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7. 17:26

342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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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일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 가장 최근에 재미를 느낀 건 도대체 언제 일까? 마지막으로 신나고 들떠 심장이 두근대고 가슴이 벅찼던 때는? 한없이 자유롭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느꼈던 적은?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면, 자신의 삶은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불행하기도 하다. 행복의 중심엔 늘 재미가 있다. 재미있을 때 우리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놓여 나고, 지친 몸에 활력을 부여하며, 메마른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죽지 못해 하는 일은 오래갈 수 없다. 재미는 기쁨과 감동이 결합했을 때 확연해 진다. 그런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아서 우리를 일에 몰입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좋게 만들며,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해준다.

2
벤 핀첨 영국 서식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재미란 무엇인가>>(팬덤북스 펴냄)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노잼 사회' 이다. 산업혁명 이후 업무의 규칙화와 기계화가 일에서 재미를 빼앗고, 일과 재미를 적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직장에서 '웃음이 넘쳐 나는'은 '일하지 않고 노는' '빈둥거리는' '집중하지 않는'과 거의 동의어이다. 재미는 일터 분위기를 흐리고, 업무 속도를 저해하는 반항적인 힘으로만 인식된다.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걸 물었을 때, 재미라고 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요즘 유행하는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도 기본적으로 일터를 재미없는 장소로, 짜증 넘치는 공간으로 전제한다. 안타깝게도 재미를 일상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경험보다는 여가에서나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예외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쉰다고 자동으로 재밌는 건 아니다. 재미를 느끼려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터이든 아니든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낙타/신경림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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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란 무엇인가>>의 저자 핀첨은 단조로움의 야수를 이기는 재미의 가장 큰 원천이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사랑과 관심에 바탕을 둔 좋은 인간관계에서만 재미가 창조 되는 것이다. 재미와 유머는 성질이 다르다. 유머는 어떤 관계에서 권력의 편차가 지속되거나 두드러질 때 더 잘 느껴지나, 재미는 구성원 간 위계 관계를 줄이고 평등한 관계를 늘려서 개인적·사회적 불평등이 파괴될수록 더 잘 생겨난다. 재미는 우애를 바탕 삼아 퍼져나가므로, 독재자 아래에선 아무도 재미있지 않다. 연대를 촉진하고 고립을 제거하는 조직만이 일하는 사람들을 재밌게 만든다. 재미는 고통을 잊게 하고, 슬픔을 이기게 하며, 시름을 견디게 만든다. 사람들이 자주 어울릴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이벤트 등을 베풀어 업무를 잠깐 잠깐 정지 시키고 재미의 맥락을 만들어줄 때 더 건강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생산성 높은 조직이 된다.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경우, 딸과 자주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재미의 맥락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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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논어>>의 <옹야>편에서 공자는 "배움의 길에 있어서 무엇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 무엇을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무엇을 좋아 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말은 꽤 많이 알려진 문장이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가 원문이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 그러니까 "지지자‹호지자‹락지자" 순이다.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더 우선하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거이 더 유익하다는 말이지만, 즐기고 좋아하려면 우선 알아야 한다. 그래 우리가 무언가를 즐기려면 우선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움의 차원에서, 알기만 하는 것보다 좋아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즐기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보다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뭐든지 즐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원하는 성과를 얻고 성공에 다가가기 쉽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최고의 경지가 즐기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잘 즐기지 못한다. 재미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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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어느 컨설턴트가 한 휴양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의 곁에는 마을 어부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컨설턴트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좀 더 열심히 하면 훨씬 성과가 좋을 텐데요." 나에게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부는 컨설턴트에게 되물었다. "성과가 좋으면 뭐가 좋은데요?" 컨설턴트는 한심한 듯 대답했다. "성과가 좋으면 돈을 많이 벌고, 돈을 많이 벌어 투자하고 벌만큼 벌면…" 어부가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 다음에는 요?" 컨설턴트는 무식하다는 듯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 다음에는 좋은 곳에 가서 쉬면서 사는 거지요." 어부가 말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나도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산다. 어부처럼, 세상이 혹은 타인이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성공보다 스스로 흡족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욱 즐긴다. 내가 좋아하는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소설 <<순례자>>에서 했던 말을 실천하다. "충만하게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마 문제는 자기가 재미를 위해 즐길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거다. 즐기다는 경지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집요하게 밀고 나갈 때 얻을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좋아하는 과정을 건너뛴 채 곧바로 좋아하는 일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공자도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고 너무 잘하려고 하다 가는 오히려 망치게 된다"고 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지속하는 데 더 마음을 쓰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기쁨을 느끼며 성취감을 얻고 결국 즐길 수 있고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기쁨과 즐거움은 차이가 있다. 사전을 찾아 본다.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이나 느낌이라면, 즐거움은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느낌이나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비슷한 것 같은데, 즐거움은 어떤 상태라면, 기쁨은 어떤 행위의 결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없다가 얻게 되었을 때 오는 것은 기쁨이고, 늘 있는 것은 즐거움인 것 같다. 이러한 즐거움은 지속하는 데서 나온다. 즐기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지에 상관없이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끈기에서 얻을 수 잇다. 즐기는 마음은 하다 보면 얻어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고 말해도 내가 직접 겪어 보고 느껴보지 않으면 진짜 즐거운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시작할 때 즐거운 일을 찾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즐길 수 없을 정도로 지겹고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반면 힘들고 괴로웠던 일도 지속하다 보면 숙련되고 점점 즐기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일 수 있다. 공자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좋아하게 되면, 나중에 결국 즐길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정상에 올라서 멋진 풍광을 내려다 볼 때 비로소 산을 즐길 수 있는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맨발로 한 걸음이라도 걸어본 사람이 맨발 걷기에 대한 즐거움을 알 수 있는 거처럼 해보지도 않고 먼저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즐거움의 경지에 오르려면,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하고,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율곡은 그 것을 등산에 비유하였다. "산을 만나는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산이 있다 더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 산을 제 눈으로 올려 다 본 사람 그리고 직접 산을 밟고 올라가 땀을 훔치며, 눈에 가득한 전망을 누리는 사람이 그 것이다." 밑줄을 그어가며, 한문을 찾아가며, 학습의 산을 직접 오르는 거다. 도(道), 즉 삶의 길은 두 날개를 갖고 있다. 그것은 한편 탐구를 통해 발견(思)되어야 하는 것이면서, 또 한편 일상적 삶에서 실천(學)하는 것이다. 실천 없는 탐구는 공허할 수 있고, 탐구 없는 실천은 맹목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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