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간은 과잉이 되면 속수무책이 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5. 09:24

342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21일)

1
신은 인간을 만들 때 그 몸의 결핍을 스스로 보충할 수 있는 생체 구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의사들이 귀띔해주는 이런 말을 우리는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당분이 없으면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 채워주지만, 지나치게 섭취해 당분이 과잉이 되면 몸이 비명을 지른다. 넘치는 것을 버리는 장치는 우리 몸에 없기 때문이다. 과잉을 경계하는 이 원리는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재화가 한곳으로 몰려 부패하면 그 집단이나 사회는 무너지고 만다. 고진하 시인의 말, “인간은 과잉이 되면 속수무책이 된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고진하 시인의 시를 먼저 공유한다. 사진은 <페이스북> 담벼락에 붙어 있는 사진을 허락 없이 가져왔다.

웃음 세 송이/고진하

하루치 근심이 무거워
턱을 괴고 있는 사람처럼
꽃 핀 머리가 무거운 해바라기들은
이끼 낀 돌담에 등을 척 기대고 있네
웃음 세 송이!
웃음이 저렇듯 무거운 줄
처음 알았네
오호라, 
호탕한 웃음이 무거워
나도 어디 돌담 같은 데 척 기대고 싶네


“이상한 존재는 많지만, 인간보다 더 이상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 나오는 말이다. ‘이상한’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데이논(deinon)'은 '이상하다'는 뜻 외에도 ‘무서운’ ‘경이로운’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평온할 때는 괜찮지만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면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 타자의 존재는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 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간됨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옥에 있는 윤의 모습을 보고 이해가 되는 글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뱀이 있었다. 어찌나 사나운지 사람들은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사람들은 성인으로 소문난 수도자를 찾아가 뱀을 타일러달라고 부탁했다. 뱀은 수도자와 만난 후 변화되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하지도 않았고 물지도 않았다. 뱀이 자기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악동들은 처음에는 쭈뼛거렸지만 슬금슬금 뱀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막대기로 때리기도 했다. 뱀은 견디다 못해 수도자를 찾아가 자기 괴로움을 하소연했다. “수도자님의 말씀대로 했다가 내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때 수도자가 말했다. “나는 물지 말라고 했지 쉭쉭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을 선의로 대해야 하지만, 무례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만만한 사람이어 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좋은 사람처럼 처신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갉아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도함이나 부족함은 악덕의 특색이라 말했다.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상태가 중용이다. 미치지 못함보다 더 위험한 것이 지나침이다. 과유불급이다. 경계하며 삼가는 태도가 부족한 이들이 활개를 칠 때 세상은 소란스러워진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악인의 마음엔 반역의 충동만 있다면서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제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성급히 판단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낌과 존중의 마음이다.

2
김병기 서예가로부터 "不患寡而患不均(불환과이환불균)"라는 문장을 알게 되었다.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 때문에 그런 청정한 순환이 다 깨져 버렸다. 일용할 양식이 이러할진대 다른 부(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불공정은 물론, 인간 사이의 불균형도 극에 달해 있다. 한편에서는 남아서 버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자라서 굶어 죽고, 고루 나누려 들면 지구는 인류가 다투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자원을 내줄 것이다. 탐욕이 지배하는 한 부는 아무리 쌓아도 만족에 이를 수 없고, 게으름이 만연하는 한 고르게 나누는 균배는 독이 되고 만다.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고르게 나누며 살자는 게 공자의 뜻일 것이다.

 <지산 겸>괘의  괘사가  "象曰(상왈) 地中有山(지중유산)이 謙(겸)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裒多益寡(부다익과)하야 稱物平施(칭물평시)하나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땅 가운데 산이 있음이 겸(謙)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 적은 데에 더해서, 물건을 저울질하여 베풂을 고르게 한다.” 

땅 위로 솟아 있어야 할 산이 땅 가운데에 낮게 처하니,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많은 것은 덜어내어 적은 데에 더하고, 모든 상황을 잘 저울질해서 사회의 형평(衡平)과 평등(平等)을 구현하여야 한다. 사회정의(社會正義)의 기본 핵심은 형평과 평등에 있다. 사회의 병폐가 되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누진세(累進稅) 등의 세금정책을 통해 재원(財源)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지혜택을 구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겸(謙)은 사회정의(社會正義)이고 평등(平等)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 인지도가 높다고, 직급이 높다고, 뽐내거나 까불지 말아야 한다. 대동(大同)과 평등(平等)의 가치를 <<주역>>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곧 '천지의 도'이기 때문이다.
 
"부다익과 칭물평시"는 <<도덕경>> 제77장의 "天之道(천지도)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 高者抑之(고자억지) 下者擧之(하자거지) 有餘者損之(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부족자보지): 하늘의 도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것은 억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태 준다"와 일맥상통한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높은 산을 깎아 낮아지고, 그 덕택으로 낮은 곳은 메워져 높아진다. 위쪽 연못에 물이 차 넘치면 그 물은 자연히 아래쪽 연못으로 흘러 들어 그것을 채운다. 이렇게 남는 쪽에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쪽에 보탬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노자는 당시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하며 부자의 부를 덜어서 빈자에게 더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거다. 그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인지도즉불연) 損不足以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친다." "물이 한번 쓸고 가면 둔 턱은 깎이고 움푹한 곳은 뻘로 채워진다. 이런 것이 자연 현상이다. 불평등 구조를 화해구조로 끊임없이 리벨런싱하는"(김용옥)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리더는 부자의 여유를 덜어 빈자의 부족함을 메꾸어야 한다. 노자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 존재의 법칙을 가지고서 인간세의 당위를 요청한다.

'약자를 보호하라"는 거다. 왜냐하면 "남는 데서 덜어내 모자라는 데 보태는 것이 하늘의 도(天地道)"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키워드는 "보부족(補不足)", '부족한 자에게 나눔을 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베풀라'이다. 베풀어야 할 사람이 베풀기는 커녕 더욱 가지려고 하면 강제로 베풂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 공자의 충고를 잘 새겨서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 마음만 겸손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것의 높이에 '겸손'을 대입함으로써,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이 돕고 좋아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겸손은 곧 평등의 실천이다.

3
우리는 매 순간 세포를 잃음으로써 새 세포를 얻는다. 씨앗이 껍질을 벗어야 새싹이 나오고, 애벌레가 고치를 벗어야 나비로 나온다. 얻음과 잃음, 빛과 어둠은 늘 공존한다. 그래 배타(排他)라는 말은 무섭다. 이건 이타(利他)나 공존(共存)을 지워버리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남을 밀쳐내고 내가 사는 것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무평불피"를 말하고 싶다. 그런 말 할 때는 한시적이고 한정적이다. 권력이 있다고 영원하지 않다. '화무십일홍'이다. 그래서 권력(權力) 대신 권한(權限)이라는 말을 늘 기억해야 한다. '권력에 한계를 둔다'는 말이다. 평평한 땅을 계속 걷다 보면 반드시 비탈을 만나게 되니 조심하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주역>>의 원문은 "무왕불복(無往不復) 무평불피(無平不陂) 간정무구(艱貞無咎)"이다. 자연의 순환 원리를 주역에서는 "무왕불복"의 원리라고 한다. 세상의 이치는 결국 가면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순환 철학은 <<주역>> 11번째 괘인 <지천태> 괘에 나온다. 현재는 평평하지만 언덕질 날이 있고,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어렵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평평하다 가도 언덕이 있는 것이 자연의 지세(地勢)이며, 좋은 세상이 있다가도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그러니 태평할 때에 그 태평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는 거다. 태평한 시절이라고 방심하고 과소비하고 부도덕하게 편히 살려고 하며 퇴폐풍조로 흐르면 안 된다고 걱정함과 함께,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생각 말이다. "간정무구(艱貞無咎)"와 함께, 난 개인적으로 여기에 나오는 말, "무평불피"와 "무왕불복"을 좋아한다. 평탄하고 태평하던 국면이 위태롭게 기울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无平不陂, 무평불피), 떠나가는 것이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无往不復, 무왕불복).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쇠운의 조짐이 보이는 때에는 그러한 법칙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면서 간난 속에서도 올바른 미래를 향해 물음을 던져야 한다(艱貞, 간정).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 소환된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 온다'는 말이다. 연(緣)에 따라 윤회를 한다는 거다.

4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나 사태가 일어나면, 나는 '오이관복"한다. 이 말은 <<도덕경>>의 제16장에 나온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이다. 이 말은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움을 끝까지 하고, 고요한 상태를 돈독하게 하여 지키는 일상을 꾸리라'는 말로 읽는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오이관복(吾以觀復, 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한다. 나는, 최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면, 이 문장을 소환하고, 비우고 고요 해지려고 한다. 특히 "오이관복(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을 소환하며 나를 위로 한다. 세상 모든 이치이다.

 나는 이 문장을 만날 때마다 "되돌아 감"에 늘 주목한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 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이를  노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제40장)이라 말한다. 나는 오늘 아침도 '되 돌아 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지금 정국이 돌아가는 것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세상은 작용이 있으면 그 반대의 힘인 반작용이 동시에 작동한다.

5
 '극히 높은 지위에 있으면 교만함을 경계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되며, 몸가짐이나 언행에 조심해야 한다'는 "항용유회(亢龍有悔)"이란 말을 소환한다. <<주역>>에서 하는 말로,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주역>>에서는 만물의 변화가 아래에서부터, 내면에서부터 생긴다고 말한다. 높이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패가망신 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끝까지 날아오른 용은 내려올 일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을지라도 민심을 잃고, 현인을 낮은 지위에 두기 때문에 그 보좌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무엇을 해도 뉘우칠 일 밖에 없게 된다. 

"항용(亢龍)"에 대한 공자의 해석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빠르게 높이 올라가면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교만하여 민심을 잃게 되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으므로 "항용"에 이르면 후회하기 십상이니 이것이 "항룡유회"라는 거다. 따라서 보름달보다는 열 나흘 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는 몽우리일 때가 더 가치 있으며, 완전 중앙이 아닌 미앙궁(未央宮)이 더 여유가 있다. 새길 일이다. "물극즉반(物極則反)", '만물이 극에 이르면 기우는 법'이다. 보름달이 된 달은 조만간 작아져 초생달이 된다. 만조의 바다는 썰물로 갯벌을 드러낸다. 나라가 융성하면 쇄국의 운명을 겪는다. 생의 성숙한 노년은 죽음의 쇠락을 맞게 된다. 차고 넘치면 좋은 건만은 아니다. 왕성한 풀들은 낫을 맞게 된다. 가득 차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 성장한 연륜은 쇠락을 맞게 된다. 만월의 달은 더 커질 수 없고 자연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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