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이가 많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20. 18:16

341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2일)

1
작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유엔에서는 65세 이상 인구가 14%에 이르면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super aging society)로 분류한다. 우리는 2014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2035년 무렵에는 전체 인구의 30%가 65세 이상을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던 일본의 65세 이상 노인비율이 지난해 30%에 육박하였다.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만큼 사회적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시간이 급박하다.

2
좀 길지만, 법정 스님의 글을 공유한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 이다.

잊을 수 없는 사람/법정

수연스님! 그는 정다운 도반이요, 선지식이었습니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다.
항시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그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959년 겨울, 나는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혼자 안거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음력 시월 초순 
하동 악양이라는 농가에서 탁발을 했다.
한 닷새 한 걸로 겨울철 양식이 되기에는 넉넉했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오니 텅 비어 있어야 할 암자에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걸망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 보니
낯선 스님 한 분이 불을 지피고 있었다.
나그네 스님은 누덕누덕 기운 옷에 해맑은 얼굴,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합장을 했다.
그때 그와 나는 결연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맺어질 수 있는 모양이다.

지리산으로 겨울을 나러 왔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반가웠다.
혼자서 안거하기란 자유로울 것 같지만,
정진하는 데는 장애가 많다.
더구나 출가의 연조가 짧은 그때의 나로서는 
혼자 지내다가는 잘못 게을러질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양주(밥 짓는 소임)를 하고 
그는 국과 찬을 만드는 채공을 보기로 했다.
국을 끓이고 찬을 만드는 
그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하루 한 끼만 먹고 
참선만을 하기로 했었다.
그때 우리는 초발심한 풋내기 사문들이라 
계율에 대해서는 시퍼랬고 바깥일에 팔림이 없어 
정진만을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해 겨울 안거를 우리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뒤에 안 일이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순일하게 안거를 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듬해 정월 보름은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
해제가 되면 함께 행각을 떠나 
여기저기 절 구경을 다니자고 
우리는 그 해제 철을 앞두고 마냥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해제 전날부터 나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구미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자꾸만 오한이 드는 것이었다.
해제는 되었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산에서 앓으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에 의료기관도 없다.
그저 앓을 만큼 앓다가 낫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철저하게 무소유였다.
밤이면 헛소리를 외친다는 내 머리맡에서 
그는 줄곧 앉아 있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면 물을 떠오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갈아주느라고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잠깐 아랫마을에 다녀오겠다고 나가더니 
한낮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어도 감감소식이었다.
나는 몹시 궁금했다.

밤 열시 가까이 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의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약을 마시라는 것이다.
이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그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암자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이래야 
40여 리 밖에 있는 구례읍이다.
그 무렵의 교통수단이라고는 구례 장날에만 
장꾼을 싣고 다니는 트럭이 있었을 뿐이다.
그날은 장날도 아니었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서로가 돈 한 푼 없는 처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구례까지 걸어가 탁발을 하였으리라.
그 돈으로 약을 지어온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 것이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심신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반의 정이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토록 간절한 정성에 낫지 않을 병이 어디 있겠는가.
다리가 좀 휘청거리긴 했지만,
그 다음 날로 나는 거동하게 되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주었다.
평상심이 '도'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자비의 화신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3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나이 드는 방식이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점검하고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 늘 책을 읽는 노인이어야 한다. 아무리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책을 읽지 않으면 '납작한' 사람이 된다. 책은 내면의 깊이를 만든다. 그 깊이는 한 순간에 생기기 않는다.  평생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서 얄팍함이 드러난다. 영혼에 두께가 있어야 한다. 언젠가 적어 두었던 글이다.

누구나 각자 자신의 생각의 높이나 두께 이상을 살 수는 없다.
사회도 시민들이 가진 생각의 높이나 두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생각을 스스로 하는 사람은 두텁고, 선도적이며 변화무쌍하다.
생각을 빌려오는 사람은 얇고 낮으며 특정한 생각에 갇히기 쉽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세계를 사유한다. 사유를 사유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심리적 희망 사항을 객관적 사실로 착각한다.
단순함과 낙관론에 빠진 지성의 폐허이다.
지성의 두께를 두텁게 해야 한다.

▪ 내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하지 않는다. '절대로', '반드시' 같은 단어를 피해야 한다. 살다 보면 옳다고 믿었던 수많은 일들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경험하게 딘다.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여유를 가져라. 여유를 가져야 '충분한 삶'을 살 수 있다.

'위대한 삶'이란 더 많은 부와 명성을 누리려고 남들과 발버둥 치는 삶을 말하고, '충분한 삶'이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식하면서 적당한 여유와 윤택에 만족하는 삶을 뜻한다. 위대함을 바라고 완벽함을 좇기보다 적절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행복에 이른다는 거다.
 
요즈음 나의 화두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다. '충분한 삶'이 아닐까? 충분한 삶은 개인의 물질적 안온함이나 정신적 만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가 말하는 소속감, 즉 "지속적이고 긍정적이며 중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보편적 욕구"의 충족도 필요하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타인을 압도하는 힘을 기르기보다 서로 존중하고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그들과 넉넉히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삶은 충분해진다. 나아가 '충분한 삶'은 좋은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불공정과 부정의로 뒤틀린 사회, 불평등을 양산하는 승자 독식 경제, 환경 파괴로 팬데믹과 기후 재앙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에선 누구도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한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생태적인 사회를 이룰 때 삶은 충분할 수 있다. 무한 풍요가 아니라 적절함 속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 양보할 줄 아는 노인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몫과 아랫사람에게 양보해야 하는 몫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일 잘하는 선배, 뛰어난 성과를 내는 선배보다는 인생의 멘토, 좋은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얕은 경험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는 노인이 된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얕은 인생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마라. 서로가 불완전한 존재감을 깨닫고 둥글게 살아라.
▪ 할 말을 잘 참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 젊은 이들에게는 '할 말은 하고 살아라' 조언하겠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 '할 말도 가끔은 참아라' 조언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손해 볼까 봐 전전긍긍하며 속에 있는 모든 말을 펼쳐두는 것만큼 없어 보이는 게 없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