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하루에도 여러 번 기대와 실망을 하며 산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11. 13:25

343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9월 3일)

1
안도현 시인은 "메꽃과 나팔꽃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팔꽃은 외국에서 들여온 꽃이지만, 메꽃은 우리나라 산천 어디에서나 스스로 자란다. 나팔꽃 잎사귀는 둥근 하트 모양이지만, 메꽃 잎사귀는 길쭉한 쟁기처럼 생겼다.

들길에서 나팔꽃과 비슷한 연분홍 꽃을 만났다면 메꽃이라고 보면 된다.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며느리를 “기름진 밭에 메꽃 같은 며느리”로 위로하는 조선시대 시조도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메꽃과 호박꽃을 들기도 했다. 키 큰 명아주 줄기를 타고 메꽃이 한 송이 불을 밝혔다. 그 존재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참으로 아득한 것이다. 무욕 무취의 세계는 메꽃을 닮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메꽃/이안
 
뒤뜰 푸섶
몇 발짝 앞의 아득한
초록을 밟고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에 핀
메꽃 한 점
건너다보다
  
문득  
저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이
  
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를 한번쯤
없는 듯 꽃 밝히기를

바래어 보는 것이다


2
하루에도 여러 번 기대와 실망을 하며 산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면 기쁘고, 기대했던 물건을 구하지 못해 실망했다 의외의 발견으로 기뻐한다. 기대를 하는 과정과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무엇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쾌락은 도파민 분출에 의해 느껴지고, 그 결과 보상회로에 자극을 줘서 다시 그 행동을 하고 싶어 지게 된다. 처음에 도파민은 원하는 결과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도파민 방출은 ‘이제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예상과 더 연관이 있었다. 도파민은 행동을 하기 직전 결과에 대한 기대로 더 크게 분출되고, 실제 예상한 결과가 일어나도 그만큼의 반응은 없었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 큰 결과를 얻었을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끼고, 기대보다 못하거나 늦게 결과가 오면 도파민 분비가 현격히 줄어 쾌감도 덜 느낀다. 그렇기에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갖고 싶다고 말했던 생일 선물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여행 가서 샀다며 전하는 작은 기념품이 더 고마운 이유다.

철학에서 '도래성(到來性)'이란 개념을 미래와 구분해 사용하는데 아직 오지 않았지만 도래할 수 있는 것, 현재를 넘어 다가오는 것이다. 열린 상태로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올 어떤 것을 의미한다. 시간의 계획성을 흔들어서 갑자기 나타나 역사적 사건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므로 미래에 대한 열린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스트레스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가 불확실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위험 요소다. 게다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면 두 배로 힘들어진다. ‘서프라이즈’가 기쁨과 두려움 양쪽에서 모두 일어 난다니, 같은 상황에 대해 정반대 판단을 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며 도래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루틴과 안정성 안에서 예측한 대로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기를 바라고 예상 범위 안에서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나는 어느 장단을 타야 하는 것일까? 재미없지만 통합적인 관점에서 봐야 할 듯하다. 기본은 안전함이 우선이다. 전체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루틴을 만들어 일상을 살아가면 위협으로 감지할 일이 적어진다. 그 위에서 이제 뜻밖의 일이 생기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없어도 그만이고, 있다면 좋다는 열린 마음으로 도래할 오늘과 내일을 맞는다. 이때 기대가 큰 만큼 결과에 대한 실망은 커질 수밖에 없으니 가급적 기대는 작을수록 좋다. 기대의 문턱이 낮을수록 뜻밖의 결과로 인식할 빈도가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연령별 삶의 만족도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나타낸다. 경제학자 하네스 슈반트의 연구를 보면 20대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10% 과대평가돼 30대에 들어서도 삶의 만족도가 낮았다. 그런데 50대가 되면 기대치는 이전보다 낮아지는 데 반해 만족도가 높아지니, 전체적 삶의 만족도가 역전돼 ‘생각보다 사는 게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늘어난다. 인생의 큰 흐름에서도 기대치를 살짝 낮추는 것만으로 만족은 커졌다. 앞날의 불확실함과 통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스트레스를 주지만, 그건 그때 가서 대응하면 된다고 보자. 대신 기대를 낮춰 소소하고 자잘한 것을 바라면 뜻밖의 즐거움을 만나기 쉬워진다. 그게 하루를 괜찮았다고 여기게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니까.

3
우리 사회는 자유인을 위한 인문학적 소양보다는 노예적 삶을 위한 기술에 관심이 많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드물다. 알량한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여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좋은 글"을 읽는다고 인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을 통해 인문 정신, 즉 인문학 근력을 배워야 한다.

그 인문학 근력을 키우려면, '열심히'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하여야 한다. 우리들의 삶의 성장을 넘어, 성공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많이 노력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것은 방법을 생각하는 훈련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거다. 그 방법은 무작정 책을 읽으면서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해 논하는 공부보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는 거다. 인문학이 바로 이러한 방법에 길을 제시해 준다.  그러니까 내 삶의 변화와는 거리가 먼 인문학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내 삶을 새롭게 설게하여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습관을 스스로 만들고 실천하는 거다. '적토마는 당근과 채찍 없어도 잘 달린다." 스스로 동기 부여하고, 개선하며,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는 거다. 그게 인문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길은 다음과 같이 4 개로 나누었다. 동의한다.
▪ 인문학은 당연한 것을 의심한다. 그 의심으로 인문학이라는 도끼를 들고 깨부수며 다르게 생각하는 거다.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공부를 하는 거다.
▪ 인문학은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을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물음표이다.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거다.
▪ 인문학은 주변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관찰의 힘과 상상하는 능력이다. 이런 힘을 키워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다른 이들과 잘 소통하며, 다른 이를 사랑하는 힘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인문학은 단순한 지식 습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러한 실천력으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제 스스로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이때 필요한 것이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는 거다.

4
보고 해석한 생각이나 의견이라는 뜻으로 일상에서 쓰이는 견해는 언젠가 진부해 진다. 그러나 사실은 영원히 진부해지지 않는다. 사실은 현실을 기반으로 지금-여기서의 삶이 양산하는 산물이다. 사실은 오로지 사실이 거주하는 현장에 몸이 개입되지 않고 서는 파악할 수 없는 진실의 재료이다. 그래서 견해와 사실을 잘 구별해야 한다. "견해는 언젠가 진부했지만, 사실은 영원히 진부해지지 않는다"는 아이작 싱어의 말을 알고 있다. 사실 판단을 잘 못하면, '진부해진 자신의 견해에 매달리게 된다. 사실은 현실을 기반으로 지금-여기서의 삶이 양산하는 산물이다. 사실은 오로지 사실이 거주하는 현장에 몸이 개입되지 않고 서는 파악할 수 없는 진실의 재료이다.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된다. 예컨대, 사형제 폐지에 대한 생각의 경우 정답이 없다. 다만 이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있고, 우리는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따진다. 왜냐하면 풍요로운 사유와 정교한 논거를 갖춘 내 생각을 가져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내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비뚤어지면, 창피한 줄도 모르고, 쉽게 말하고 행동한다.

조정민 목사의 <<사람이 선물이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스물에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돌을 들었고, 서른에는 남편을 바꾸어 놓겠다고 눈초리를 들었고, 마흔에는 아이를 바꾸어 놓고 말겠다고 매를 들었고, 쉰 살이 가까워진 지금, 바꾸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임을 깨닫고 들었던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져 간다는 것은 바로 조정민 목사의 말처럼, 남들이 문제라고 쉽게 손가락질하는 것에서 시작해 본인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는 과정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요즘 시쳇말로 중2병에 걸린 아이처럼 세상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불만의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남들을 문제라고 보는 내 마음 자체도 문제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때문에 남을 도우려는 마음,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도 ‘우월한 나의 옳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부인 ‘완벽하지 않은 나’라는 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 역시 문제가 많은 세상의 일부일 뿐이지 그 밖에서 홀로 고고하게 서 있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숙이라는 것은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억누르거나 심지어 부정하고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상생하는 공존의 길을 찾아 실천하는 것에 있다. 나와 정치적 견해와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고 그들을 폭력적으로 누르거나 제거하려 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않을 뿐더러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그런 나를 비난할 뿐이고, 실제로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또 다른 적들이 우리 안에서 곧 만들어진다. 세상은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큰 것이 있으면 작은 것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나와 다른 한쪽을 없애려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지혜롭다.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어른은 나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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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음 문제는 견해가 아니라, 사실 판단에서 나오는 거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씨앗을 빌려서도 뿌려서 농사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적극 확장 재정을 시사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경제 주도의 산업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 개선이라고 하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재정 확장은]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서 회복과 성장을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이런 결정은 자신의 지금-여기의 사실을 잘 파악하고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삶의 방향을 결정하려면 위의 방식이어야 한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을 운영하는 하나의 철학이 필요하다. 단지 하나의 수사학만이 아니다.

마중물이 필요하다. 올해도 하루도 쉬지 않고, 긴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를 썼다. 그 이야기는 사람(人)과 삶(世界)에 관한 인문학적 담론들이었다.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들이었다. 나는 이 글들이 마중물이 되어 우리 모두 딛고 있는 자신의 땅 속으로부터 맑고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려, 우리의 심연을 깨끗하게 하여, 그 속에 우리 자신을 만나길 바랬다.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들과 함께 우리 사회를 각성 시키고 싶었다. 더 행복한 사회를 향해 나약한 각 개인은 연대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내 가족만 잘 살면, 뭐하나? 세상이 힘들어 하는데. 우리 주변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마중물은 혼자 힘으로는 세상밖으로 나올 수 없는 지하수를 마중하는 한 바가지의 물이다. 마중하는 한 바가지 물은 보 잘 것 없는 적은 물이지만 깊은 샘물을 퍼 올려서 세상과 소통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큰 변화를 만든다. 
▪ 마중물은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우리 모두는 누구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어떤 물이든 상관 없기 때문이다. 
▪ 마중물은 우리 가까이 어디에나 있다. 
▪ 마중물은 어디에나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유연하다. 이것은 마중물이 항상 열려 있다는 말이다. 
▪ 마중물이 버려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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