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 흥행 돌풍으로 한국 문화(K콘텐츠)가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거다.

343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31일)
1
딸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봤다. 난 원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늘 미루어 오다가, 딸과 맛있는 요리와 와인을 마시고, 흥에 겨워 이 영화를 다 보았다. 보도에 의하면, '케데헌' 흥행 돌풍으로 한국 문화(K콘텐츠)가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거다. 그 양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예고하고 있는가 보다. 국적 불문하고 젖먹이 때부터 K팝을 흥얼거리는 세대 이른바 'K제네레이션'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6월 20일 공개 이후 두 달여 만에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영미 음반 차트를 휩쓴 영화 수록곡(OST)이라는 기록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케데헌' 신드롬을 전 세계 아이들이 '렛 잇 고(Let It Go)'를 불렀던 11년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 때와 비교하지만 파급력은 그 이상임을 감지할 수 있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거다.
미국의 네 살배기가 카시트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골든(Golden)'을 따라 부른다는 소식도 접했다. '골든'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주제곡이다. 가사를 얼버무리면서도 고음을 소화하려 온 힘을 다하는 아이 표정에 운전석에 앉은 엄마는 웃음을 터뜨린다. 틱톡에 올라온 '아기가 K팝 데몬 헌터스 덕후일 때' 영상이다. 2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2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주제가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 곡을 만들고 부른 이재(EJAE)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이자 원로배우 신영균의 외손녀인 그는 10년 넘게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생활을 했지만 데뷔하지 못했다. 대신 트와이스, 르세라핌 등 K팝 그룹의 곡을 쓰며 커리어를 쌓았다. 당초 '케데헌'에 작곡가로 참여했다 그의 가창 실력을 눈여겨본 감독이 주인공 루미의 노래 목소리로 전격 발탁했다. 뒤늦게 꿈을 이룬 그는 '골든'의 가사처럼 높이 날아올랐다. 이제, 이재가 빛날 시간이다.
3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주말인 지난 8월 23일과 24일(현지시간) 북미 전역 영화관 1,700곳에서 진행된 ‘케데헌 싱어롱 상영회(영화 속 노래를 함께 부르며 관람하는 방식)’를 찾은 관객들은 극 중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야광봉을 흔들며 수록곡을 떼창했다. 미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케데헌> 싱어롱 개봉을 기념해 조명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극장 수익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현지 영화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는 이틀간 1,800만 달러(약 250억 원)를 벌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추정했다.
좋은 영화는,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아름다운 책"이다.
아름다운 책/ 공광규
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
책상이 아니라
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
잡지 같은 사람을
소설 같은 사람을
시집 같은 사람을
한장 한장 맛있게 넘겼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용을 가진 책이었다
체온이 묻어나는 책장을
눈으로 읽고
혀로 넘기고
두 발로 밑줄을 그었다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최고의 독서는 경전이나 명작이 아닐 것이다
사람, 참 아름다운 책 한 권
4
상영회를 앞두고 주제곡 '골든'의 한글 가사 'yeong wonhi kkaejil su eobsneun(영원히 깨질 수 없는)'이 구글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 팬이 팝송 발음을 들리는 대로 적어 외우듯 외국인 팬도 한글 가사를 정확히 따라 부르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 등에도 '초보자를 위한 싱어롱 한국어 표기법' '케데헌 한국어 가사 총정리' 등 게시글이 등장했다.
'케데헌'은 한 살배기부터 어른까지 광범위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SNS에는 기저귀를 찬 한 살배기가 '골든'을 들으며 옹알거리고 들썩이는 영상부터 10대가 모여 영화 속 K팝 아이돌 그룹을 따라 하는 영상까지 수두룩하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아들이 '케데헌'에 푹 빠져 나도 다섯 번이나 봤다. 농담이 아니다"라고 고백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포레스트에 거주하는 실비아 크루즈의 다섯 자녀는 '케데헌'을 최대 30번 정도 시청했고, 영화를 보지 않을 때는 OST를 듣는다. NYT는 "밀레니얼 세대 부모가 1990년대 보이밴드와 걸그룹의 황금기를 다시 경험하고 있다"며 "이 영화는 올여름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뜨리고 디즈니 영화 <겨울왕국> 같은 문화적 반향을 일으키며 순항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5
<케데헌>에서,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이 매우 흥미롭다. 노래도 대사도 다 영어지만 음소거를 하면 한국 작품 같다. 주인공들은 콘서트 전 탄수화물 보충을 위해 김밥과 호떡 순대 라면을 먹는다. 국밥을 먹으며 속을 달래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한의원과 목욕탕에 간다. 국밥집에선 수저 아래 휴지를 까는 한국적 디테일도 살아있다. 남산 서울타워와 낙산공원 성곽길, 강남과 종로가 주된 배경이다. ‘일월오봉도’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은 방탄소년단이 경복궁에서 했던 무대가 연상된다.
주인공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건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은 호랑이와 까치이다. 이 캐릭터를 닮은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은 품절 대란이라 한다. 요즘 해외 MZ 세대에게는 노래에 한국어 가사를 섞으면 그 자체로 ‘간지’있어 보인다고 한다. <케데헌>에도 한국어 가사가 군데군데 나온다. K팝 덕분에 한국어의 위상도 높아졌다. 올해 한국 음악 산업의 예상 수출액은 2조원, 전 세계 K팝 팬은 7500만명이다. 대단한 규모다. 이들이 K푸드 K뷰티에도 돈을 쓰고 한국을 찾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케데헌 돌풍이 또 한 번 보여줬다.
이 모든 작업은 한국계 감독과 K팝 아티스트 및 업계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미국의 유력 매체인 <뉴욕 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 등은 "K는 이제 장르가 아닌 정체성이며, 한국은 문화적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 <케데몬> 열풍은 세계 콘텐츠가 K의 문법을 따르기 시작한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케데헌>을 만든 건 미국의 소니 픽처스다. 2002년 설립된 이 회사는 많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 등을 추격해 온 제작사다. 그냥 쉽게 말하면 <케데헌>은 '메이드 인 USA' 제품인 셈이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소니 픽처스가 만들었고, 역시 미국 회사인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배급했다. 당연히 그 열매를 제일 먼저 따는 이들도 소니 픽처스와 넷플릭스다.
좀 더 살펴보면 극 중 걸그룹 '헌트릭스'나 보이그룹 '사자보이즈'가 빌보드 차트를 누비고 있지만 한국산 K팝 그룹이 아닌 미국산 K팝 그룹이다. 또 앞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로 만들어질 뮤지컬이나 드라마 혹은 속편 영화에 대한 판권은 모조리 소니 픽처스의 권리다.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는 팬덤, 음원, 굿즈, 버추얼 팬미팅까지 모든 것이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구조다. 우리가 '국뽕'에 취해서 자랑스러워 하는 동안 우리가 만들어 놓은 부품으로 만든 미국산 완성형 자동차가 전 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소위 K팝을 주도해 온 국내 4대 기획사들에게 일부 책임이 있지 않을까?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모델이 된 걸그룹과 보이 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기획사들은 주렁주렁 열린 과일을 따는 데만 집중했을 뿐 품종 개량이나 묘목 분양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각종 굿즈를 만들어 팔고, 멀티플한 앨범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데만 혈안이 됐다. 전 세계를 돌면서 아레나 투어를 갖는 것에서 만족했다. 이제는 K팝의 간판을 내리고 글로벌 팝 비즈니스에 나설 때다. 한국의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이 아닌 전 세계의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 보유국이다. 좀 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해야 할 때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