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원했던 삶의 목표는 인자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20일)
아침부터 굵은 비가 내린다. 맨발 걷기로 아침을 시작하는데, 오늘은 지난 8월 8일에 멈춘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을 읽는다. 제2장의 <사랑> 편을 다 읽을 생각이다. 사랑은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훈육을 하여야 한다는 거다. 스캇 펙은 자기 훈육의 힘은 사랑에서 나오며, 이것은 의지의 한 유형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 훈육은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훈육에 따라 행동한다"는 거다. 자기 훈육을 자기 수련, 수행으로 보고, 이러한 의지의 힘이 '인(仁, 사랑)'에서 출발 한다'로 나는 이해했다. 공자의 주장도 한 마마디로 '사랑(인, 仁)이다.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분명히 그의 영적 성장에 최대한 기여하도록 행동의 우선 순위를 정하게 된다는 거다.
공자가 원했던 삶의 목표는 인자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래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자왈: 강의목물, 근인(子曰: 剛毅木訥, 近仁)". 공자가 본 "어진 사람은{사랑이 훈육된 사람은] 강직하면서 의지가 굳은 사람이고, 일상에서 질박한 것을 좋아하고 과묵하면서 진중한 이"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1) 강(剛): 강직하다는 말로 마음이 꼿꼿하고 올곧다는 뜻으로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유리함과 불리함에 따라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이다.
2) 의:(毅)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의지력이 강한 것을 뜻한다. 강(剛)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과 관련된다면, 의(毅)는 결심한 것을 실현해 내려는 추진력과 관련된 표현이다. '강'은 펀치 력이 강하다는 취지라면, '의'는 맷집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강'은 신념이고 '의'는 그것의 실천력이 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3) 목(木): 그냥 나무로 읽어 목석처럼 뻣뻣하거나 멍청하다는 뜻보다는 통나무(樸)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나무는 사람이 꾸밈과 감춤이 없고 화려와 사치를 싫어하며 겉모습보다 내면의 뜻을 더 중시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 눌(訥): 말솜씨가 없어서 더듬거리며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입이 무겁지만, 꼭 해야 할 말은 하기에 진중하다는 뜻이다. 재잘재잘 떠들어대지 않을 뿐 입을 열면 조리 있게 말을 잘하기에 함부로 얕볼 수 없다는 거다.
어진 사람[사랑이 훈육된 사람]은 그냥 착한 사람이 아니다. 속이 없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 강직함이라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한 불굴의 추진력이 굳건함, 즉 '의'이다. 그에 비해, 질박함과 진중함을 갖추는 일은 일상적인 생활 태도이다. 매일 아침마다, "강의목눌"을 소환하여, 내 안의 어진 마음(사랑)을 키우라는 것이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제2도 <서명>의 하도(下圖) 두 번째 문장에 "害仁曰賊(해인왈적)"이란 말이 나온다. 공자와 맹자에게 인(仁)은 완전한 인간성을 의미한다. 인은 우주적 가족 공동체의 사랑과 질서, 조화와 평화(仁義禮智)를 총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리고 인은 동시에 인간이 자기 수련(수양 修養)을 통해 지향해야할 최고의 이상적 경지이다. 그러니 인간은 타인과 사회만이 아니라 우주적 공동체의 책임을 어깨에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책임을 방기하고, 그 우주적 공동체의 책임을 훼손하는 자는 도적, 즉 도둑이다.
스캇 펙이 말하는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사랑은 정신 치료다"고 말한다. 그래 그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는 거다. 그는 사람들을 찌르고 가르는 것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 몸의 기이한 변화나 몸에 들끓는 세균보다는 마음의 기이한 변화가 더 흥미로웠다 한다. 나 자신도 몇 년 전부터 <인문 일지>를 쓰며 마음의 변화를 들추어 보았는데, 그 변화가 흥미로웠다. 그러면 내 안의 정신의 매듭이 풀리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래 그 습관은 지금까지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가치관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일상의 행동이 단순 해졌다. 난잡한 행동 패턴이 사라졌다.
나는 자신을 더 성장시키겠다고 결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면 놀랍고 반갑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신뢰가 앞서야 한다. 이건 자기 사랑에서 출발한다. 다른 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힌두교의 수도승들도 사랑이 그들의 힘의 원천임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사랑의 주제 앞에 난감해 한다. 하나는 진정한 사람과 낭만적인 사랑을 혼돈한다. 그리고 서양의 세례를 받으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측정 가능한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사랑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완전하게 측정할 수 없고 이성을 초월한 현상이기 때문에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양성자는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졌는데, 두 개의 쿼크는 결합하면서 질량이 몇 백배 커진다고 한다. 그 결합을 돕는 것이 세 번째 쿼크라 한다. 나는 그 세 번째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한 부부의 몸 무게를 단순히 결합 하면 120-130Kg이지만, 여기에 어려움이 생길 때 그 부부가 사랑이 결합되면 그 몸무게는 얼마나 더 올라갈지 모른다. 그게 측정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가 아닐까?
글이 길어진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다만 언젠가 내 일기에 적어 두었던 것을 다시 꺼낸다. 사랑은 상대방의 웃음 속에서 눈물을 살피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귀한 시간 안에서 나를 꽃피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할 수 없는 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좋다."(프리다 칼로) 더 이상 발전이 없는, 비생산적인 관계, 즉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사랑하기가 더 이상은 불가능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머무를 필요가 없다. 관계를 끝낼 줄 아는 것이 감정적 성숙함이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이어지는 사유는 나의 다음 블로그를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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