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7. 13:15

340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3일)

1
<<동의보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태과불급(太過不及)’ 상태로 태어난다. ‘태과불급’은 동아시아 철학의 오행(五行) 상극(相剋) 관계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적절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지나치게 과다하거나(太過), 부족한 것은(不及) 모두 병이라는 뜻으로 "태과불급 개위질(太過不及, 皆爲疾)'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다 어떤 식으로 든 기울어져 있다. 왜 그런 가? 우주 자체가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기울어짐 때문에 태양계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속 변화하는 거다. 기울어져 있어서 계속 차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기우뚱하게 태어났는데, 태어난 시, 공간 안에서도 계속 차이가 생겨난다.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만약 모든 게 세팅이 되었다면 평생 고민을 할 필요도 없고, 세팅 되어진 대로 살면 된다. 그건 재미없는 일이다. 늘 움직이고 변하고 있는 거라면 여기에 미세한 털끝만큼의 차이만 있어도 내가 온전히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일이다.

날씨가 덥다. 그래 흥미로운 시를 읽는다.

기울어짐에 대하여/문숙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자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보란다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다

노처녀였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짝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것도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슬쩍 기울어져 생긴 일이다
체 게바라도 김지하도
삐딱하게 세상을 보다 혁명을 하였고
어릴 때부터 엉뚱했던 빌게이츠는
컴퓨터 신화를 이뤘다
꽃을 삐딱하게 바라본 보들레르는
악의 꽃으로 세계적인 시인이고
노인들도 중심을 구부려
지갑을 열 듯 자신을 비워간다

시도 돈도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
슬쩍 기울어져 볼 일이다


2
오늘은 <<주역>> 제18괘인 <산풍 고> 괘를 읽기 시작한다. 인문 운동가가 더위를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외괘가 <간산(艮山) ☶>, 내괘가 <손풍(巽風) ☴>으로 이루어진 괘를 ‘고(蠱)’라고 한다. 산 아래에 바람이 불어오니 일이 생긴 것이다. 일은 항상 시작할 때와 마칠 때가 중요하다. 마치는 것은 선대(先代)의 일이요, 시작하는 것은 당대(當代)의 일이다. 당대의 일을 시작함에 선대의 일을 이어받아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는 선대(先代)로부터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다.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집안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다르게 보면, 내괘는 <손괘>로 바람인데, 외괘에 <간괘> 산이 있으니 바람이 산에 가로막혀 흐름이 차단된다. <<설괘전>>에 <간괘>는 열매("艮爲果蓏, 간위과라")라고 했으니, 과실에 바람이 들어 썩은 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고(蠱)"는 벌레 세 마리가 앞다투어 피를 빨아먹는 형상이니 열매가 썩어 벌레가 기어다니는 모습이고, 그 자체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욕망의 끝은 부패와 부정으로 점철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혹(蠱惑)'이라는 말이 일상에서 쓰인다. 이 말은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는 뜻이다. "고(蠱)" 자를 보고, '사발 위에 벌레 세 마리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는 이도 있디. '고혹'이라는 의미에 좀 몽환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 벌레가 보통 벌레는 아니었을 것이다. 독충으로 사람이 먹으면 병에 걸리거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을 것이다. 갑골문에는 이 글자가 '저주'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다. 고혹적인 여자를 프랑스어로 하면, '남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을 말하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이 아닐까?

도올 김용옥 교수의 강의를 들으면, "무고지화(巫蠱之禍)"라는 중국 역사 이야기를 한다. "무고(巫蠱)"는 독충을 쓰거나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어 저주받는 모습을 만들어 그 대상이 사는 곳 땅에 묻거나 하면 그 저주의 대상이 병들거나 죽거나 한다는 미신이다. 그런데 <<역>>에서 쓰는 "고(고)"는 그렇게 나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3
<괘사>는 "蠱(고)는 元亨(원형)하니 利涉大川(이천대섭)이니 先甲三日(선갑삼일)하며 後甲三日(후갑삼일)이니라' 이다. 번역하면, '고(蠱)는 크게 형통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로우니, 갑(甲)으로 먼저 삼일을 하며 갑(甲)으로 뒤에 삼일을 한다'가 된다. TMI: 蠱:곡식벌레 고·의심할 고·미혹할 고·일 고, 涉:걸어서 건널 섭, 甲:첫째 천간 갑.  "고"는 잘못 따르다 보니 부패한 세상이 된 것이지만,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패한 사회를 잘 다스리면 그것은 크게 형통한 것이다("蠱元亨, 고원형"). "利涉大川(이천대섭)"이라는 말은 "고(蠱)"의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긍정하는 표현이다. "고"를 다스리려면 앞에 가로막힌 큰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큰 일을 해내야 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 적폐들 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법이다. 기득권을 누리며 부와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은 법과 제도조차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줄 알기에 그들과의 싸움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다. '법꾸라지'들의 민낯을 우리는 지금 잘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은 형동한 것이다. 썩은 사회가 정화되면 가장 큰 혜택이 민중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험한 큰 물을 건너듯 지난한 대결을 하는 것이 이로운 까닭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해설도 있다. 고(蠱)는 선대의 일을 이어서 하는 것이기에 크게 형통하다. 큰일을 하는 것이 이로운데,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는 그 전후(前後)를 잘 살펴야 한다. 갑(甲)이라는 것은 일이 시작되는 시점을 말한다. 어떤 일이 시작된다는 것은 그 전의 일이 마무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先甲三日(선갑삼일)"은 그 전의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고, "後甲三日(후갑삼일)"은 일을 새로 시작할 때의 조심스러운 기간을 말한다.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先甲三日(선갑삼일)"은 '申(신), 壬(임), 癸(계)'이고, "後甲三日(후갑삼일)"은 '乙(을), 丙(병), 丁(정)'이니, 모두 壬, 申, 癸, 甲, 乙, 丙, 丁'의 7일 동안으로 '七日來復(칠일래복)"이다. 이 칠일의 주기 내에서 "고"를 다스리라고 하는 말이다. 일상 생활에서도 "선갑삼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새로운 법령을 제정하기에 앞서 3일 동안 신중하게 생각하고 만든 후에도 3일 동안 다시 검토 한다"는 뜻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 신중하고 꼼꼼한 태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해, "신임계'의 과정을 잘 거쳐야 '을병정'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신(申)'은 '완벽'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인간과 인간 사회에 있어서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은 인간이 가지면 고통이 수반되는 글자이다. 즉 여기에서는 부정부패가 극에 달아 민중에게 괴로움을 안기는 체제가 된다. '신'은 또한 씨앗으ㅢ 물상이다. 도려내야 할 썩은 사회를 씨종자 삼아 새로운 활력이 넘치는 사회를 피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신임계'의 뜻이다. 씨앗이 수기(수기)에 풀어지는 과정이다. 체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이다.

그렇게 피어난 甲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상징한다. 乙은 활력을 회복한 민중이고, 丙은 부정부패가 사라진 찬란한 문화, 문명 사회의 표상이다. 정은 물질문명만의 지속적 확장을 멈추고 정신적 내실을 기하며 문명 사회의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고치고 다듬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고(고)"의 사회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변모하며, 인간의 사적 탐욕도 공동체 차원의 건강한 욕망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4
<<주역>>은 음양(陰陽) 기운의 양상으로 자연변화의 원리를 나타내고 있고, 또한 음양기운의 변화양상은 세상사의 현실적인 변화에도 부합되고 있다. 세상사의 변화 절도(節度)는 책력(冊曆)으로 나타나고, 모든 일은 그 책력에 기준하여 비롯함을 정하고 있다. 우리 동양권에서 책력을 표기하는 기준은 간지(干支), 즉 '60갑자'였다. 천간(天干)을 기준으로 할 때 갑(甲)은 일의 시작을 의미한다. 

천간(天干)은  '甲, 乙, 丙, 丁, 戊, 己, 庚, 申, 壬, 癸'로 10간이다.
- 甲은 밭 한가운데 씨를 뿌리면(田), '갑옷 갑'자가 땅 밑으로 뿌리를 내린다(갑)는 뜻이다. 그러므로  갑은 물건을 감추어주는 상자 갑(匣) 자라 하여 갑의 뿌리를 땅 속에 감추어 둔다는 의미를 지닌다.
- 乙이라는 것은 뿌리를 내린 갑이 꼬불꼬불(乙乙) 싹이 터 나오기 때문에 싹이 난다는 얼(孼) 자에서 따왔으니 꼬불꼬불 싹이 돋아난다는 뜻이다.
- 丙이라는 것은 싹이 더 나온 것이 밝게 나타난다는 빛날 병(炳) 자에서 따왔으니, 완전히(炳然) 몸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 丁이라는 것은 병으로 드러낸 생물이 정녕(丁寧)하고 장실(壯實)하다는 "장정 정(丁)'를 그대로 놓았으니, 즉 실하고 분명해진다는 의미이다.
- 戊라는 것은 정실해진 물건이 아름답고 무성하다는 무(茂) 자에서 따왔으니 아름답고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 己라는 무성하게 자란 물건이 자기 몸을 온전히 일으켰다는 지(起)자에서 따왔으니 자기 몸이 완전하 성립했다는 의미이다(己).
- 庚은 성숙해진 생물이 모습을 고친다는 갱(更) 자에서 따왔으니 정기를 견고하게 수렴하여 열매를 맺는다(庚)는 뜻이다.
- 申이라는 것은 임신한다는 임(姙) 자자 하여 모든 생물이 임(壬)의 수액(精液)으로 포태한다(姙娠, 임신)는 뜻이다.
- 癸는 헤아리고 분별한다는 규(揆) 자에서 따왔으니 임수(壬數)로 잉태한 생물이 남녀(암수)로 헤아린다(揆度, 규도)는 뜻이다(癸).

그러므로 甲의 사흘 전인 申에서 새롭게 시작해서(申申也, 신신야), 壬, 癸, 甲, 乙, 丙을 거쳐 丁에서 분명히(丁寧) 끝이 난다는 거다. 여기서 申은 '신(新)'의 뜻이 있으니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이다. '정녕'은 '안녕(安寧)'의 뜻이다. 그래서 향교 같은 곳에서 제사 지낼 때에 丁일을 받아 지맨다. 그 제사가 丁寧(정녕) 끝이 났다(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주기가 7일 동안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의 시작과 완성을 의미한다는 거다. 모든 사건, 즉 일(사)에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시(時)와 의(義)이다. 즉 때와 정의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산풍 고> 괘의 '육오'가 변하면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중풍 손(重風 巽>의 '구오' 효사에 "先庚三日後庚三日(선경삼일후경삼일)"이라 했다. 그러면 "선경삼일(先庚三日)"은 丁, 戊, 己이고, "후경삼일(後庚三日)"은 申, 壬, 癸이니까 모두 丁, 戊, 己, 庚, 申, 壬, 癸로 七일이 된다. 甲을 庚으로 고치는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동갑(同甲)을 동경(同庚)이라고 하고, 八자를 七자로 고치든지 무슨 수를 내어야겠다고 했는데 이는 모두 甲을 庚으로 고치는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것은 어지러운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꾸어놓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고치는 것을 "선갑삼일후갑삼일"의 7일 동안에 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선갑삼일후갑삼일"의 구절을 '복희팔괘'로 보면 이(離) 괘, 불을 갑으로 할 때 先甲은 <산괘>, 산이 되고, 後甲은 <손괘> 바람이 되니 합하면 자연히 <산풍 고> 괘가 된다. 여기서 甲은 先天(선천)을 말하는 것인데, 先甲後甲(선갑후갑) 동안에 선천이 끝나고, 후천(後天)이 시작되므로 '육오'가 변하여 <중풍 손> 괘의 '구오'를 이룸으로써 甲이 庚으로 바뀌는 무초유종(無初有終)의 시대, 즉 후천시대가 오는 것이다.

5
<산풍 고> 괘를 읽으며, 우리 현 시국(時局)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일은 질서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타락으로부터, 무질서로부터, 다시 말해서 파괴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지난 정부가 우리 사회를 다 망가트렸다면, 지금이 모든 것을 원칙으로 다시 복원할 기회인 것이다. 사회 대개혁을 할 시기이다. 여기서 진정한 일(사)의 의미가 생겨난다. 썩어 문드러져야 비로소 진정한 일이 생겨난다. "역(易)"은 변화이다. 변화는 썩음, 파괴를 그 계기로 삼는 것이다.

 <<서괘전>>은 <택뢰 수> 괘 다음에 <산풍 고> 괘가 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以喜隨人者(이희수인자) 必有事(필유사)라 故(고)로 受之以蠱(수지이고)고, 蠱者(고자)는 事也(사야)니라'라 했다. '기쁨 때문에 사람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다. 그러므로 <고괘>로 받았다'는 거다. <수괘>에서 너무 기쁘게만 잘못 따르다 보니 부패한 세상이 되어, <수괘> 다음에 <고괘>를 놓았다는 거다. 고(蠱)는 일(事)을 의미한다. 

<<서괘전>>의 저자는 "고"를 벌레나 독과 관계된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게 일, 사건, 이벤트의 의미로 보고 있다. <<역>>을 만든 사람들은 벌레와 일의 관계를 매우 심각하고 깊게 생각한 듯하다. 벌레는 확실히 혼란과 파괴, 무질서, 타락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지닌다. 괘상으로 볼 때도 상괘는 산(간괘)이고, 하괘는 바람(손괘)이다. 바람이 산 밑에서, 낮은 데서 불다가 산을 만나면 산을 휘돌아가면서 산의 모든 질서를 깨뜨린다.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바위를 굴려버리고 지형이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이러한 변화가 일(事)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따르는 근거를 기쁨, 곧 쾌락에 두면 그에 따른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법이다. 예컨대, 벌레들이 탐스럽게 익은 과일을 좀 먹어 썩게 하듯, 부정 부패 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활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일궈 온 열매를 독차지한다. 그러므로, 농사를 망치기 전에 벌레들은 모조리 농약으로 퇴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정부패한 자들은 사회와 국가를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깡그리 도려내야 한다. 그들의 입가에서 떨어지는 과즙이라도 핥아먹어 볼까 기대하며 타락한 자들을 편드는 어리석은 자들 역시 벌레들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동한다는 점에서 청산의 대상이다. <산풍 고> 괘의 메시지는 '부정부패를 척결하여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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