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부지(好時不知)': '좋은 때를 알지 못한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13일)
노랗게 꽃 필 때는 눈 길 한 번 안 주더니
누렇게 익으니 너도나도 좋아하네 늙어서 사랑 받는 것은 너 밖에 없구나.
나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가는 인생이고 싶다.
'호시부지(好時不知)'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좋은 때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좋은 것만 있을 때는 내게 그것이 어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사랑할 땐 사랑의 방법을 모르고, 몰랐다.
이별할 때는 이별의 이유를 모르고 몰랐다.
생각해보면 때때로 바보처럼 산적이 참 많았다.
내가 늘 외우던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렵다'라는 말을 잊었다.
풍요의 심리와 빈곤의 심리 두 개가 있다.
풍요의 심리는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이다.
빈곤의 심리는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그리고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늘 건강할 줄 알았고,
넉넉할 땐 늘 넉넉할 줄 알았고, 빈곤의 아픔을 몰랐다.
소중한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몰랐고,
언제나 항상, 늘, 곁에 있어줄 줄 알았다.
영원히 내 것인 줄 알았던 걸 차차 잃어갈 때 뒤늦게 땅을 치며 우리는 후회한다
.
바보 우리는 좋은 때 그 가치를 모르면서 평생 바보처럼 산다는 걸 몰랐다.
눈물이 없는 눈에는 무지개가 뜨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이 시간이 최고 좋을 때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채워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멋진 삶이다.
누구나 하루를 애써서 열흘을 만들고, 한 달을 만들고, 한 해를 만든다.
인생에는 다른 샛길이 전혀 없다. 나날이 길함을 쌓는 것도, 흉함을 퇴적하는 것도 모두 이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다. 오늘을 잘 살면 된다. 왜냐하면 오늘을 채워서 어제를 없애고 내일을 이룩하는 일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을 어제에 매어둔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붙잡혀 있게 된다. 오늘을 내일에 넘겨도 별 소용없다. 희망에 부풀든, 불안에 떨든 내일 우릴 기다리는 건 오늘 뿐이다.
내 만트라가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이다.
이 만트라를 소환하면, 지치고 무기력하며 화가 나가도, 불현듯 내가 '오늘만 산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막 일어난 감정과 생각이 바뀌며 편안해 진다.
어떻게 생각과 감정을 바꾸는가?
내일이 없으니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 나를 옭아매던 어떤 한계에 갇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감정을 다시 갖게 되고,
오히려 일상의 습관을 놓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냥 게으름 피우고 싶은 마음까지 각성하게 하게 한다.
그리고 또 재미난 것은 어떤 상대가 나를 괴롭히면 내일은 내가 없을 테니 그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주어도 된다고 감정으로 바뀐다.
"오늘의 뜻을 모르고 나서부터 세상의 도가 어긋났다. 어제는 이미 지났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어떤 일을 하려 하면 오직 오늘에 있을 뿐이다." (이용휴, <<당헌일기>>
나날이 자신을 충실히 갈고 닦는 사람이어야, 날들이 단단히 모이고 겹 쌓여서 드디어 바람직한 일을 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큰 사람도 될 수 있고, 거룩한 성인도 될 수 있을 테다. 계절의 첫머리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면서 오늘의 깊은 뜻을 생각한다. 오늘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우리 중엔 밝디 밝은 이 하루를 그저 버리는 날(消日)로 여기는 사람,
▪ 헛된 날(空日)로 보내는 사람,
▪ 하늘의 도를 쫓으며 온전한 오늘(當日)로 바꾸는 사람으로 나뉜다.
생각 있는 사람의 삶은 오늘만 산다. 그리고 지금-여기에서만 산다. 이 사실을 소환하는 수준에 따라 그 강렬함의 차이가 있다. 어떤 이는 수동적으로 연기론에 따른 인연을 따르지만, 어떤 이는 적극적으로 인연을 창조하는 힘을 쓰기도 한다. 이렇듯 한 생각을 바꾸면 이런 변화가 가능해진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다만 깨달은 사람은 습관이 생겨서 아무런 망설임이나 혼돈 없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애써 마음의 에너지를 짜서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어제도 <인문 일지>에 썼던 내용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다음 세 가지이다. 즉 지혜, 아니 나란 누구인 가를 깨닫고, 이어서 절제,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이게 삶을 '잘 살 줄 아는 방법인 것 같다. 내 마음 속에, '내가 만든' 이런 원칙들이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절제로 내가 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더 배워서,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즐기고 기뻐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게 내 삶의 철학이다. 지혜, 절제 그리고 용기가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겸손이 필요하다.
실제 우리는 3 개의 손이 있다. 오른 손, 왼손 그리고 겸손
두 개의 손은 눈에 보이지만, 겸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느낀다.
겸손은
▪ 자신을 낮추고,
▪ 타인을 존중하고,
▪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이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부자가 없는 체하기 보다는 식자가 모른 체 하기가 더 어렵다.
아는 것은 입이 근질근질하여 참기가 힘들다.
하고 싶음 말을 참아야 겸손이 시작된다.
겸손의 반대에는 '만'의 4 형제가 있다.
▪ 스스로 잘났다는 자만
▪ 남을 무시하는 오만
▪ 남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교만
▪ 남에게 거들먹거리는 거만
자만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우쭐거리며] 뽐냄"이다. 그리고 오만(傲慢)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으로 정의된다. 비슷한 말로 교만(驕慢)도 있다. 이 말도 "잘난 체하며 뽐내고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이다. 또는 "거만(倨慢)하게 스스로 자랑함"이다. 여기서 '거만'은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건방진 태도"이다. 다시 건방을 찾아 보았다. 건방은 한문이 없다. 뜻은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보듯이 하는 행동이나 태도'이다. '시건방지다'란 말도 한다. '시큰둥하게 건방지다'란 말이다.
겸손하면, 살면서 적을 만들지 않는다.
옛 어른들은 말했다. 백명의 진추보다는 한 명의 적을 만들지 마라고.
겸손은 천하를 얻고 교만은 깡통을 찬다.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마음이 아름다운 자는 향기가 난다.
그리고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착함(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토브’인데 그 본래 의미는 ‘향기’다. 착함은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찾아, 그것을 인내를 가지고 지키는 행위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준에서 내가 향기가 나는가?”를 질문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선(善, 착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토브(tob)'인데, 이 말은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라는 선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인향만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좋은 매너, 선행에서 나오는 사람의 좋은 향기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선행이란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입장에서 향기로운가를 묻는 일이다.
한나 아렌트가 아돌프 하인리히의 재판을 보면서 놀란 것은 악행 자체의 논리적 완결성(치밀하게 준비해 근면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에 비하면, 그 일을 행한 자의 정신적 수준은 너무나 천박하다는 점이었다. 하인리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고 대답한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도 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의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높아야 만 한다. 세 살배기도 악행은 저지를 수 있지만, 선행을 하려면 좀더 배워야 한다.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악행이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선을 행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악을 행하는 논리는 너무나 빈약하거나 없다. 악은 그저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의 행위일 뿐이다.
'그래도'라는 섬에 가 보았나요? 미칠 듯 괴로울 때, 한 없이 슬플 때, 증오와 좌절이 온몸을 휘감을 때, 비로소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빛을 내며 나타나는 섬, 그게 '그래도'라 한다.
'그래도' 섬 곳곳에는 이런 격려 문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래도 너는 건강하잖니?'
"그래도 너에겐 가족과 친구들이 있잖니?"
"그래도 세상은 살만 하단다."
'그래도'는 자신을 다시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용서와 위로의 섬이다.
당신의 '그래도'도 안녕한가요? '그래도'에 다녀온 사람 있나요?
'그래도'에 아직까지 다녀오지 않고, '그래도'라는 섬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거운 짐 한번 안 지고 가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에 치이면서 눈물 한 번 안 흘린 사람이 있을까?
세상사에 열중해도 몸 한군데 안 아파본 사람이 있을까?
지금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짐이 있다면, 지금 마음 속에 울고 있는 눈물이 있다면, 지금 내 몸을 괴롭히는 병이 있다면 '그래도'에 다녀오와라. 세상이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세상을 느끼는 마음이 긍정으로 바뀔 겁니다.
'그래도' 섬 옆에는 '나보다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합니다. 그 섬까지 다녀오세요. '나보다도' 섬에는 우리의 천사가 있다한다. 출처를 잘 모르는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내가 갈무리했다.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메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에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가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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