 그런 결기와 식견을 가진 선배로 알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취임 후 교육부의 재구성을 이끌자 못할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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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엄마들도 반성할 것이 있다. 지금은 "엄마 폰을 먼저 꺼야 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가 재앙, 요즘 어린이들은 불량, 불법 비디오가 재앙.’ 1990년대 대여 비디오의 시작을 알리는 경고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재앙이라고 걱정할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다.
'호환 마마'는 조선 시대에 호랑이에게 당하는 재앙(호환)과 천연두(마마)를 함께 일컫는 말로, 목숨을 위협하는 극도로 두렵고 힘든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극도의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는 재앙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두려움을 함께 표현하기 위해 '호환 마마'라는 말을 사용했다. 오늘에도 '호환 마마'는 과거의 '최악의 재앙'이라는 의미를 담아 현재의 극심한 어려움이나 두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날 때 사용된다.
서울신문 홍희경 논설위원의 칼럼을 보니, 어른들 마음속 '호환 마마'는 그대로 둔 채 아이들만 문제인 양 호들갑을 떠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실제로 폰이 문제인 아이들도 있고, 스마트폰 덕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들도 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인강도 듣고 수행평가 PPT도 만든다.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들이 없는 아이들보다 우울이나 불안이 적다는 해외 연구도 많다.
반면 엄마가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면 아이 정서는 망가진다는 거다. 폰에 중독된 부모는 무표정하며 자녀와 대화하지 않고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넘쳐 난다. 상반된 결과의 연구는 찾기 어렵다. 폰 중독 부모의 아이는 언어와 정서 발달이나 행동에 문제를 보이기 쉽다.
꼰대 같은 말인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의 젊은 엄마들이 문제이다. '남 탓'하고 싶지는 않다. 은퇴한 우리가 키운 젊은 엄마들이다. 우리 세부터 반성해야 한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