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굳어진 욕심을 줄이는 노력을 오로지 해야 한다.

343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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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는 노자 <<도덕경>> 제36장을 산문으로 잘 다시 쓴 글을 읽게 되었다. "마땅히 굳어진 욕심을 줄이는 노력을 오로지 해야 한다. 욕심을 약하게 하려면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욕심을 없애면 즐거움이 한결같고, 욕심에서 벗어나면 오로지 베풂 이니 이를 밝음이라 한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고,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되듯 '이로운 그릇'인 마음 자리를 벗어난 욕심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 세속에 사로잡힌 인간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욕망이 깊어지면 탐욕으로 진화한다. 탐욕은 죄의 근원이라 반드시 버려야 할 번뇌 중에서도 버리기 어려운 번뇌다."
불교에서도 비슷하게 말한다. 붓다는 특히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금강석 같은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릴 때 웬만큼 강한 의지는 언제든 끓어오르는 번뇌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하였을 것이다. 실제 명상 수행에서 아무리 강한 의지로 번뇌를 누르려 해도 뜨거운 물에 넘치는 물거품처럼 더 심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하지만 이때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으면 신통하게 번뇌가 사그라진다. 부처의 그윽한 미소가 그런 뜻이 아닐까?
노자는 '도'를 깊은 연못에 비유하고,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같은 뜻으로, 부처는 본성 '도'를 벗어난 탐욕은 재앙이요, 고통이라 하였다. 물속에서 보는 바깥세상이 아름답다고 물고기가 물속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두말할 것 없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퍼덕이다가 죽는다. 이때 연못은 물고기가 살아 숨 쉬는 '이로운 그릇'이다. 노자가 비유한 연못은 사람의 본성이 머무는 마음 자리, 즉 '심체(心體)'이고 물고기는 탐욕을 쫓아가다가 재앙을 초래하는 인간 자신이다.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되듯이, 우리 인간도 '이로운 그릇'인, 우리의 본성이 머무는 마음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 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욕심이다. 게다가 그 욕심이 깊어지면 탐욕으로 나아간다. 탐욕은 재앙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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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欲歙之(장욕흡지)하려면 必固張之(필고장지)하여야 한다: 장차 접으려 하면 반드시 먼저 펴주어라. 그러니까 오므리려면, 먼저 펴야 한다.
將欲弱之(장욕약지)하려면 必固强之(필고강지)하여야 한다: 장차 약하게 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주라. 그러니까 약하게 하려면, 먼저 강하게 해주어야 한다
將欲廢之(장욕폐지)하려면 必固興之(필고흥지)하여야 한다: 장차 폐하려 하면 반드시 먼저 흥하게 해주어라. 그러니까 없애 버리려면, 먼저 흥하게 해야 한다
將欲奪之(장욕탈지)하려면 必固與之(필고여지)하여야 한다: 장차 빼앗으려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여기서 "고(固)"는 '먼저(선, 先)'라는 말이다. 원래는 '본시', '원래', '고유한' 등의 의미이다. 접으려고 하면 먼저 펴주어야 하는 것은 사물의 고유한 이치라는 것이다. 우산도 접으려면 먼저 펴 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물이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거다. 오강남 교수는 이를 "변증법적 변화"라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반대편을 향해 열려 있고, 그 반대편의 것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제40장)과 "유무상생(有無相生)(제2장)의 내용이다. '장차 접고 싶으면 먼저 펴주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고안된 권모술수가 아니라, 우주의 존재 형식이 원래("固") 그러하고 사물들의 성질이 본래("固") 그러하다는 것이다. 제22장의 "곡즉전(曲則全)"이 우주의 운행 원리("固")를 설명하고 있다면, 여기서는 그것을 우리의 일상적 삶에 적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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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으로 읽는 21세기 도덕경>>의 지은이 정경대는 다르게 해석한다. "장(將)"은 그 뜻이 '장차'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욕(欲)"은 무엇을 하려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탐내다 또는 욕심, 욕망을 뜻하기도 하고, "탈(奪)"은 빼앗다는 뜻이기도 하고, 없어지다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빼앗는다는 해석은 전체 뜻으로 보아도 맞지 않다는 거다. 남의 것을 빼앗는데 어찌 밝음(微明)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 하는 마음자리를 어찌 '이로운 그릇'이라 할 수 있느냐는 거다. 따라서 이 구절의 해석은 반드시 욕심을 없애야 하며, 욕심이 없어 지면 그 다음은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푼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옳다는 거다. 그리 해석 하면 그 다음 구절 모두가 뜻이 잘 통한다. 즉,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면 안 되듯 본성 마음 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풀이하면 조금도 걸림이 없이 뜻이 통한다.
그래야 제36장의 이어지는 원문이 이해가 된다는 거다. 나도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자가 어찌하여 이 구절에서 교묘한 계책이나 상술, 또는 타인의 마음이나 재물 등을 빼앗기 위한 비열한 방법을 제시했을까? 노자는 결코 '도'에서 벗어난 말을 단 한 자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是謂微明(시위미명)이다 : 이것을 일러 미명(어둠과 밝음의 이치)라고 한다.
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딱딱하고 강한 것을 이기게 마련이다. (강하고 센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약한 자가 살아 남는다.)
魚不可脫於淵(어불가탈어연)듯이 國之利器(국지리기)는 不可以示人(불가이시인)하여야 한다: 물에 사는 물고기는 연못을 튀어나와서는 아니 되나니, 나라를 다스리는데 핵심적인 원칙을 담은 그릇은 사람에게 함부로 보여서는 아니 되나이다. (나라의 날카로운 무기는 상대방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 "국(國)"은 나라 또는 세상 세계이고, 연못은 '도'이다. 인간의 본성 역시 '도'이다. 그리 생각하면, 물고기가 연못 바깥 세상이 좋다고 연못 밖으로 나와 숨을 헐떡이다 죽듯, 사람은 탐욕에 매몰돼 본성 '도'에서 벗어나 세속의 즐거움에 빠지면 재앙을 입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교훈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전체 뜻을 간추리면, 탐욕을 버리고 욕심이라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 삶에 필요한 만큼 조금만 욕심을 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전혀 욕심을 안 낼 수는 없는 법, 큰 욕심을 줄이고 줄여서 삶에 필요한 만큼만 욕심을 내 어도 미묘한 밝음에 이른다는 노자의 교훈은 물질 문명에 자아를 상실해가는 사람들이 가장 귀 기울여야 할 '고언'이라 할 수 있다. 짧은 시 하나 공유한다.
이 탐욕 덩어리도/김원각
아가에게 동전을 주니 쥐었던 것 도로 놓는다
종일 되풀이해도 쥐었던 것 도로 놓는다
아, 늙은
이 탐욕 덩어리도
저런 시절 거쳤겠지
4
이해하기 힘든, 탄핵을 반대한다는 야당 대표가 선출되었다. 그에게 나도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 대답을 못하면, 문제인 것이다.
▪ “윤의 비상계엄 내란은 잘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 “윤에 대한 탄핵도, 헌재 파면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가?”
▪ “윤이 돌아와 다시 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이라도 하라는 것인가?”
▪ “'노상원 수첩'에 찬성하는가?”
▪ “노상원 수첩에 적힌 사람들은 죽였어야 마땅한가?”
정청래 여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칼로 싸우지 말고 말로 싸우라는 의회 정신도 살해한 것”이라며 “말로 싸우는 국회에서 무고한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려 했던 세력과 과연 대화가 가능한 것인가? 상식적으로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까? 노상원 수첩을 용서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했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노(NO)”라고 했다.
또한 그는 “나를 죽이려 했던 자들에게 ‘죽이려 했던 것 잘못 했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서로 웃으면서 대화하라고 강요(?)하는 언론이 있다”며 “그런 언론에게 묻는다. 사람을 죽이려 했던 내란 세력에게는 왜 그리도 너그러운가?”라고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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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민심을 존중하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 뭐라는 국민의 힘 대표는 국민의 고통이나 삶의 무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권력 야욕과 복수심에 사로잡혀 "현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첫 마디이다. 이는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짓밟는 폭거 선언이다. 게다가 내란 우두머리를 감싸고, 재집권을 꿈꾸다니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민주 기본질서 국가에서 정당 대표라는 자가 국민을 대리하는 위치에서 국민의 뜻을 거슬러 권력 음모를 괴한다면, 그가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이게 내 지론이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실제로 정치는 아무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도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문제이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친다. 정치는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해준다. 신체를 구속할 수도 있으며, 돈도 걷어가며, 군대로 데려가기도 한다. 정치는 우리들의 '정신 세계'도 지배한다. 정치에 아무리 냉소적일지라도 정치는 우리들의 삶으로부터 단 1cm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에 대한 철학, 의지, 전문성이 없으면 해서는 안된다. 정치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 정치의 불행은 정치가 갖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 엄청난 힘을 아마추어들이 다룬다는 사실이다. 선거에 나가 당선되었다고 저절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너무나 위험하고 중요한 일을 다루기 때문에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유권자들은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험이 전에 전혀 없는 어떤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정치 포퓰리즘이다. 대니얼 부어스턴의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이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 핵심은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책임감이 모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중요한 자리를 뻔뻔하게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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