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창조+산풍 고 (2)

340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4일)
1
만평의 제목 "수치창조"가 흥미롭다. 우리 사회는 지금 수치(수치)를 잃어버렸다. 도통 창피한 줄을 모른다. 빨리 우리 사회의 교육 문법이 바뀌어야 한다.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자신의 양심의 발견이 깨달음이며, 양심의 훈련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양심에 복종하는 행위가 자유이며, 다른 사람의 양심을 경청하는 행위가 배려이며 친절이다.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 양심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가 무식이며,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언행이 수치(羞恥)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 아침은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화두이다. 여기서 "면목(面目)"은 얼굴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가끔 ‘면목 없다.’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면(面)’은 얼굴이고, ‘목(目)’은 눈이라는 뜻이다. ‘얼굴’과 ‘눈’이라는 글자가 만나 “얼굴의 생김새”, “남을 대할 만한 체면”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눈을 쳐다보면 그 사람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마음속 생각이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밖으로 드러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은 그 사람 전체를 대표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준다.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정면으로 얼굴을 찍은 증명사진은 우리의 전체 모습을 대표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얼굴 도장을 찍는다’는 말 처럼, 직접 대면(對面)해서 얼굴을 마주 봐야만 할 때가 많다. 이렇듯 얼굴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낸다.
반면에 사람은 부끄러운 행동을 하거나 죄를 지으면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인다. ‘얼굴에 먹칠을 했다’, ‘얼굴을 들 수가 없다’라며 얼굴을 가린다. '체면(體面)'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텔레비전 뉴스에 비칠 때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한다. 부끄러워 자기 얼굴을 숨기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목이 서지 않는' 짓을 하고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최근에 언론에 너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사람을 일러 ‘후안무치(厚顔無恥)’라 하고 ‘철면피(鐵面皮)’라며 흉을 본다. ‘후안무치’는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고, ‘철면피’는 '쇠로 만든 낯 가죽'이라는 뜻으로, 염치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가리킨다. '후안무치'에서 '후'를 두터울 '후(厚)'로 보지 않고, 뒤 '후(後)'로 쓰고, '얼굴이 뒤에 있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로 읽는 이도 있다. 이렇게 ‘얼굴’과 ‘눈’, 둘을 합친 글자 ‘면목(面目)’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뜻한다. 잘못을 했거나 다른 이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면목 없습니다’ 라며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춘다. 성경에서도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을 때 얼굴을 들어 하느님을 볼 수가 없으며,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감추신다.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창세 4,7), “모세는 하느님을 뵙기가 두려워 얼굴을 가렸다.”(탈출 3,6), “저의 허물에서 당신 얼굴을 가리시고 저의 모든 죄를 지워 주소서.”(시편 51,11)
2
지금 우리 사회는 ‘염치’가 실종된 '후안무치'의 시대다. 어떤 악행과 실행보다도 번연히 제가 저지른 일 앞에서 뻔뻔스레 구는 철면피들이 더욱 놀랍다. 그렇다. 화가 나기에 앞서 놀랍다. 후안무치한 뻔뻔함으로 억지와 궤변이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언론에 너무 많이 등장한다. 억지는 무식하게 '똥 고집'을 부리는 것이고, 궤변은 제법 유식하게 말의 뜻을 바꾸거나, 사실의 의미를 바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며, 진실을 오도하거나 호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속이 뻔히 다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하며, 잡아떼는 뻔뻔함으로 억지와 궤변을 늘어 놓는다. 그리고 뻔뻔한 사람은 부끄러움이 없고 그래서 늘 당당한 척 한다. 창피함을 모른다. 이것도 뻔뻔함의 또 다른 특징이다. 우리는 누가 그런지 다 안다. 그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로 작정 한 사람들이다. 이건 수치심, 아니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뻔뻔함이다. 거짓의 탈을 쓴 후안무치들이 판을 친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돈으로 매수한 듯'한 '기레기'들의 거짓 뉴스가, 그리고 자극적인 뉴스로 장사치처럼 자신의 기사를 팔아먹기에 혈안이 된 거지 같은 기사와 한 자리 혹시 얻을까 흑심을 품은 일부 어용 지식인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칼럼 등 역겹다.
그냥 세상에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반드시 돌아간다는 "극즉반(極即反)"만 믿는다. 정점에 도달하면 내려올 일 밖에 남지 않고, 반대로 최저점으로 추락하면 올라갈 일만 남게 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도 있다. 어떤 일이든 극에 달해야 반전이 생긴다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냥 차이로, 다름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차이로 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에 정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정점에 달하면 스스로 드러난다고 믿지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 나는 어두움은 빛을 이기지 못하듯이, 거짓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믿고 기다릴 뿐이다.
3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제 읽다 멈춘 <<주역>> 제18괘인 <산풍 고> 괘의 <단전>부터 읽고 공유한다.

<<단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사>는 "彖曰(단왈) 蠱(고)는 剛上而柔下(강상이강하)하고 巽而止(손이지) 蠱(고)라. 蠱(고) 元亨(원형)하야 而天下(이천하) 治也(치야)오 利涉大川(이섭대천)은 往有事也(왕유사야)오. 先甲三日後甲三日(선갑삼일후갑삼일)은 終則有始(종즉유시) 天行也(천행야)라" 이다.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고(蠱)는 강(剛)이 위에 하고 유(柔)가 아래하고, 겸손해서 그침이 고(蠱)이다. 고(蠱)가 크게 형통해서 천하가 다스려지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가서 일이 있는 것이고, ‘갑으로 먼저 삼일을 하고 갑으로 뒤에 삼일을 한다’는 것은 마치면 곧 비롯함이 있음이 하늘의 행함이다'가 된다. TMI: 巽:겸손할 손, 治:다스릴 치, 終:마칠 종, 始:비롯할 시.
다시 말하면, 강이 올라가고, 유가 내려와서 공손하게 그치는 것이 <고(蠱)괘>이다. "고가 매우 형통한 것"은 천하의 질서가 바로잡히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너면 이로운 것"은 나아가면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하늘의 행("天行")함이기 때문이다.
<택뢰 수(澤雷 隨)> 괘와 마찬가지로 <산풍 고(山風 蠱)> 괘 역시 삼음삼양(三陰三陽) 괘이다. <택뢰수> 괘는 <천지비> 괘에 그 체를 두고 있지만, <산풍고> 괘는 <지천 태(地天泰)> 괘에 체를 두고 있다. <지천태> 괘에서 초구의 양강(陽剛)이 위로 올라가고 상육의 음유(陰柔)가 아래로 내려오니 태평한 세상에 일이 생겼고, 괘덕으로 보면 내괘 <손 ☴> 바람으로 겸손하고 외괘 <간 ☶> 산으로 그치는 것이 고(蠱)이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剛上而柔下(강상이강하)"는 <지천 태> 괘의 '초효'와 '상효'의 이동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괘 <손괘>에서 '공손하다(巽)'는 뜻이 나오고, 외괘 <간괘>에서 '그치다(止)'는 의미가 나온다("巽而止, 손이지"). 무조건 길하고 무조건 흉한 것은 <<역>>에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변화(易) 그 자체 뿐이다. 그래서 "고(고)"의 상활도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치고 공손하게 그치도록 함을써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는 덕이 있는 것이다. 바로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도 그 기원은 태평성대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태평한 세상에서는 크게 형통해서, 천하의 일을 잘 다스려야 한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가서 해야 할 큰 일이 있다는 것이고, "先甲三日後甲三日(선갑삼일후감삼일)"은 천도의 운행이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공전하면서 춘하추동 사시의 변화를 일으키고, 지구가 자전하면서 낮과 밤의 교차가 끊임없이 일어나듯이, 마치면 곧 비롯함이 있는 것이다. 인생사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이다. "終則有始(종즉유시)"를 통해 공자는 "선갑삼일 후갑삼일"이 '신임계갑을병정'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임을 인식하고 있다. '신임계'로 하늘의 시간이 끝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갑으로 시작되어 '을병정'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순환이라는 것이다.
4
<<대상전>>은 "象曰(상왈) 山下有風(산하유풍)이 蠱(고)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振民(진민)하며 育德(육덕)하나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蠱)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진작시키며 덕을 기른다'가 된다. TMI: 風:바람 풍, 振:떨칠 진, 育:기를 육. <고괘(蠱卦>는 산 아래에 바람이 부는 상이다. 이러한 상을 보고 군자는 내괘 <손풍(巽風) ☴>으로 백성을 고무진작(鼓舞振作)시키고 외괘 <간산(艮山) ☶>으로 덕을 기른다. 다시 말하면,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고) 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떨쳐 일으키고 덕을 기른다. 일을 해 나가는 것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따르는 백성(무리)들을 흥기시켜 일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또한 덕을 길러야 모든 일의 결과가 좋게 된다.
썩은 세상을 바로잡는 것은 뜻있는 소수의 힘민으로 가능하지 않다. 우리 현대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민중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어나 광포한 독재자들에게 맞서고, 국정을 농단한 적폐 세력과 무능한 권력자를 일소했듯이 반드시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민주주의와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 위대한 투사들이 앞장서 시대의 새벽을 향해 거룩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던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이 바람처럼 시민들의 가슴을 뒤흔들었기에 썩어 문드러진 세상의 살갗은 조금씩 치유될 수 있었다. 그들이 군자가 아니라면 누구도 군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育德(육덕)" 외괘 <간괘> 산의 상에서 나온다. 위대한 민주투사들이 원한 것은 악을 악의 방식으로 똑같이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듦으로써 선이 악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있었다. 우리 사회가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곳으로 진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이 '덕(德)'을 길러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는 세력의 저항은 끈질기다. 공자가 살던 시절의 세상이 지금이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악의 세력은 늘 "고(고)"의 사회로서 회귀를 꿈꾼다. 공자의 시대보다 지금이 나은 근거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존재에 있다.
5
<괘의>는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든 일은 앞서 행한 사람(조상․선배․선임자)들의 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길러 일의 마침과 비롯함을 신중하게 하라는 "진민육덕(振民育德)" 이다. 지금까지 읽은 괘들의 괘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시작한다.
▪ 제1괘 <중천건>: 자강불식(自强不息) -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 후덕재물(厚德載物) -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 창세경륜(創世經綸) -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 과행육덕(果行育德) -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 음식연락(飮食宴樂) -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 작사모시(作事謀始) -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 용민휵중(容民畜衆) -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 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 제9괘 <풍천소축>: 의문축덕(懿文畜德) -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
▪ 제10괘 <천택리>: 변정민지(辯定民志) -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
▪ 제11괘 <지천태>: 보상천지(輔相天地) -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
▪ 제12괘 <천지비>: 검덕피난(儉德辟難) -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
▪ 제13괘 <천화동인>: 유족변물(類族辨物) - 하늘 아래에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천하가 문명하여 함께 하면서도 각각 저마다의 성질과 특성을 헤아리고 상황을 잘 판단하라.
▪ 제14괘 <화천대유>: 순천휴명(順天休命) -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
▪ 제15괘 <지산겸>: 칭물평시(稱物平施) - 후덕한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부유함을 덜어서 가난함에 보태어 사회의 형평을 유지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공평하게 베풀어라.
▪ 제16괘 <뇌지예>: 작악숭덕(作樂崇德) - 인생을 겸손하게 살면서도 예악을 즐기고 덕을 숭상하면서 하느님과 조상에 대한 경배를 잊지 말라.
▪ 제17괘 <택뢰수>: 향회안식(嚮晦宴息) - 즐거운 마음으로 목표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 뒤에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이키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라.
▪ 제18괘 <산풍고>: 진민육덕(振民育德) -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모든 일은 앞서 행한 사람(조상, 선배, 선임자)들의 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니,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길러 일의 마침과 비롯함을 신중하게 하라.
앞에서 말했지만, <산풍 고> 괘의 "고(蠱)"자는 쟁반 위에 벌레(蟲)가 우글우글 모여 있는 모습이다. 쟁반은 음식을 담는다. 그 음식이 썩으면 벌레가 꼬인다. "고(蠱)" 자는 바로 그걸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주역>> <산풍 고>는 흔히 '부패의 괘'라고 불린다. "고(蠱)"는 벌레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벌레이다. 벌레 여러 마리를 한 병에 담아 놓으면 자기들끼리 먹고 먹힌다. 그 싸움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벌레, 그 놈을 바로 "고(蠱)"라고 했다. 그만큼 부패는 강성하고 뿌리 깊다. 썩은 냄새가 풀풀, 그러나 <<주역>은 <산풍 고> 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개혁으로 부패를 일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 지금은 '진정한' 적폐청산'으로 내란 세력을 단죄하고 척결해야 한다.
오늘 <인문 일지>를 마치면서, 나에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엘라 휠러 윌칵스(Ella Wheeler Wilcox)
오늘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요.
부자와 빈자는 아니에요. 한 사람의 재산을 평가하려면
그의 양심과 건강 상태를 먼저 알아야 하니까요.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도 아니에요. 짧은 인생에서
잘난 척하며 사는 이는 사람으로 칠 수 없잖아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도 아니에요. 유수 같은 세월
누구나 웃을 때도, 눈물 흘릴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죠. 내가 말하는 이 세상 사람의 두 부류란
짐 들어주는 자와 비스듬히 기대는 자랍니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남에게 당신 몫의 짐을 지우고
걱정 근심 끼치는 기대는 사람인가요?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