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 사회에는 잡초가 너무 많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31. 14:01

341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6일)

1
어제는 해방 80주년이다. 어졔 조국 대표는 석방되었고, 윤 부부는 감옥에서 계속 보내야 한다. 세상이 역전되었다. 그러니 진실하여야 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그곳에서 있어야 죽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가이장구(可而長久)'가 필요하다. 노자 <<도덕경>> 제44장의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이 말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화려하면 단명 한다.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과 남아야 할 때와 떠나야 할 때를 분별 할 줄 아는 지혜는 인생에 더없이 중요하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필요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 배추밭에서는 인삼도 잡초이다. "미워서 뽑으려 하나 잡초 아닌 것이 없고, 좋아서 두고 보자니 꽃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을 잘 안다. 애당초 잡초란 없다. 단지 있어야 할 제자리를 가리지 못해 잡초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잡초가 너무 많다.


파치의 시간/조현정

꽃을 솎는 일은 나무에게서 나비를 빼앗는 일
이유 없이 헤어진다 한 꽃이 다른 꽃들과

비바람과 벌레와 새들에게 기꺼이 몸을 내어줌으로
농부의 곁을 지켜주는 과일을 먹는다

파치의 시간으로 잠들고 깨어나는 나는
가슴에 몇 백 개의 꿈을 더 가졌다
나는 갖가지 영혼의 양초를 파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상한 과일들이 빌려준 시간 속으로
성한 과일들이 들어온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인 그림자 속으로
달콤한 햇빛 한 줌 기울어온다


약간 벌레 먹은 것이나 비바람에 떨어져 멍이 든 복숭아를 싸게 사 먹은 적 있다. 파치 중에서 그나마 성한 걸 골라 팔고, 상태가 안 좋은 것들은 버려졌을 것이다. 배달된 복숭아를 칼로 도려내며 먹다 보니, 정품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농부는 온전한 과일을 생산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거름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봉지도 씌워줘야 한다. 꽃과 작은 열매를 솎아줘야 과실이 튼실해 진다. 시인은 “솎는 일”은 “빼앗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한다. 시인의 남편은 과수 농사를 짓는 농부다. 몸이 아픈 시인은 자신을 파치와 동일시한다. 짐이라도 되는 양 미안해 한다. 남편이 과수원에서 일하는 동안 시인은 “파치의 시간으로 잠들고 깨어”난다. 아픈 몸이지만 꿈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남편이 과일을 생산하듯, 시인은 “갖가지 영혼의 양초”에 불을 붙인다. 한 그루 나무가 열매를 풍성히 맺는 것처럼 시를 쓴다. “성한 과일들”은 “상한 과일들”의 희생으로 완성된다. 우리 삶도 누군가의 희생의 산물은 아닐까?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멋진 해설이다.

2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이야기는 명태균이 한 말이라 한다. 윤이 경우는 장님이지만 칼을 잘 휘두르기 때문에 장님 무사라고 했고, 김거니 경우는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주술사, 장님의 어깨에 올라타 주술을 부리라는 의미로 명씨가 김거니에게 이야기 했다는 거다. 명이 윤에게 '장님 무사라고 한 것은, 윤의 판단 능력이나 실질적 주도권이 없음을 암시했던 것이다. 지금 다시 보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닌 듯 하다. 

윤은 그동안 검찰 권력과 대통령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것 같았지만, 그 결정 뒤에는 항상 김거니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그녀가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끈 것이다. 윤은 장님처럼 자신의 판단 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반면 김거니가 마치 주술사처럼 그의 삶을 조종했다. 그 두 사람은. 인문학적으로, 인간적 교만과 권력의 마법에 빠져 살았음이 드러났다.

이젠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 하나는 서울 구치소에, 또 하나는 남부 구치소에 갇혔다. 이젠 장님 무사의 칼춤도, 앉은 뱅이 주술사의 주술도 끝이다. 이 사건은 우리가 인간의 교만과 권력의 거짓, 어리석은 주술에 대한 교훈을 준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이다. 이말은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란 말이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 하늘이 모르는 죄가 있는 듯하지만, 벌 주기에 적당한 때를 선택할 뿐이다. 

능력은 있지만,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거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장님무사와  걸을 수 없지만 강력한 주술 능력을 자지고 있지만, 직접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운 앉은 뱅이 주술사는 서로 다른 강점과 약점을 가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지 못하면 불행하다. 그런 사람을 또 아제 언론에서 봤다.

3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 말은 '걸주같이 포악한 인간이 기르는 개가 요(堯)와 같은 성군(聖君)을 보고도 짖어댄다'는 뜻이다. 개는 주인만을 알아볼 뿐 그 밖의 사람에게는 사정을 두지 않는다는 거다. 나아가서 인간도 상대의 선악(善惡)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섬기는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목격된다.

'걸견폐요(桀犬吠堯)'는 <<사기(史記)>의 <회음후편(淮陰侯篇)>에 나오는 고사이다. 원래는 '도척(盜跖)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지는다(跖之犬吠堯, 척지견폐요)'였다 한다. 요(堯)는  '흙을 높이 쌓고 그 위를 평평하게(兀) 만들었다는 데서, ‘높다’, 즉 ‘요임금’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나라 말 때 괴통이라는 책사가 있었다. 어느 날 괴통은 한신을 찾아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항우는 남쪽을 차지하고 있고, 유방은 서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세력은 서로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왕께서 누구와 연합하느냐에 따라 천하의 대세는 좌우 될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항우가 망하면 대왕의 신변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동쪽을 대왕께서 차지하고 대세를 관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일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한신은 며칠을 두고 고심하다가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다. 얼마 후 유방에 의해서 천하가 통일됐다. 그리고 한신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다. 한신은 죽음 직전에 이르러 “나는 괴통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참으로 후회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을 전해들은 유방은 괴통을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괴통에게 물었다. “네가 한신에게 반역할 것을 권고한 것이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신이 반역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제 말을 듣지 않아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유방은 그를 기름 가마에 삶아 죽이라고 명했다. 이때 괴통은 원통함을 하소연하며 말했다. “도척 같은 도둑놈의 개도 요임금을 보면 짖습니다(跖之狗吠堯, 척지구폐요).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개는 원래 주인 이외의 사람을 보면 짖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개가 짖는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한신만을 알고 있었을 뿐 폐하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신에게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이런 저를 삶아 죽인다면 세상 사람들은 폐하를 비웃을 것입니다.”

유방은 괴통의 말을 듣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살려 주었다. 이 때부터 '척구폐요'가 '걸견폐요'가 된다. 이 말은 ‘개는 주인만을 섬긴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교훈을 준다.
▪ 개가 오로지 주인만 알아보듯, 사람들이 양심의 판단에 따르기 보다는 맹목적으로 윗사람에게 충성함을 한탄하는 말로 읽는다. 악한 자와 한패가 되어 어진 이를 미워하거나 또는 선악을 불문하고 각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거다. 개는 그냥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에 충성하지 그 사람의 인성과 인품을 보고 충성하지 않는다는 거다. 자신의 주군을 잘 못 만나 결과적으로 개가 된 인물들이 역사 속에 많다. 조심하여야 한다. 까닥 잘못하면 바로 개새끼가 될 수 있다. 
▪ 요즘은 여러 주인을 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낯선 사람을 보고 짖기보다는 여기저기 꼬리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철새 정치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은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때문에 허상과 미몽에 사로잡혀 철새가 돼서는 안 된다. 세상이 각박해 질수록 우리 모두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 의리와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걸견폐요'의 교훈일 수도 있다.

4


한국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은 '큰소리로 길게 탄식하며, 일본의 멸망을 미리 조문한다'라는 뜻이다. 안중근 대한독립군 중장이 뤼순 감옥에 있을 때 써서 일본인 간수에게 전했고 일본인 관료가 보관하다가 후손에게 물려줬고 최근 경기도가 나서서 협상 끝에 들여온 글이다. 일본 도쿄에서 발견된 지 25년, 안 의사 순국(1910년 3월 26일) 1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유묵이란 죽기 전 남긴 글씨나 그림을 뜻하는 말로, 안 의사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쓴 서예 작품을 가리킨다.

이 유묵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엄하게 꾸짖으며,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만큼 향후 전쟁에서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내용이다. 안 의사가 중국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에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묵 왼쪽 맨 아래에는 안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폭 41.5㎝, 길이 135.5㎝ 크기의 명주천에 쓴 작품으로, 왼쪽 아래 수결란(서명하는 곳)에 '일천구백십년 삼월 동양지사(一千九百十年 三月 東洋志士) 대한국인 안중근 여순옥중서'라고 쓰여 있다. 연기를 '1910년'이라는 서기 연호로 적었고, '동양지사'라는 글자를 남긴 것이 그동안 확인된 안 의사의 유묵과는 다른 점이다. 

5
자유(自由)라는 말은, 서양으로부터 freedom, liberty 등이 소개되자 이들의 번역어로 선택되었다. “스스로(自)” “말미암다(由)”로 구성된 자유라는 말은, 
1. ‘속박 됨이 없음’의  'freedom'과
2. ‘억압에서 벗어남’의 'liberty(해방)'의 개념을 담아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자유를 축자적으로 말하면,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간섭 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행동한다'는 의미로 알면 된다. 그래서 자유는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뜻의 자주(自主)나 “스스로 세운 규율에 따라 행한다”는 뜻의 자율(自律) 등과 늘 함께한다. 중요한 것은 자율이 “무율(無律)”, 곧 규율 없음을 뜻하지 않는 것처럼, 자주가 “나 자신의 주인이라고 하여 남을 부릴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자유 또한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유는 절대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음'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혼동한다. 자율이 '스스로 세운 규율을 자발적으로 지킴'인 것처럼, 자주가 타인도 그 자신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전제 아래 자신의 주인됨을 실현 함인 것처럼, 자유도 어디까지나 타인의 자유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서의 자유다. 자기에게만 자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누구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개인이나 한 집단에만 허용된 자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요약하면,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 것'이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억압이 제거된 상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따라서 내가 스스로에게 이유가 되어 하는 언행은 거침이 없는 거다. 

그러나 자유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데서 출발한다. 삶에서의 많은 문제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인식이 우선이다. 자기 인식은 자신을 알려는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자신을 항상 응시하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사제나 목사에게 달려가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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