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아이에카(ayyeka)와 마아트(maat)>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1)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7. 16:39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9월 7일)

오늘은 천안으로 탁구 모임을 간다. 초등학교 친구 4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대전과 천안을 오가며 운동을 하고 기쁜 시간을 갖는다. 그래 <인문 일지> 공유를 좀 일찍 한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아이에카(ayyeka)와 마아트(maat)>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1)

성경에서 하느님이 하신 첫 질문이 "아이에카(ayyeka)"이다. 이 말은 '너 어디 있느냐?'이다. 이 질문은 인간에게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주역>>에서도 효의 위치와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어디에 있느냐 하는 거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득위'라고 하고,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있을 때 '실위'라 한다.
각 효는 '득위'하여야 좋은 것이다. <<주역>>에서 이 ‘위(位)’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양효'라 하여 어떤 자리에 있거나 항상 '양(陽)'의 성질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음효'는 어떤 자리에 있거나 '음효'일 뿐이라고 하는 고정된 관점은 없다.  개별적 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의 고유한 본질을 인정하지 않거나 그러한 개별적 본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이는 동양적 전통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그 '처지(處地)'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그 운명도 달라진다는 생각이다. '처지'라는 말에 다시 한 번 방점을 찍고 싶다.

'처지'는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고 하는 표현을 하였다. 눈이 이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발(立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는 말은 '처지'에 따라 그 생각도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상황에 처한 타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처지'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타자의 관점을 취하는 능력으로, 우리가 흔히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에 갇히지 않고 상대방의 상태에 나를 투영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능력,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 동물이 될 수 있는 거다.  또한 그러한 능력의 정도가 사람의 사회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능력이 부족해 상대방의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병증이 '자폐(自閉)'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는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할 때 사이코패스(psychopathy)가 된다. 사이코패스는 반복적인 반사회적 행동과 공감 및 죄책감의 결여, 충동성, 자기중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성격 장애 분류이다.

그리고 개인에게 있어서 그 '자리(位)'가 갖는 의미는 운명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처하는 경우 십중팔구 불행하게 된다. 제 한 몸만 불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불행에 빠트리고 나아가서는 일을 그르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리가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일까?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자리가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傷)하는 법이다. 고 신영복 교수는 "70%의 철학"을 말하였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는 거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 '30정도의 여유'는 '놀고 먹자'는 것이 아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여백 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별/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을 깨닫고 그것과 자신의 사명을 일치시키는 것을 최선의 삶이라 했다. 우선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거기서 관계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관계적' 태도로 하루를 사는가에 따라 일이 순리(順理)대로 가느냐 아니면 그 반대이다.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태도(態度)는 곰(熊)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그것을 마주한 인간의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試驗)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것들은 행운이고 동시에 불행이다. 그것들은 희망이며 절망이다. 그러나 내가 그 사건-사고에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것이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할 것이다.

태도 중에 필요한 것이 '자기 절제'. '중도', 아니 중용이다. 어느 날, 다른 사람 평가하기를 좋아하는 자공이 공자님께 물었다. 선생님,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장은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러자 다시 자공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현명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한 말씀 덧붙이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논어』"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님과 제자들의 이 대화에서 그 유명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지나치지도 않고 미치지 못하지도 않는' 자기 절제가 곧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는 중도(中道)를 이야기하고, 그리스철학과 유학은 중용(中庸)을 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이 말은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중용>> 제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다. '거이'는 거할 거+평범할 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계사전>>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 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이집트로 되 돌아 온다. 우주와 자연의 원칙을 깨닫고,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지은 것이 피라미드이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우주와 자연의 원칙을 깨닫고 그것과 자신의 사명을 일치 시키는 것을 최선의 삶으로 알았다. 그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는 2톤이 넘는 정사각형의 돌을 200만 개 이상 쌓아 올려 만든 이집트 건축물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건축물이 5,000여 년 동안 여전히 건재 하는 것은 피라미드가 전체 구조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라미드가 지면과 지상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그것의 가시적인 중심이 아니라, 실질적인 중심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집트 인들은 이 중심 점을 '마하트'라고 부른다.

‘마아트(maat)'는 고대 이집트어로 ‘자신의 고유 임무’ 혹은 ‘일생 동안 마쳐야 할 의무’라는 의미다. 우리는 개인이 지켜야 할 마땅한 '법'을 '도리'라 한다. 그리고 이 '도리'의 일부를 문자로 기록하여 한데 묶어 '법'이라고 부른다. 수메르 문명은 그 법을 메(ME), 이집트 문명은 '마아트(MAAT)', 인도 문명은 '르타(Rta)', 히브리 문명은 '토라(Torah)', 중국 문명은 '도(道, Dao)'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이다. 국가가 제정한 법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의 지극히 일부이다. 그래 후진 사회는 법률 조항들의 정신인 도리를 무시한다. 선진 사회는 이 법률조항들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의 표현, 즉 도리의 일부라고 여긴다. 게다가 선진 공동체는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고 고양시키는 교육에 힘쓴다. 인생을 놀이로 가정한다면, 그 놀이에는 내가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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