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백중'이었다.

344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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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어제 공유하고 싶었던 시를 먼저 읽는다. 올 가을을 맞아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글 판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최승자 시인의 <20년 후에, 지(芝)에게> 속 구절이 걸렸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 란다.” 새 정부를 맞아, 여러 가지 개혁이 어렵게 진행되지만, 하루하루 힘내서 이어가다 보면 아름다운 결실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조금 더 힘냈으면 좋겠다.
20년 후에, 지芝에게/최승자
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 속에서 뛰어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 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을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 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眼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 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ㅡ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 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은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2
어제는 '백중'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 중원, 망혼일, 우란분절 등으로 불리는 세시풍속이다. 이 무렵에 백 가지 곡식 종자를 갖추어 놓았다 하여 '백종'이라 했고, 상원(1월 15일)과 하원(10월 15일) 그리고 이날(중원)을 합하여 '삼원'이라는 '초제(醮祭, 도사가 여러 도교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기원하는 제례 의식)'를 지내는 도가의 세시풍속에서 '중원'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이날 불가에서 '우란분회'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어서 '우란분재'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이후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공휴일인 양력 8월 15일에 마을 단위로 농사의 수고를 위로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백중 행사를 하는 새로운 세시풍속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 채소)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 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 ‘중원’은 도가(道家)의 말로,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 한다. 1월 15일을 상원(上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7월 15일의 중원과 함께 삼원(三元)이라 하여 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망혼일’이라 하는 까닭은 이날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 · 음식 ·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薦新, 새로 지은 농산물이나 과일을 먼저 바치는 제사 의식)을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 ‘우란분절’은 불교에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 날을 중국에서 명절 화한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목련경(目連經)>>과 <<우란분경>>에 보면, 부처는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죽은 부모를 위하여 '자자(自咨, 불교의 참회의식으로 음력 7월 15일에 수행승들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불교행사)'를 끝내고 청정해진 스님들에게 밥 등의 음식과 5가지 과일, 향촉과 의복으로 공양하라고 하였다. 이는 신통력으로 자기 어머니가 아귀(餓鬼)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본 목건련(目犍連)이 어머니의 구원을 부처에게 청원하여 비롯된 것이다. 이후 불가에서는 '자자'를 끝내는 날에 '우란분재'를 올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는데, 중국에서는 양(梁)나라 무제 때 동태사(東泰寺)에서 처음으로 '우란분재'를 지냈다고 하며, 그 후 당나라 초기에 크게 성하다가 점차 민간 풍습으로 축소되었다. 오늘날 중국의 '우란분절'은 도교 행사와 습합된 것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우란분재(盂蘭盆齋)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이 '거꾸로 매달린 듯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해, 백중인 음력 7월 15일애 승려들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불교의식이다. '우란분'은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거꾸로 매달림)'를 음역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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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간 속에서도 백중이 되면 여러 행사가 있어왔다.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천신(薦新,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이나 조상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드리는 의식)'을 한 다음에 먹는 천신 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宗廟)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농가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준다.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물건도 산다. 그래서 ‘백중장’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백중장'은 장꾼들이 많고 구매가 많은 장이다. 취흥에 젖은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씨름판이 벌어지며 장터에는 흥행단이 들어와서 활기를 띠기도 한다. 이러한 백중 명절은 중부 이남지방이 성대하다. 또한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논다. 이것은 바쁜 농사를 끝내고 하는 농군의 잔치로서 이것을 ‘호미씻이’, ‘세서연(洗鋤宴)’, ‘장원례’ 등이라 한다.
경북 지역에서는 이를 가리켜 ‘풋굿’ 혹은 ‘풋구’라 하고, 호남 지역에서는 ‘질꼬내기’라 한다. 마을의 지주집에서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한해 농사의 수고를 위무하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일손을 쉬지 않고 바다에 나가 일을 더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들이 많이 잡힌다고 하며 밤에는 횃불을 들고 늦도록 해산물을 따기도 한다. 한라산에는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어 백중을 고비로 익은 오곡과 산과(山果)를 사람들이 따 가면 허전하여 샘을 내고 바람을 일으킨다고 해서 산신제를 지내는 일도 있다.
신라 때에는 백중을 기해서 삼 삼기가 시작되었다. 도성 안의 부녀자를 두 파로 나누고 공주로 하여금 각 파를 이끌어 한 달 동안 삼을 삼아 8월 가윗날에 그 성적을 심사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 한턱 내도록 하는 것이다. 백중 무렵이 되면 삼이 자라서 그 껍질을 베끼기에 알맞게 익은 때이므로 직조작업을 권장하는 뜻에서 왕녀를 주축으로 하여 집단작업인 두레삼 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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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은 차분하게 '회향(廻向)'하는 마음으로 하는 보내는 날이다. ‘회향’이란 말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은 불교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굳이 불교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자기가 닦은 공덕을 세상으로 되돌려 다른 중생들에게 널리 이익이 되게 하려는 것'이 회향의 마음이다. ‘배워서 남 주자’는 정신이다. 초등학교부터 경쟁교육에 밀어 넣어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남 주려고 배운다는 게 가당치 않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잘 생각해보자. 남 줄 수 있어서 배우는 게 좋은 거다. 우리 존재가 놓인 자리가 그렇다. 타인을 위한 기도와 나를 위한 기도가 더불어 함께 깃들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존재는 고독해진다. 병들게 된다. 내 아픔, 내 자식의 고통, 내 가족의 슬픔, 내가 당하는 불평등 외엔 관심 없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모든 존재는 서로 기대어서만 존재하게 되어 있다. 남한테 주는 게 나한테 주는 거랑 마찬가지다. 불교의 기본 정신인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이 맥락에 있다.
회향(廻向)/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 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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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수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이다. 헌데 시인은 깨달음의 지향을 논한다. 회향, 나눔이다. 결국 모든 종교의 목표는 나눔이다. 부처는 작은 공덕 하나라도 반드시 이웃과 나누라고 하셨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은 ‘회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조건 없는 베풂을 실천하면, 기쁨은 항상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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