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식탁은 배를 채워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9. 4. 17:05

342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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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따뚜이(ratatouille, 섞다는 뜻)는 프랑스 요리의 일종으로 여러 가지 채소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익힌 남부 전통 채소 가정 요리다. 토마토가 반드시 들어간 모습이 스파게티 소스가 연상되는지 고기를 좀 넣었을 것이라는 첫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전통적으로 만들면 100% 채소 요리이다. 채소만 넣었는데도 신기하게 맛있다고 하고 덕분에 채식주의자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다. 다양한 채소를 사용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지, 토마토, 꾸르제트(Courgette/애호박), 양파, 피망 등이다. 조림과 스튜의 중간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원래는 토속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투박한 맛을 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요리를 제목으로 한 미국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는 쥐 레미와 말단 요리사인 알프레도 잉귀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린이 영화로서 제작되었지만 어른 분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주방의 토치 대상 1호인 생쥐 레미가 요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호화로운 빠리의 별 5개짜리 레스토랑에 우연히 들어가 실력 없는 견습생 랭귀니를 만나고 자신의 재능과 재기를 사용해 레스토랑을 구하게 되기까지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어를 알면, 라따뚜이(Ratatouille)를 'Rat+a+touille'로 나눌 수 있다. 그러면 '쥐가 휘젖고 다니다'란 뜻이 된다. 영화 애니메이션 속 레미는 촉각, 미각이 예민하고 머리도 비상해 영리한 쥐로, 책도 읽고 사람의 말도 알아듣는다. 누구보다도 호기심이과 탐구욕이 강하며, 쥐이면서도 미식을 추구해 요리 실력뿐만 아니라 요리사의 필수 조건인 순발력도 최상급이다. 이 작품의 주제인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를 대변하는 캐릭터이다. 늘 딸과 둘이 식탁을 함께하는데, 어제는 지인의 집에서 여러 명과 라따뚜이 등의 요리와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오늘 사진이 그 라따뚜이 요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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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식탁을 타고 온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식탁은 배를 채워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함께 하는 식사는 그래 중요하다. 게다가 우리들의 채소밭에서, 우리가 기른 채소로 식사하는 것은 아름답다.


식사법/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 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 마저 다 낭비해 버리 고픈 멸치 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밥 먹을 때는 말 하는 게 아니다." "음식 넘기는 소리도 내지 마라." 어릴 때 받았던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때는 열 명이나 되는 식구가 한 방에서 식사하는 데도 수저 딸그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조용했다. 선조들은 밥 먹는 걸 그만큼 엄숙하고 진지하게 여겼던 건 같다. 일상을 통해 도를 실천하는 선비 정신의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맛있다고 요란하지도 않았고, 맛없다고 투덜대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이제는 TV 음식점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듯 식도락을 넘어 식탐의 지경으로까지 되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게걸스레 먹는 모습을 보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식사법을 보면 삶의 양식을 알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먹는 모습이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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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다. 요리는 종합예술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만일 먹는 문화가 있다면, 그 때 먹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세련된 문화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식탁 매너의 시작은 음식문화를 즐기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근본적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맛있고, 보기 좋은 요리로 배를 채우다 보면 쌍방 간에 여유가 생길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열려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어,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말에 ‘한솥밥 친구'라는 말이 있다. 이를 영어로 말하면 ‘Companion’이고, 프랑스어로 말하면 ‘Compagne’이다. 이 말들의 어원을 분석해 보면, ‘동무, 동반자'란 뜻이지만 ‘같이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들은 모두 다 ‘함께 먹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이다. 먹는 즐거움을 공유하는 것은 곧 삶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 때 사랑은 식탁을 타고 온다. 그래서 식탁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워주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의 사랑과 정을 나누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쉽게 분노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사랑과 유대가 넘쳐흐르는 식사 공간의 증발과 식탁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 접촉 기회가 부족한 결과라고 본다. 한 시인은 얼굴 반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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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문화란 단순한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다. 요리는 종합예술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만일 먹는 문화가 있다면, 그 때 먹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세련된 문화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먹는 문화의 시작은 음식문화를 즐기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경험한 프랑스 인들은 ‘문화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프랑스인들의 독일인의 평가는 ‘문화가 없는 야만인’, 영국인의 평가는 ‘조잡한 문화를 가진 속물’, 미국인들의 평가는 ‘쌍놈에 졸 부자'이다. 이를 오만이라고 보기보다는 ‘문화와 가치'라는 잣대에 비추어 보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러면 문화 강대국의 프랑스를 이루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랜 전통, 화려한 문화유산, 세련된 삶의 습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적 전통에다, 미식문화, 먹는 즐거움에 애정을 갖는 식탁 문화를 반드시 끼워 넣어야 한다.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먹는 요리는 특별한 것이다. 프랑스들은 요리에 대해 말하면 쉽게 표정이 밝아진다. 따라서 프랑스 인들과 쉽게 사귀려면 맛있는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함께 먹고 즐기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어디 프랑스뿐이겠는가?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먹는다.’는 것이다. 그저 생존 차원의 먹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함께 즐기는 것이다. 단순히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겨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으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친근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맛있고, 보기 좋은 요리로 배를 채우다 보면 상호간에 여유가 생길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열려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어, 서로가 서로를 잘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먹을 것이 충분치 못해 ‘무엇을 먹을까?’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못 먹는 절대 빈곤으로부터 대부분 해방된 후, 이제는 ‘어떻게 먹을까?’를 사람들은 고민하기 시작하고 있다. 즉 ‘먹는다’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결과 중심적’으로 ‘빨리, 빨리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라는 식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들의 식사 문화를 ‘과정 중심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는 내 주장이다. "TV 먹방'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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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중요한 것이 음식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음식 앞에서 이 음식의 유래는 어떻고, 어떻게 해서 맛이 나는지 등등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패스트 푸드가 아닌 슬로 푸드를 고민할 때이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 태양, 빛, 열과 같은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이것과 연관하여 에너지 문제, 오존층 파괴, 자외선 과다 노출 문 등이 함께 연상된다.
▪ 공기와 숲이다. 대기 오염과 그로 인한 알레르기 문제 등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사흘간 공급이 중단되면 그대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귀중한 물이다. 수질 오염, 불 부족 문제들로 생각이 이어졌다.
▪ 먹거리를 생산해내고 있는 살아 있어야 할 흙이다. 토양 오염과 사막화 문제 등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단순히 우리는 태양, 공기, 물, 흙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생명 그 자체가 태양, 공기, 물, 흙의 화신이다. 즉 우리 자신이 바로 태양이고, 공기이고 물이고 흙이다. 이 일체성(一體性)을 매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먹거리를 통해서이다. 먹는다는 것은 땅의 생명력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채취한 음식물이다. 요즈음 TV를 보면 거의 다 먹는 방송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먹는 일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사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위기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땅과 관련성도 없이 저 혼자 떠돌고 있는 음식들, 단지 영양의 수치로 환원되어 기호로서 존재하고 있는 식품들, 가공되고 인공 첨가물까지 가미된 무의만 식품인 것들이다. 이것들은 생명을 담고 있는 진정한 먹거리가 아니다. 그러면서 먹는 일 지체도 동시에 위기에 처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식습관 오염 역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식생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염된 식품이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의 식생활이 오염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 제철 자연에서 길러진 생명 그 자체로의 먹거리 대신 인공적으로 재배된 것을 먹기 때문이다.
▪ 우리 땅에서 자란 농산물 대신 지역적으로 떨어진 외지에서 들어 온 수입 식품을 먹기 때문이다.
▪ 알맞은 양을 먹는 대신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식물을 먹기 때문이다.
▪ 회식, 파티, 피로연 등 각종 모임 등에서 제공되는 행사 음식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기 대신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획일적인 식품을 먹기 때문이다.
▪ 자연에서 성장한 식품이 아니라, 재배되고 가공되고 유통 과정에 화학물질이 첨가된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 식물성 식품 중심에서 동물성 식품 중심으로 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TV 먹방'은 단순히 음식물과 요리법에 관한 새로운 제안에서 더 나아가 식생활 전체를 검토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주장하는 사회 문화 운동도 함께 되었으면 하고 나는 바란다. 그 문화 운동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 뿌리내린 생명체를 섭취하는 식생활을 부활 시키는 것이고, 공장에 의존하지 않는 식생활을 온전히 되살리는 것이다. 적당한 양의 곡물과 채소를 자연의 기후에서 재배하여 그것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일기도 하다.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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