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밖에 모른다면 아직 인간이 덜 된 것이다. 덜 익은 와인처럼 말이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9월 4일)


저녁에는 와인 심사 첫날 밤으로 환영 만찬 파티가 있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아시아와인트로피>가 벌써 11년이 흘렀다. 심사 위원들 중에는 11년을 한 번도 빠지 않고 참석하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들이 잘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사는 ‘사랑하다’와 다른 사람을 ‘돕다’ 같다. 자신에 대한 염려에 앞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한다. 마치 잘 ‘숙성된 인간 와인’ 같다. 자기 밖에 모른다면 아직 인간이 덜 된 것이다. 덜 익은 와인처럼 말이다. 오늘도 잘 숙성된 와인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는 구약성경 <창세기> 제3장 6절을 소환한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가 묘사하는 음식에 관한 히브리어의 세 가지 형용사를 주목한다. 이런 태도로 와인 심사를 하고 있다.
▫ 우선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이 향이다. "음식으로 좋고"(인터넷으로 찾은 성서에는 "본즉 먹음직도 하고")에서, '좋다'라는 히브리어는 '토브'라고 한다. 그 말은 후각과 관련된다고 한다. '토브'는 '향기로운, 코를 통해 침샘을 자극하는'이란 의미라 한다. 실제로 좋은 와인은 향기가 좋은 와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저녁 무렵 어느 식당 앞을 지나가면, 음식 향에 자극을 받는다. 음식이 실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향으로 무슨 요리인 줄 알기도 한다. 중국집의 짜장면 향은 지금도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도 그 향을 즐기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토브'는 '최상급'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파라다이스(낙원, 에덴 동산)에서 만들어진 최상급 음식은 거부할 수 없는 향기를 지녔을 것이다.
▫ 그 다음은 "눈에 즐거움을 주고"("보암직도 하고")이다. 여기서 '즐겁다'의 히브리어는 '타아바'라 한다. 이 단어는 시각을 자극하는 단어라 한다. 눈에 쾌락을 줄 정도로, 음식을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 때 사용하는 말이란다. 와인도 향을 맡은 후, 마시기 전에 색깔을 감상한다.
▫ "지혜롭게 한다"는 말의 히브리어는 "네흐마드"란다. 이 말은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단어란다. 아마도 그 음식은 몸에 좋은 유기농 재료로 우리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이상적이란 말을 한 것 같다. 우리가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자고 하는 것도, 소주가 '만든' 술이라면, 와인은 '빚은' 술로 포도 이외에 이물질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천연 음료이기 때문이다.
좋은 와인 한 모금은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왜? 만족스러운 느낌이나 맛 그리고 즐거움과 재미를 주면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지성이나 이성을 굳고, 경직되게 하는 일을 막아준다. 이런 여가와 놀이가 제공하는 즐거움과 재미가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중심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부단히 들락거리는 중심이어야 한다. 여기서 '들락거림'이 중요하다. 여가나 놀이마저 중심으로 건축되어 도달해야 할 것, 발견되어야 할 것,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남는다면 이것도 삶의 재앙이다. 고전을 읽으며, 철학적 시선, 지성적인 힘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 난 딸의 와인 숍 & 바 <뱅샾62>에서 즐겁고 재미 있는 생활을 한다. 그 일이 나의 밥줄이기도 하다. 그 일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끊임없는 들락거림을 위해, 아침마다 글쓰기와 공부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장사를 한다.
내가 와인을 알고 공부하게 된 것은 프랑스 유학 시절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의사 시인 마종기에 의하면, 실패한 의사들을 공통점이 취미가 없다는 것, 자기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이라 말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유학기간 동안 취미로 와인을 공부하다가, 이젠 그것이 밥을 벌어주는 직업이 되었다. 마종기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 본다. "의학, 과학을 지상 최고의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삶의 의지가 단번에 꺾입니다. 다른 취미 없이 외골수로 살아가면 인생에 있어서 큰일이 닥칠 때 쉽게 이겨 내기 어려워요.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취미를 갖고 그것을 즐기면, 의사로서 좌절하고 봉변을 겪게 될 때 살아 남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엄지혜, <<태도의 말들>>에서 인용)
와인을 알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타인의 마음 상태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게 아니면 안 돼'라는 태도도 없어진다. 마음의 공기를 전환시키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찾아 마시면 감정이 빠르게 전환된다.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삶이 우리를 속인다면, "순간의 삶"인데, 와인과 함께 웃으며 즐겁게 살자고, 시인은 술잔을 마주하라고 권한다.
대주(對酒)/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
그렇지만, 세상의 귀한 것이 다 그렇듯이, 음식은 절제할 때 빛난다. 술은 수(水, 물)와 불의 합성어로 술 속에는 불이 들어 있다. 적당한 불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지나친 불은 우리를 다 태워 버린다. '음식(飮食)'의 '식(食)'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어울리는, 적당한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오늘 내가 먹고 마신 것이 '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 절제된 식생활은 자신을 수련하고 건강하고 이상적인 인간으로 훈련시키는 필수 조건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자신이 배가 부르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는데…
그렇다고 금식(禁食)도 건강을 해치고, 우리에게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한 번 아파 본 사람은 '중용(中庸)'이라는 정교한 지점을 안다. 금식이나 폭식이 아니라, 적당한 식습관이 중요하다. 음주도 마찬가지이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중도(中道)'도 오랫동안 인내의 수련을 거친 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고, 자기 관리의 영역이다. 우리는 건강한 음식을 적당히 먹으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 이유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건강은 왜 필요한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인생을 가치 있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없고, 우리가 열망하는 고유한 임무에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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