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얀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9월 7일)
가을비가 밤새도록 내리지만, 오늘은 하얀 이슬이 맺히는 백로(白露)이다. 긴 가을 장마 속에서 백로 절기를 맞이한다. 속담에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늘린다" 했다. 그러니까 백로에 오는 비는 풍년의 징조이다. 백로(白露)는 24절기의 열 다섯째 절기로 처서와 추분 사이의 절기이다.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니, 이때 즘이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초입으로 추색이 완연하다.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 했다.
원래 이때는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도 적당해서 오곡백과가 여무는 데 더없이 좋은 때이다. 그러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의 피해를 가져오기도 할 때도 있다. 여름내 헉헉대 온 사람에겐 선선한 날씨가 자애롭게 느껴 지기도 할 것이다. 나무들도 단풍 준비에 부산할 것 같다. 어느새 벌겋게 불타는 가을 산을 기다리며 가슴 설레게 하기도 한다. 간혹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있지만 산 능선을 바라보면 언뜻언뜻 가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가 오지만, 오늘 아침은 여름에 피는 꽃들을 만나본다. 대표적인 것이 자귀나무, 모감주 나무, 배롱나무, 능소화 나무이다.


① 자귀나무
- 이 나무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향기로운 분홍색 총채를 들어 수수한 꽃내음을 선사한다. 그 분홍색 꽃이 잔뜩 핀 모습이 아름다워 경관수로 많이 심는다. 꽃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좋은 향기가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만들어 눈과 코를 동시에 즐겁게 해주니 그 밑에서의 데이트는 성공확률이 높다.
- 이 나무는 유정수, 합환수라는 흥미로운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 나무는 밤이 되면 잎이 겹쳐지는 모습에서 남녀 간의 애정 행각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 또한 소가 좋아해서 '소쌀나무라'고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 그리고 겨울이면 가지 끝에 남은 코투리 열매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서로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여자의 수다스런 혀와 같다 해서 '여설목(女舌木)라 하기도 한다.


② 모감주 나무
- 이 나무의 영어이름이 '골든에인트리(golden rain tree)'이다. 장마철에 노란 꽃을 비처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잘한 꽃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황금비가 오는 것 같다 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 모감주 나무의 열매는 풍선 같다. 그래 사람들은 중국에서 해류에 의해 종자가 떠밀려왔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나무의 종자가 바다의 짠물에서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다. 그 답이 풍선처럼 물에 잘 뜨게 생긴 구조 때문이다. 그것이 보트 역할을 한다면 황해를 건너오는 일이 가능해 보인다. 어쩌다 한 두개만 상륙에 성공해도 그 가능성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열매가 이렇다
- 이 나무의 종자로 염주를 만들기 때문에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그래 꽃말이 부처님 같은 '참다운 자유'이다.

③ 배롱나무
- 배롱나무의 특징은 매끈한 껍질이다. 나무껍질이 미끄러워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뜻에서 일본에서는 '원숭이미끄럼나무"라 부른다.
- 또는 내가 어린 시절에는 '간자럼나무'라고도 했다. 사람의 피부처럼 보이기 때문에 간지럼을 잘 탈 것 같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나무를 간질이면 간지럼을 타는 것처럼, 가지 끝이 흔들린다. 그렇게 보인다.
- 배롱나무의 개화 기간으로 따지면 최고이다. 장마가 끝난 9월까지도 계속해서 꽃이 핀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무색하게 하는 백일홍처럼 오래도록 피는 나무라 하여 '백일홍나무' 또는 '나무백일홍'이라 하던 것이 변해 배롱나무가 되었다. 한 송이의 꽃이 실제로 그렇게 오래도록 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는 거다. 그런 특징에 주목해 주로 경관수로 심고, 최근에는 가로수로도 많이 활용된다.
마침 정진규 시인의 '배롱나무꽃"이라는 시를 알고 있었다. 그래 오늘 아침 공유한다. 나도 산책 길에서 배롱나무 꽃을 볼때 마다 어머니를 생각한다.
배롱나무꽃/정진규
어머니 무덤을 천묘하였다 살 들어낸 어머니의 뼈를 처음 보았다 송구스러워 무덤 곁에 심었던 배롱나무 한 그루 지금 꽃들이 한창이다 붉은 떼울음, 꽃을 빼고 나면 배롱나무는 骨格만 남는다라고 금방 쓸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다 너무 단단하게 말랐다 횐 뼈들 힘에 부쳐 툭툭 불거졌다 꽃으로 저승을 한껏 내보인다 한창 울고 있다 어머니, 몇 萬里를 그렇게 맨발로 걸어오셨다
이어서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이라 하여 능소화(凌霄花)가 장마철에 피는 꽃이다.

④ 능소화나무
- 능소화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비가 오는 때를 기다려 수십 개의 주황색 나팔을 불어 댄다. 다른 꽃은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꽃잎을 닫지만 능소화는 그렇지 않다. 한번 펼쳐낸 꽃을 다시 오므리는 법이 없으니 자존심 하나만은 최고이다.
-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뜨거운 여름에 당당히 피는 꽃이 능소화이다. 꽃 피우는 것을 힘들어 하는 꽃은 없다. 핀 꽃이 덥다고 모습을 바꾸는 꽃은 없다. 장마 더위에 귀를 활짝 펴고 웃는 능소화를 보라. 일반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는 꽃이 시들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러나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예쁜 모습 그대로 뚝 떨어진다. 꽃이 시든 채 나무에 매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에 주로 이 능소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 난 능소화를 보면 슬픈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궁궐에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임금에게 눈에 띄어 하루 아침에 빈(嬪, 후궁)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다른 궁녀들의 시샘과 음모로 이어져 두번 다시 임금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 병이 들어 죽은 후, 궁 담장에 묻어 달라는 유언대로 묻혔다. 그 자리에서 자란 덩굴이 능소화란다. 기다리다 지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담을 뛰어 넘는다. 능소화의 '능(凌)'자는 ‘능가하다, 깔보다’라는 뜻이고, '소(宵)'자는 ‘하늘 소‘자이다. 그러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덩굴의 기운 때문에 능소화라고 한다. 슬프다.
- 이 꽃은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말을 타고 금의환양(錦衣換陽)할 때 머리에 쓰던 화관으로 장식했다고 해서 '어사화(御使花)'라고도 부른다. 조심할 것은 꽃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충이 들어가 실명(失明)을 할 수도 있단다.
철 지난 가을 장마가 계속된다. 오늘 오후부터 날이 갠다고 하다. 초가을의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다 한다. 아침에 만난 예쁜 글이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암묵지’(暗默知)다.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 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혜라 부르는 많은 것은 이런 암묵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부추와 청경채에서 피어난다고 말해준 건 태백에서 자란 내 선배인데, 먹는 것인 줄만 알았지 나물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이 내겐 생소하기만 했다. 흥미롭게도 선배가 꿈꾸는 건 ‘나물 정원’이었다. 단지 아름답게 피어 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섭취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정원 말이다. 뿌리고 수확하는 게 인생이다. 그중 어떤 건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꽃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싹을 제때 피우지 못해 허약하거나 응달 곁에 간신히 피어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의 삶이 정원이라면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응달 곁이라 속상해만 할 것인가, 햇빛 쪽으로 걸어 나오는 수고로움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얻었다 말할 것인가."(백영옥)
꽃들을 보며, 삶을 생각한다. 되는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생각대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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